이제서야 등장한 이유
새해가 밝았고 지금까지 내 워크라이프는 최악이다. 회사 홍보팀 우두머리에 앉아있을 정도로 꽤 오랜시간 홍보일을 해왔는데 그 어느때보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싸웠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제껏 했던 홍보는 소꿉장난이었다 느껴질 정도의 미친 듯한 업무 강도였고 그러면서 매일 사표를 한장씩 품었다.
발단은 부정이슈다. 그리고 업계에서 가장 핫한(기자들이 씹어먹기 가장 좋은) 이슈가 거짓말같이 한꺼번에 터졌다.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하나는 업계에서 '비판의 강도가 센' 비즈니스적 이슈, 또 하나는 사회부 이슈다. 정말 거짓말같이 이 2개가 한날한시에 일어났다.
언론홍보가 꽃으로 피어날 때는 부정이슈가 터졌을 때다. 담당자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최악의 악재지만, 이때 어떻게 대처했느냐에 따라 내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언론홍보는 99개 잘해도 부정이슈 하나 못 막으면 온갖 욕을 다 먹는 직무기도 하다.
우선 첫 번째 이슈가 일어나자마자 기자들 사이에서 미친 열기가 피어났다. 나름 업계 기자들과 1~2명 제외하곤 사이가 좋을 정도로 케어를 잘했다 자부했는데, 비즈니스 관계에서 무조건적으로 좋은 관계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
오히려 그동안 꽤나 좋게 우리를 봐왔던 기자들이 한순간에 돌아서서 온갖 억측성 부정기사를 써내려가며 공격 시리즈를 펼치는데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리 본인의 판단이 B에 기울었다 해도 적어도 홍보팀의 말 좀 듣고 어느정도 중립적 메시지를 내는 것이 기자 근본이라 생각하는데 내 과욕이었나 보다. 원래 안 좋은 일을 겪을 때 그제서야 인간관계가 갈린다고 하는데, 내가 너무 오바스럽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을 계기로 (내 마음속) 기자관계도 갈리는 계기가 됐다.
이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업무에서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데, 그동안 미디어-기자와의 스킨십을 찐하게 하려고 들였던 노력들,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었던 것들이 한 순간에 배신당한 느낌이 드니, 너무 감정적 스트레스가 심한 것이다.
그래서 이 나이, 이 직급에서 이런 점을 깨달은 것이 어떻게 보면 프로페셔널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내가 비즈니스관계도 진심으로 대했다는 점도 알게됐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더 힘을 빼고, 적어도 업무 중에는 인간적 감정을 배제하는 법을 배웠다고 자위하고 싶다.
그렇게 감정적 스트레스에 속절없이 놓이면서 약 50개의 사표를 품게 됐는데, 이와 동시에 사회부 이슈는 내 업무 성숙도를 거의 4-5배 이상은 끌어올린 것 같다.
이제껏 홍보 커리어를 쌓으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검경찰과 연관되어 사회부 타깃이 된 적이 없었다. 너무 생소한 첫 만남이다보니 이때 대응을 어떻게 해야하고, 어떤 식으로 언론홍보를 이끌어야 할지가 막막했다.
그런데 오히려 잘못이 명확하고, 그래서 두들겨 맞는게 당연하고, 이런 팩트만 담백하게 담는 사회부 기사가 편했다. 반박할 수 없고 대응해봤자 욕만 더 먹으니 입 다물고 있으면 더이상 뭐라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그래도 홍보팀에서 무언가 일을 하는구나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니, 1차적 대응은 무조건 보도자료로 기사내리기였다. 근데 사실 보도자료 건덕지가 거의 없다보니 쥐어짜도 한 두방울만 겨우 떨어질 정도의 상황이었다. 이때 가장 만만한 것이 사내문화, 사내컴 관련된 거고 이를 최대한 포장해서 대대적으로 뿌린다.
그렇게 한 번 내리고 이를 좀 더 다른 이슈와 우라까이해서 2번째 보도자료를 만드는데, 이건 딱 봐도 너무 없어보이니 마이너 매체만 몇 개 선별해서 뿌린다. 이럴 때 대행사 써서 단가별 매체를 선택해 뿌리는 방식도 있다. 물론 우린 그냥 자체 리스트로만 진행했다. 네이버엔 적어도 5개 이상만 나와도 클러스터링되기 때문에 그렇게 힘 들이지 않아도 된다.
월요일 대대적 배포-우라까이 한 걸 수요일 배포-조금 다른 보도자료 금요일 배포... 이런 식으로 주3회 배포를 전략화했다. 기자도 알고 경쟁사도 안다 밀어내기 한다는 걸. 그래서 '불쌍하다'며 나름 열심히 기사화 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어느정도 내리기 혹은 섞이기에 성공한다면, 이제 경쟁사 이슈가 터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친한 매체(위의 첫 번째 이슈에서 우리편이 되어준 곳!)와 찐-한 컴을 해서 기획기사를 만들어낸다. 나름 기업 실적이나 우리만 뽑을 있는 데이터 등을 만들어내고 크게 포장해 매체에 던져준다.
이때 좀 영향력있는 매체와 손 잡는 게 중요한데, 그렇게 기획기사가 실리면 타 매체가 탐을 낸다. 어랏 기획 좋은데? 그러면서 우리 포함 경쟁사도 비슷한 데이터를 받아 업계 트렌드를 담는 기사를 재창출해낸다. 그럼 이런저런 기획성 기사에 우리 기업이 언급되면서 부정기사를 점점 더 내리기 할 수 있다.
처음 사회부 기사가 떴을 때 대응전략을 단계별로 짰는데 우리 내부에서 더 잘하겠다 이런 액션 처리하면서 기사화하겠다는 건데... 막상 기사가 도배되니 '차라리 잠잠해질때까지 아닥하고 조용히 있는 게 낫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뭘 해도 욕먹을거란 느낌이 퐉-온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어쨌든 사회부를 넘어 업계 기자들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기획(?)을 던지기 시작했고, '이거 생각해보니 이런데 대체 왜 그랬던거야?'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한다. A라는 답이 정해져있지만 그렇게 나가면 '역시 나쁜 곳이었네'로 굳혀지니, A를 부정하진 않되 방향성을 조금 틀어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앵글의 기사로 만들어야 했다.
야근을 하며 어떤 앵글로 메시지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이때서야 '난 언론홍보 마침표를 찍었다'를 느꼈다. 결론적으로 완전 앵글을 틀어 우리한테 좋은 메시지를 만들어냈고 회사 오너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컴을 했다고? 대단한데?'라고 말이다.
막상 닥치면 막느라 정신없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극대노하게 되는 것이 '왜 남이 싼 똥을 우리가 닦느냐'다. 그것도 잘해야 본전, 못하면 우리탓이 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매일매일 한숨만 푹푹 쉬고 대놓고 욕을 하며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제목 하나 바꾸기 위해 택시타고 날아다니며 데스크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고, 도대체 뭐가 죄송한지 모를 상황에서 무조건 죄송하다 조아리고, 하루하루 증가하는 부정기사를 온 몸으로 막은 것이 벌써 몇 개월이다.
그러다 '대체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 현타가 쎄게 오면서 100장의 사표를 집어던지려는 순간까지 도달했다. 그러다 드는 생각이 '온갖 고생은 다하고 보상은 남이 받게 할거야?'다.
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과연 이게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 몇 개의 고비를 넘기면서 새삼스레 내 능력치는 만렙을 찍었다. 과연 이것도 했는데 더 한 게 나온다고 내가 흔들릴까 싶을 정도다. 스스로가 대견하면서도 사실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라 말하고 싶다.
어찌됐든 내 품속엔 아직도 100장의 사표가 있고 내일이면 101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제든 사표를 던질 수 있는 옵션은 내게 있기에 그것만으로 어느정도 버틸 수 있다는 웃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아, 이럴 때 중요한 것이 회사 내에서 최대한 죽을 것 같은 컨디션을 뿜어야하고, 내 실적 하나하나를 오너에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듣던 안 듣던 내가 이 사건을 이렇게 막았어, 내가 이 사건을 이렇게 돌렸어, 내가 이 기사를 이렇게 만들어 놨다고!!!! 를 계속 어필해야 한다. 말 안하면 모르고, 당연히 쉽게 만들어낸 결과물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부정기사에 몸살 앓는 분이 있다면 댓글 남겨 주세요. 무엇이든 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