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영화 원작 도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8693649
90년대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프롬 파티의 밤. 파티에서 몰래 빠져나온 카메론과 콜리는 차 안에서 둘만의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그들의 밀회를 발견하고 놀라 차 문을 연다. 경악하는 목소리, 엉엉 울기만 하는 콜리. 카메론은 당혹스럽게 눈을 굴린다. 이 일을 알게 된 카메론의 이모는 놀라고, 슬퍼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카메론이 손 쓸 수 있는 일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론은 ‘하나님의 언약’ 캠프, 즉 기독교계 전환 치료 캠프에 입소한다. 9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죄악이고, 낙인이다. 다만 이것은 90년대 미국으로만 한정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시대와 장소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타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고치려 하는 시선들은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 캠프에 도착한 카메론은 목사 릭과 만나 룸메이트를 소개받고 좋아하는 밴드의 카세트를 압수당한 후, ‘하나님의 언약’ 계약서에 사인한다. 이모는 잘 적응할 거라는 한마디만 하고서 떠난다. 카메론은 이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룸메이트 에린은 성심성의껏 앞으로의 일정과 할 일을 안내한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성실하게 치료와 구원과 죄악과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종교가 제시하는 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 ‘교정’도 서슴치 않는다.
“배 위의 승객들은 전부 빙산에 집중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란 거 우리 모두는 알고 있잖아? 동성에게 끌리는 것도 그런 원리야. 죄악이 너무나 강력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해결해야 할 우리의 진짜 문제는 그 아래 숨은 것들이다. 네가 동성에 끌리는 건 더 큰 문제의 증상일 뿐이야. 이제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탐정들처럼 네 과거를 낱낱이 파헤쳐 볼 거다.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에 관해서.”
빙산과 배가 그려져 있고, 배 옆에는 ‘가족, 친구, 사회’라는 글자가, 물에 잠긴 빙산의 윗부분에는 ‘카메론의 동성애적 성향’이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비어있는 빙산의 아랫부분에는 직접 “해결해야 할 우리의 진짜 문제”를 적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님과의 관계 같은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것을 말이다. 그들은 카메론의 과거를 샅샅히 뒤져 병증의 원인을 찾아내는 작업이라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문제적 과거란 실상 카메론의 소중한 추억이다. 이 작업에 이상함을 느끼는 카메론에게 캠프의 선생님이 말한다.
“동성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우리 모두 같은 죄악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지. 마약 중독자들이 대놓고 돌아다니게 놔둘 수 있겠니?”
“아니요, 그럴 순 없죠.”
“죄악은 죄악이야. 너는 동성에 이끌리는 죄악과 싸우는 거란다. 첫 단계는 너를 동성애자로 여기지 않는 거다.”
캠프의 교육은 이런 식으로 자기자신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의 사랑, 그리고 나 자신이 어떤 사고나 병증으로 인해 ‘잘못되었다’라고 스스로 말하라는 방식, 나의 존재 자체가 오답이라고 발설하라는 방식으로. 압수나 불시 점호나 빙산 과제처럼 계속되는 사생활 침해와 교육자의 발언은 일종의 정체성을 더럽히기 위한 과정이다. 물론 그들은 ‘정화’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나’를 내가 원치 않는 타인의 개입으로 바꾸는 과정이 ‘나’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지만, 이런 과정이 일상적인 캠프에서 카메론과 몇몇 친구는 그것에 고분고분하게 순응하지 않는다. 캠프 관계자 몰래 대마초를 직접 재배하는 제인이 카메론이 헤매고 있는 빙산 과제에 대해 조언을 시작으로, 카메론은 캠프의 문제아 아닌 문제아 제인, 그리고 애덤과 친해진다. 그들은 어디서든 함께한다. 대마초 재배까지. 덕분에 세 친구의 취미활동은 등산이 되었다.
함께 하는 세 친구의 얌전하지 않은 모습이 거슬린 리디아 박사는 카메론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넨다. 검열의 흔적이 보이는 분홍색 편지의 발신인은 콜리. 애인 콜리의 편지에 기뻐하기도 잠시 편지의 내용을 읽은 카메론은 혼란에 빠진다.
“콜린이 말했어, 제이미가 아니라. 걔 말이 맞는다면 어쩌지? 난 소중한 우정을 이용한 거고 내가 하는 짓이 뭔지도 몰랐다면? (...) 이게 우리의 유일한 기회인데 우리가 망치는 거라면 어쩔래? 이젠 나 자신을 역겨워하는 것도 지쳤어.”
“이모, 제가 여기서 불행하다면, 그래서 집에 가고 싶다면, 받아주실래요?”
“카메론, 그러지 마. 시도는 해 봐야지. 널 사랑해서 이러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언젠가 네 가족을 갖고 싶지 않니? 사랑한다, 캐미.”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계속해서 부정하다보면 분명히 내가 나 자신을 부정하는 순간이 온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오염은 이토록 사람을 지치게 만들어 결국 폭력에 순응하도록 만든다. 카메론은 변하지 않는, 오히려 더 나빠지는 상황에 지쳐 반항을 포기하고, 캠프의 교육에 따른다. 상담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한 요가를 배우기도 한다. 친밀했던 친구들과 멀어지고 요가와 체조를 하며 카메론이 느낀 건 과연 의욕일까, 무력감일까.
아슬아슬한 일상을 이어나가던 중 큰 사건이 벌어진다. 오랫동안 입소하고 있던 모범적인 학생 마크가 아버지에게 캠프의 졸업 요청을 거절 받은 것이다. 큰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집단 상담 중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그날 밤, 심한 자해를 한 채로 발견된다. 캠프 모두가 충격에 빠지지만 곧 관계자-어른들은 사건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학생들의 보호자들은 우려의 편지를 보내기만 할 뿐, 누구도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캠프에 파견된 조사원도 마찬가지다.
의욕 없는 조사원과 그저 수습하기 바쁜 어른들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을 캠프와 자신들의 미래를 본 세 친구는 다시 모인다. 마크가 걱정스럽고, 마크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그의 아버지가 어처구니없다. 그를 위한다는 모든 일이 그를 망쳐버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 사건을 묻으려는 선생님들에게 화가 나고, 돌아오라는 말 한마디 없는 가족들이 원망스럽다. 세 친구는 다시 모여 감정을 쏟아내다가 이런 말이 나온다.
“여기 확 망해버려라. 내가 밴 열쇠 훔칠까? 아침이면 캐나다에 있을 텐데.”
가벼운 어투지만 그것에 진심을 느끼지 못할 친구는 없었다. “우리 세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무서운 것 앞에서 애써 용감한 척하려 애쓸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 그리고 세 친구는 정말로 캠프를 탈출한다.
캠프에서 나오기 전, ‘빙산’을 알려준 릭 목사는 그들에게 장난스럽게(혹은 체념한 채로) “다음엔 나도 끼워줘.”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가 전환 치료의 피해자임을 안다. 그는 전환치료 캠프의 모범적인 예시이자 그곳에 갇힌 유령이나 다름없다. 어른이 되었으나 결국 가해자로 남기로 한 그를 두고 카메론과 친구들은 비로소 자신들만의 산을 오른다.
산을 다 넘기 전, 캠프의 조각인 ‘빙산 과제’를 불태운다. 그리고 완전히 떠난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서로에게 기대면서.
히치하이킹 한 차에서 농담을 하고 웃는다. 그리고 다시 불안에 떨고, 다시 웃는다. 세 친구의 탈주극은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기 종영될지도 모를 일이다. 캠프도 어른들도 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달라진 것 하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세 친구는 진절머리 나는 그곳에서 벗어났으며, 다시는 돌아갈 일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 서로의 온도를 확인하며 불안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기에. 지금 여기가 우리가 바라던 낙원이 아니더라도.
투비-초고: https://tobe.aladin.co.kr/n/590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