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 <긴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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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의 화자는 검은 반점의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다. 이 책은 이 어린 펭귄의 독백과 함께 시작한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사람에게 이름이란 흔히 타인에게 호명되기 위한 도구이자 인식되기 위한 이정표이다. 하지만 비인간 동물에게도 이런 호명이 필요한가?
나는 이름짓기가 인간의 오남용된 특권이라 느낀다. 우리 인간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이름을 붙일 때 애정과 책임을 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소유권을 대리하기도 한다는 것을 다들 한번쯤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또한 그들의 소유물에 이름짓기란 단순하게 납득 가능하다. 그러나 또다른 타자인 비인간 동물을 향한 이름짓기는 어찌 가능한가? 또한 왜 인간은 동물에게 이름 지으려 하나?
우리와 가까우면서 가깝지 않은, 자연상태는 아니나 소유상태도 아닌 동물들, 동물원의 동물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그들은 제각기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애정, 책임감으로 비롯된 것일 수 있으나 그것은 일차적으로, 우리 인간들의 오만하고 게으른 시선처리로는 불가능한 동족 사이의 구분을 위해 도입되었다.
책의 또다른 주인공인 노든은 한밤중에 아내와 딸을 잃고, 자신은 동물원으로 실려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라는 전시 푯말로부터 노든으로 호명된다.
'어딘가의 동물원-우리의 사자들-그들 중 **라는 이름의' 동물은 정말 사자인가? 이런 동족에게서 분류된, 또는 분리된 모습을 보다보면 이름짓기란 곧 인간의 전횡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이름이 호명을 위한 이정표라면, 비인간 동물의 이름은 인간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는 낙인, 다름아닌 인식표이다. 이 인식표는 오로지 인간의 폭력적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부정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밀림의 사자, 초원의 기린, 자연 상태의 이들에게 이름이 있겠는가? 사자로서, 기린으로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동족과 분류되지 않은 것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또한 자유롭지 않을까? 이름으로 분류됨에 따라 '존재'하는 것보다야?
밀림의 사자가 아닌 동물원의 ‘**’는 **로 불리는 표본인 것이 과연 아닐까?
노든이라 불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흰바위코뿔소는 자유로울까?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라나, 인간에게 이름받고, 가족도 친구도 잃은 노든은, 그러나 자유롭다. 그의 옆에 그가 이름짓지 않은 어린 펭귄이 있기 때문이다. 노든이 이름지어주지 않은 어린 펭귄은 노든에게 ‘인간에게 “복수하지 말아요”’(104p) 부탁한다. 이것이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도. 어린 펭귄은 노든이 스스로를, 그리고 자신을 잃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그제서야 노든은 자신이 필요한 어린 펭귄을 돌아보고,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은 후부터 계속되었던 복수를 종결 짓는다. ‘복수’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자신의 자유, 그리고 어린 펭귄의 자유를 목적지로 향하게 된 것이다.
어떤 변화는 왜 개입이고 오염인데(앞선 글,<카메론>), 어떤 변화는 어째서 사랑이 될 수 있을까?(이 글, 노든과 펭귄) 이는 한 존재를 자유롭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노든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자신에게서 벗어날 때, 복수심에서 벗어나 자유가 되었을 때, 그제서야 둘은 진정한 자유, “바람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유를 위해 걷고, 서로의 자유를 축복하며 작별한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게 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99p)
노든이 이름지어주지 않은 어린 펭귄은 그럼으로써 절벽 위의, 바닷속의, 펭귄 무리 사이의 이름 없는 아주 보통의 펭귄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펭귄을 눈여겨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로 인해서.
우리가 정말 사랑한다면, 명명되지 않고도, 분류되지 않고도, 호명되지 않고도 긴긴밤 동안의 시선과 냄새와 걸음걸이만으로도 서로를 부르고 알아차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긴긴밤>이 알려주고 있다.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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