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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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란 무엇인가? 서로가 친밀함? 집에 초대할 수 있음? 무언가를 주고 받는 사이? 이 책은 환대를 “자리를 주는 행위”(26p)이며 이는 곧 “사람이 되는 것”(26p), 즉 ‘성원권’을 가지는 것이라 말한다.
이런저런 논의를 넘어가서 이 책의 물음은 이것이다.
절대적 환대란 가능한가?
이 책이 인용한, 데리다가 제시한 절대적 환대란(208p)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적대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환대, 즉 ‘자리/장소 주기’ 이다.
이것을 제시한 데리다는 “이러한 환대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며 그러나 작가 그 자신은 우리 사회를 절대적 환대의 예시, 또는 결과물로써 내놓으며 그것을 부정한다.
작가는 이 ‘6장, 절대적 환대’를 이렇게 끝마친다.
“신원을 묻지 않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복수하지 않는 환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절대적 환대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한번도 그런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현재 속에 그런 사회는 언제나 이미 도래해 있다.”(242p)
나는 이미 앞선 글에서(‘이름없는 밤에’, 루리,<긴긴밤>) 이러한 환대, 그리고 절대적 환대를 맛보았다. <긴긴밤>에서 노든은 우정을 쌓고 잃으며 맡게 된 검은 반점의 알에서 태어난 나를 ‘환대’한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노든에게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루리, <긴긴밤>, 80p)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조건부 환대이다. “살아남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도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치쿠와 윔보 때문이라고 했다.”(같은 책, 80p) 태어나기를 빚지고 태어난 것이니 그만큼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논리. 그러나 ‘나’와 노든은 긴긴밤을 보내면서 그러한 논리는 무용지물이 된다. 인간으로 인해 여러 번 고통받던 노든에게 ‘나’가 “노든, 복수하지 말아요. 그냥 나랑 같이 살아요.”(같은 책, 104p)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필요성, 다른 말로는 절대적인 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긴긴밤을 보낸 그들은 그 길던 밤으로 인해 신원을 묻지 않고(그들의 대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보답을 요구하지 않으며(‘나’가 요구하는 것은 보답이 아닌 ‘살아 달라’는 부탁이다), 복수하지 않는(그 말을 듣고 노든은 인간을 향한 복수심을 멈춘다),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환대를 보았다.
다만 나는 동화를 여섯 번 읽고 여섯 번 모두 울 수는 있어도 현실은 비완결적이라고 생각하는, 242p의 그 ‘누군가’라는 것이다. 이상을 만드는 동시에 이상을 부수는 인간이라는 종족을 개체 하나하나 온전히 믿고 환대할 수 없으며, 사회로 제시하는 ‘절대적 환대’가 그리 완벽한, 완전한 환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의 예시 중 하나인 사회 운동의 현장조차 내부의 위계와 신원 확인, 보답의 논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 이상을 향한 움직임이 또 다른 배제를 낳지 않던가?
그저 내가 어디서 본 데리다의 말처럼 절대적 환대란 불가능하고, 다만 그 가능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 아닐까? 나는 이 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작가의 낙관적인 관점보다는 데리다의 불가능성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단지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건, 절대적인 환대가 불가능한 이 사회에서 아직도 환대 받지 못한 자들은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버리거나, 영영 디아스포라를 안은 채로 떠도는 것은 아닐까, 짧게나마 고민해본다.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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