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9. 우주적 귀여움, 우주적 고통, 우주적...

-김혜순 외,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by 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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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은 좀 봤다지만 SF 시는 처음이다. 아니, 이전에도 SF 시라는 게 있었나? 우선 나는 본 적 없다. 고등학생 때 갑자기 SF에 꽂혀 이런 저런 소설을 읽어보았을 때도 그런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이 장르에 조금 시들해진 지금 왜 이 시집을 사 펼쳤느냐면. 최근 한 SF 영화가 유행이라길래 SF 시집을 펼쳤다. 사둔 지는 좀 됐다. 시집이 나왔을 당시에, 내 얼마 전의 어린 시절 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 SF를 좋아한다고 믿어서 사두었다. SF와 시라니. SF도 그렇긴 하지만 시는 내게 친숙한 동시에 어색하다. SF 시집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아는 시인도 있고, 모르는 시인도 있고. 몇 년간 시를 좀 등한시하고 살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읽었고, 역시 나는 시랑 SF를 좋아하는 구나, 정도의 감상? 아주 익숙한 것도 아주 익숙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시인들은 여전히 삶과 사랑과 모호함에 대해 말하는 것 같고, SF는 거기에 가장 걸맞을 수 있을 장르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여러 시인들이 모여 쓴 시집이라 뒷부분에 누가 어떤 시를 썼는지 나와 있었다. 두 편의 시「트윈」과「작은 것들에 대한 광활한 점」은 누가 적었는지 나와 있지 않길래 알아봤더니 편집자가 쓴 시라고 한다. 알아두시길. 가장 좋았던 시는 조시현 시인의「크런치 ,*,***,****,*****」(이하 크런치)와 유선혜 시인의「세기말적 의문」이었다. 두 시인 다 이 책에서 처음 만났다. 돈 생기면 사둘 책이 늘었다.


「크런치」는 우주를 유영하는 사람, 혹은 우주선의 기록이다. 우주와 영혼에 대한 기록. 내가 이 시를 기억하게 만든 문장은 우주의 두려움에 대해 말할 때였다. “우주는 강아지가 산책하는 넓은 운동장. 무서운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그렇게 상상해요.(32p)” 좀 많이 어렸던 시절에 우주의 존재를 알고 굉장히 두려워하거나 외로워한(지금은 영문을 모르겠다) 기억이 있다. 그때 이 시를 만났더라면 그 광활하다던 우주를 조금 더… 귀여워 했을 수 있지 않을까? 우주적 귀여움. 우주에 귀엽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기말적 의문」은 좀 특이하다. 이 시는 ‘포켓몬스터’의 포켓몬 ‘뮤츠’가 주인공이다. 포켓몬도 모르고 그 포켓몬의 설정도 여기서 처음 봤으나 시의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서늘하다? 섬뜩하다? 또는,,, 가엽다고도 느꼈다. 시인이 단일 포켓몬에 대해 쓴 것이 아니다. SF적인 고통을 우리가 느끼는 실제의 고통으로 치환하며 시인은 “진정제를 내놔(81p)” 말한다. 존재론적으로 고통받는 뮤츠가 아닌 그게 더 “쉽고 빠르고 저렴한 방법(82p)”이라는 걸 아는 인간이기에. 이 시를 읽는 나의 고통은 거기서 온다. 인간이기에…


우주적 귀여움과 우주적인 고통. 이 시집은 사실 이 둘이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우주를 강아지 운동장이라고 상상하는 것도, 존재론적 고통에 진정제를 필요로 하는 것도 모두 우주를 버티는 방식이다. SF라는 장르 또는 형식은 그 버팀을 가장 먼 곳에서, 가장 낯선 언어로 말하게 하여, 오히려 더 정확하게 느끼도록 한다.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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