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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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 (네이버 국어 사전)
보여주려 했으나 보이지 못한 이들이 있다. 현대에서, 그리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디아스포라’는 ‘국가의 비호에서 추방된 자(10p)’를 의미한다. 작가 서경식은 재일조선인 2세이며 이 책은 그가 살아왔던 디아스포라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예술기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꼽자면 바로 그 시선, ‘추방당한 자의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추방당한 자의 시선에는 무엇이 보일까. 가장 먼저 폭력일 것이다. 폭력이 그들을 망명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향해서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개인을 향해있을 때도 유효하다. 작가는 2000년 5월, 광주에서 모순적인 경험을 한다. 민주화의 역사이자 자유의 상징이 된 이 도시에서 유리창 안쪽에 갇힌 여성(성매매 종사자)을 우연히 본 것이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그 보호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자들에게 국가란 오히려 더 거대한 폭력이다. ‘국가의 비호로부터 추방’되었기 때문에 ‘국가의 비호로부터 추방된 자’들. 이것은 동어 반복이 아니다. 선택지가 없는 길이 그들을 ‘추방되는 곳’으로 이끈다. 그것을 목격한 작가는 생각한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우리의 암흑은 마침내 물러갔는가
우리의 한탄의 나날들에 마침내 끝이 왔는가
정말인가 그것은 정말인가……(124p)
목격자는 그것이 무엇이든 목격한 일을 소리내고 싶을 것이다. 그 ‘소리’ 중의 하나는 예술이지 않을까. 예술가는 예술로써 목격담을 발화한다. 발화물에는 그 발화의 행위자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예술은 그런 것이기 때문에 행위자, 즉 예술가의 이름이 필요하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소화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첫번째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름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솔직해야 한다.
책에 인용된 이우환의 글 중 [후지노에서 문승근으로]를 보면 후지노 노보루라는 이름으로 괴로워하다가 그것을 탈피해 문승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젊은 예술가가 나온다. 이우환은 일본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에게 “자기 이름 하나 밝히지 못하는 인간이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갈했으나 “그런 말과는 정반대로 자기도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었고 같이 울부짖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쓰고있다.(164p)”고 인용한다.
디아스포라를 가진 인간은 이름에게마저 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을 벗는다. 자기 자신으로의 진정성을 위하여.
그렇다면 다시 이 과정은 어떻게 목격되는가. 작가의 개인 일화를 보면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작가는 TV 프로그램 카메라 앞에서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를 시청자들이 제대로 이해할지는 미지수이다. 막다른 길. 떨리는 눈빛. 손으로 들고 보여주는 유대인 증명서. 이 그림은 제목처럼 망명자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 자신의 외국인 등록증을 꺼내 그림과 같은 자세를 취하며 “그런 내 모습을 찍어달라고 재촉했다.” 발화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 “그 장면은 촬영은 됐지만, 편집 단계에서 결국 잘려나갔다.(219p)”
그 순간 그림 속 막다른 길로 몰린 유대인과 그것을 설명하는 재일조선인이 동일한 ‘사람’(‘국가의 비호에서 추방된 자’)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이는 없을 것이기에 그 표현-방영-시선은 거절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의미한 몸부림인가? 그러나 그것은 이미 시도되었다. 삭제된 것은 필름의 일부가 아니라 진실을 마주한 사회의 양심이다. 역설적으로 그 잘려나간 자리가, 공백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존재 증명이 된다.
다만 작가는 그 증명에서 끝나지 않고 거기서 희망을 찾는다.”거꾸로 말하면, 국가 없는 세계에 대한 희망(감히 ‘희망’이라 말해두자)을 잉태할 보편적 사상이 그들로부터 펼쳐질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8p)”
잘려나간 자리는 그대로다.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 공백을 외면할 것인가, 그들의 비명에 응답할 것인가.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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