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6. 이바나는 전화 받지 않는다

-배수아, <이바나>

by 일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529657


나는 가끔 눈에 갇히고 싶다. 정말 그래본 적은 없지만, 그런 생각을 정말이지 가끔씩 하게 된다.


여기 K와 ‘나’가 있다. 그들은 눈 속에 갇혔다. 그들은 차를 타고 여행 중이었고 그 차를 이바나, 라고 부른다. 그들의 여행 목적은 이방인이 되는 것이기에 걱정되는 것은 다만 얼어붙을 이바나와 어마어마한 폭설의 공포뿐이다. “마을이고 길이고 모두 눈에 파묻혔다. 온갖 형체가 불분명해지고 죄의식이 사라지고 길을 잃고 마음이 허둥대기 시작하는 그런 눈이다(53p)” 그들은 이바나에서 내려 헤맨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린 상점으로 피신한다. 그들은 눈이 그치고 녹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가진 돈이 전부 떨어진다. 그들은 녹은 길을 이바나를 타고 그들이 살던 도시로 돌아간다.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남은 모든 것을 팔아치우고 온전히 이방인이 되기 위해서. 그러나 그들은 “잠시일지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꼈다.(57p)”


나는 그들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다. 도시라는 건 별별 고민과 걱정과 소음의 은거지이다. 그렇기에 가끔 오고 갈 데 없이 눈에 갇히고 싶다. 자연이 허락한 고립을 한 번이라도 맛보고 싶다는 건, 지나치게 비일상적인 소망일까.


한편 B가 있다. 그는 중증의 불면증 환자이자 솜씨 좋은 불법 간호조무사이다. 병원의 책임자가 바뀐 후 해고된 B는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관광객이라기보다는 단지 거주지를 잠시 옮기고 싶어하는 정적인 동물에 가까웠다(33p)” 낯선 집을 빌리고, 전화선을 끊는다. 잠시 이방인이 된 것이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고 그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을 하나의 단어로 축약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침묵’이었다.(38p)”


침묵은 이방인이 된 자의 언어이다. 그것은 타인이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되기도 바라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나’가 이바나를 이바나,라고 부르듯이.


B는 이방인인 채로 걷고 또 걷는다. 그런 길목에서 두 사람이 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야. 이바나가 전화를 받지 않아. (중략)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아마도 그녀를 다시는 찾지 못할 거야.(44p)”


K와 ‘나’는 돌아온 도시에서 물건을 팔아치우고 출판사에서 제안한 여행기를 쓴다. K는 여전히 불안해 출판사의 제안을 거절하자고 재촉한다. 정리를 끝마치기 전에 이바나를 향해 달려나가고픈 심정이다. 그러나 돈이 필요하기에 ‘나’는 출판사의 계속되는 요청을 받아들이고 글을 쓴다.


B는 책방에서「이바나」를 읽는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기”이자 “불면에 관한 이야기(128p)”이다. “B는 그 책이 자신을 위한 이야기는 아닌 것을 알지만, 책의 어딘가에서 B 자신의 뒷모습을 발견한 듯했다.(130p)” ‘익명의 행인’이라는 모습으로. 그리고 B는 책방을 떠난다. 이바나를 타고 이방인이 되려 한 '나'의 여행기가 불면의 이방인 B에게 닿는다.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을 알지 못하고, 읽는 사람은 쓴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뒷모습이 겹친다. 그것이 이바나라는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며 ‘나’는 Y를 회상한다. 어린 시절의 도시, “그곳에서 여자는 이바나라고 불렸다. 나는 그녀를 Y라고 불렀다. 내 부모는 그녀를 관자라고 불렀고 그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Yja라고 서명했다.(125p)” 몸이 약하고 무명인 채로 그림을 그리고 ‘나’가 사랑했던 Y. 아니, 사랑하고 있는 이바나. ‘나’는 자신의 이바나였던 사람을 찾기 위해 어린 시절의 집을 찾고 글을 쓴다. 그런 나를 두고 K는 이바나의 키와 함께 “절대적으로 먼 길(169p)”을 떠난다. ‘나’는 홀로, 혹은 Y의 편지와 함께 남겨지고, 혹은 글을 쓴다. 기록하는 자는 과거를 소환하고 떠나는 자는 현재의 자신마저 버린다. 작가의 선언과 같은 마지막 문장은, 결국 사라져버린 이바나들의 여행기, 아니, 생존기이다.



나는, 쓴다.

이미 사라져버렸으나,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172p)




초고

https://tobe.aladin.co.kr/n/590580


작가의 이전글W5. 시선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