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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봉칠 Jul 12. 2024

B3. 사랑을 몰라서

그 여름의 끝_이성복


시작하다.

2024.07.07 한량의 끝에서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괴로워서 시집을 샀다. 각종 자극에 익숙해진 머리를 정화하고 싶어서 말이다. 집중력이 부족해서 짧은 글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시는 내게 늘 어려운 것 같다. 사랑을 몰라서인지 시집에서 말하는 사랑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짧은 문장 속에 담긴 한없이 깊은 시인의 고뇌와 생각을 얕게라도 알고 싶었는데, 참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곱씹고 싶은 문장들을 기록한다.


아로새기다.

: 마음속에 또렷이 기억하여 두다


1) 전체

: 시 전체에 대하여


<만남>_12p

밝은 곳을 찾던 작가는 자신 내면의 어두운 골짜기에 들어온 것들에 대해선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밝은 것을 좇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바로 옆에 존재하는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짐승의 우짖는 소리, 짹짹거리는 새 소리는 하찮아 보일 수 있으나 내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소중한 것인데 그것을 너무 늦게서야 알아차렸다. 안타까웠다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에. 밝은 곳에 혼자 서 있기를 원하는지, 어두운 곳에 함께 있기를 원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풀벌레 울음소리였던가.. 브라운관을 얘기하던 그 시가 떠오른다.


<서해>_13p

서해에 당신이 계실까봐 아직 가지 못했다는 건, 설렘 때문일까 두려움 때문일까? 그 사람이 계신다면 설렘에 너무 떨려서 차마 용기가 안 난다는 말인지, 그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본인 마음이 다칠까봐 두렵다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 생각났다. 그 분이 앉아 계실까봐 뒤쪽 문으로 수업 들어갈 때마다 차마 왼쪽을 쳐다보지 못했던 마음, 앞쪽 문으로 들어갈 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던 그 마음이 생각난다. 그때 나를 생각해본다면 두려움에 가까웠다. 그 분 얼굴만 보면 일렁이는 마음 자체가 죄스러워서 어떠한 접점도 만들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더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되기에 학기 말이 될수록 최대한 피해다녔다.


<두 개의 꽃나무>_18p

잘 이해가 안 됐다. 왜 당신은 쓸쓸히 웃고만 있었을까?


<바다>_22p

서러움이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것일까. 서러움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인물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서러움이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든다는 구절을 보곤 처음엔 무서워졌다. 난 서러움을 평생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건가 싶어서. 그런데 서러움이 손 흔든다는 것은 곧 친밀함의 표시이고, 우리가 꽤 좋은 사이이기 때문임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 난 희망을 발견했다. 서러움이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면, 친한 사이가 되어야겠구나. 그것이 내게 짐짝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면 더할나위없이 든든하겠구나. 서러움이 내게 친히 손을 흔든다면 난 기쁜 마음으로,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되겠구나 하고.


<그대 가까이2>_71p

내가 기다리는 그대는 나 자신이에요. 오지 않아 원망스러운 그대는 타인이 아닌 나 뿐입니다. 내가 꿈꾸는 나 자신, 행복으로만 가득찬 나 자신, 힘들지 않은 나, 버림받지 않은 나. 자꾸 기다리다보니 원망하는 마음만 커져갑니다. 가까이 다가섰다 싶을 쯤 멀어지고, 멀어졌다 싶어 서러울 쯤 다시 가까워지는 존재에요. 만난 적 없지만 어디선가 한 번 스쳐지나가듯 만난 것 같아요. 계속 생각나고, 갈망하고, 그렇게 갈구해요. 내가 원망하는 사람은 부모님도, 친구도, 제3자도, 신도 아닌 나 자신뿐이에요.


<기다림>_84p

산울림 밴드의 '무지개'라는 곡이 생각난다. 이 곡에서 감명깊었던 가사가 있었다.


"네가 기쁠 땐 나를 잊어도 좋아. 즐거울 땐 방해 할 필요가 없지. 네가 슬플 땐 나를 찾아와줘. 너를 감싸안고 같이 울어줄게. 네가 친구와 같이 있을때면 구경꾼처럼 휘파람을 불게. 모두 떠나고 외로워지면은 너의 길동무가 되어 걸어줄게"


필요할 때만 나를 찾던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래서 지금은 소원해진 관계가 떠올라 눈물이 났다. 그래서 이 가사가 처음엔 너무 슬프다고 생각했다. 자조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진짜 사랑이란 이런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가능해지는 걸까 싶었다. 늘 같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타인이 오고 감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나를 찾아온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애가>_100p

"잊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잊어야 한다고. 잊어버리자고"

나는 요즘 내게 상처 준 사람들, 내게 특별한 사람들이었지만 스쳐지나가거나 소원해진 관계들을 잊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정을 쉽게 주고, 감정을 쏟지 말아야 할 곳에 나도 모르게 감정을 부어버리는 내 자신의 습관을 고치기가 어려워서 매번 마음이 헐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히는 슬픈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지 않을까. 이 감정에 매몰되게 놔둔다면 내가 말라비틀어질 것 같아서, 표정을 잃고 감정을 절제하고 말을 아끼고 관계를 좁힌다. 



2) 부분

: 시 속 특정 구절에 대하여


33p. 고통이 숲을 묻었습니까 숲이 고통을 떠났습니까

아무리 깊고 넓은 숲이라 한들 어떻게 고통과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숲이 고통 그 자체인 것을. 넓고 깊은 것은 아래로 내려가고자 하는 힘 때문에 어딘가 패이고 까져서 고통이 내장돼있습니다. 숲이 고통을 묻었겠지요. 고통이 숲을 능가하는 한 우리는 살아 갈 수 없습니다. 고통 아래 우리가 존재한다면 우린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습니다. 고통은 우리 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느껴진다 한들 착각이고 망상입니다. 고통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혹은 아래에 있는데 우리가 들어올린 것이겠지요.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한 대사가 기억납니다.

"네 몸은 기껏해야 백이십근. 천근만근한 건 네 마음."


48p. 아까부터 나는 사는 것을 바라본다. 발가락과 발바닥 사이 아주 낮은 삶을.

발가락과 발바닥이라는 가늠도 안 될 그 작은 사이를 들여다보는 당신께 경의를 표한다. 누군가는 그런 쓸모없는 짓을 왜 하냐며 우습게 보겠지만 난 당신을 존경한다. 사소로운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것들에 숨결을 불어넣는 세상을 원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의 향미 대사가 기억난다.

"내가 이 시궁창같은 인생에서 깨금발 들고 너 들쳐올린 거야"


51p. 세월을 건너 눈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리곤 이내 눈이 멀겠지요.

환한 당신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내 눈이 멀어도 좋습니다. 당신의 빛난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당신과 세월을 건너서라도 만날 수 있다면 내 눈이 멀어도 상관 없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당신의 빛이 날 항상 따뜻하게 비춰줄 테니까요. 엄마.


52p. 웃음 속에 어찌 얼룩이 없겠습니까. 웃음은 얼룩 속에 있습니다. 저들의 웃음 속에 세월은 잠자고 있습니다.

얼룩 속에 피는 웃음은 진정한 의미의 웃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웃기 위해선 얼굴을 구겨 주름이 져야 하듯, 구김 없는 웃음이 사실은 가짜 웃음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웃을 때마다 인디언 보조개가 생기는데, 웃기만 하면 얼굴에 심한 주름이 잡히니까 어릴 땐 그게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참 예쁘다고들 칭찬해주셨다. 어릴땐 그게 이해가 안 됐는데, 구김도 예뻐보일 수 있다는 걸 이제와 알게 된다. 내 웃음 속엔 항상 얼룩이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 사소로운 것들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는다.


65p. 깊은 내륙에 먼 바다가 밀려오듯이 그렇게 당신은 내게 오셨습니다. 깊은 밤 찾아온 낯선 꿈이 가듯이 그렇게 당신은 떠나가셨습니다. 다시 바람불고 물결 몹시 파랑쳐도 여간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분이 생각났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처럼 오신 당신께서는 내게 아주 잠시 머무르다 떠나셨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발 길 끊긴 흔적을 곱씹고 있다.


68p. 살며시 돌아누우면 지워지는 당신.

모래같은 당신. 눈에서 멀어지면 멀어지는대로 마음이 추스려지다가, 눈에서 가까워지면 금세 마음이 일렁이게 만들던. 살며시 돌아누우면 괜찮아졌다가 다시 반대로 돌아누우면 어김없이 일렁이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내 마음이 딱 거기까지라고 하지만 모래 위에 파도가 치는데, 그것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85p. 내 팔은 울고 싶어 합니다. 내 어깨는 울고 싶어 합니다. 하루종일 빠져나오지 못한 슬픔 하나 덜컥거립니다.

나 대신 내 몸이 울고 싶어한다면 그 이유는 뭘까 생각했다. 울지 않으려 애쓰는 나 자신을 대신하고픈, 그런 사려깊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서러운 순간이 올 때마다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울지 않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한다. 그대로 슬픔은 내 안에 갇혀버리고, 쉼없이 덜컥거린다. 막혀서 나갈 구멍이 없어서 그렇다. 잘 알면서도, 내 안에 갇힌 슬픔의 모난 구석이 구멍을 만들지 못하도록 애를 쓴다. 자꾸만 찢기고 상처받는 몸이, 내 마음을 대신하여 울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쉴 새 없이 굴러다니는 슬픔은 나를 아프게 하면서도 밖으로 내보내기엔 애틋한 구석이 있다. 미운 정.. 그런 거려나


106p.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의 사랑은 그대의 부재를 양적으로 채울 수 있다 하더라도, 질적으론 영원히 채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실, 나에 대한 사랑으로 그대의 부재를 양적으로라도 다 채우고 싶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채울 자신이 없습니다.


125p. 이 세계는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따라 한없이 나의 넓이로 전화되는 것이었다.

사랑하자고, 바라지 말고 한없이 사랑하자고 끝없이 다짐했다. 실천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줬다. 돌아오는 게 없어도 그냥 아낌없이 줬다. 그런데 자꾸만 상처만 받았다. 그래서 아가페를 꿈꿨던 나를 후회하기도 했는데, 계속하다보면 내 그릇도 넓어질 수 있을까.



3) 표현

: 뜻을 자세히 알아보고 싶거나 오래 기억하고 싶은 '단어'에 대하여


66p. 저물녘의 못물같이 내 당신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못물 : 논에 모를 내는 데 필요한 물. 못에 고여 있는 물.


첫 번째 뜻으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내게 없어선 안 될 꼭 필요한 존재인가 봅니다.

두 번째 뜻으로 생각한다면 못에 고여 있는 물처럼 당신을 가만히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나봅니다.

이 사람은 본인 역시 농사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에겐 '당신'이 꼭 필요한 존재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이 사람 역시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존재일테니까요. 저는 못물처럼 고여있는 이 사람이 더욱 애틋해집니다.


69p. 그 모든 사소로운 것들이 당신의 눈짓인 줄 이제 알겠습니다.

사소롭다 : 사소롭다는 말이 없네요. 시인이 만든 말인가봅니다. '사소한'이라는 말보다 한층 부드럽고 사소한 것들의 존재를 존중하는 듯 합니다. 말의 끝머리를 통해 이렇게나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제가 깨어 있는 줄도 모른 채 혼잣말로 예쁘다 예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기억납니다. 따뜻한 손길이 좋고 목소리가 포근해서 잠든 척 연기를 하던 귀여운 마음이 스쳐지나갑니다. 어머니는 제가 깨어 있던 걸 아시고 건넨 말씀일까요, 혼잣말이라고 생각하셨을까요.


87p. 당신을 따라서 나도 모르게 천착하였습니다.

천착하다 : 구멍을 뚫다. 어떤 원인이나 내용 따위를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하다. 억지로 이치에 닿지 아니한 말을 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의미로 본다면 당신은 시인에게 큰 존재였나봅니다. 시인을 따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듯 합니다. 한계를 뚫고, 파고들고, 알아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가 되었으니까요.

세 번째 의미로 본다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억지로 이치에 닿지 아니한 말을 했다는 것은, 시인이 당신의 존재를 밀어내야 하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일까요. 내가 당신을 사랑함은 이치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지만 억지로 사랑과 반대에 있는 말을 하게 된 이유는 온전한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음을 밝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또 사랑을 엿봅니다.


끝맺다.

내 사랑이 당신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당신이란 미래의 나 자신이겠지요. 혹은 멋진 집, 큰 돈,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네요. 나를 스쳐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버리는 내 자신이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부딪치다보면 파친코라는 드라마에서 말했듯이 극복하는 방법이 아닌, 참는 법을 알게 되겠지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감내하고 견디는 법을 계속 깨달아 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합시다. 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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