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머무는 다정한 침묵

조용한 존재로 건네는 환대에 대하여, <변신 우산>이 알려준 방식

by 투유니즈맘
어떤 날엔, 곁에 조용히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풀어질 때가 있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순간들,
어쩌면 그게 진짜 환대일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는 환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을 마주하고, 위로한다. 나도 그랬다.
나의 예전 방식은 ‘말’이었다.
누군가를 맞이할 때도, 위로할 때도, 다독일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다.
말로 하는 위로가 최고라고 믿었다. 솔직히 내가 그 사람의 모든 걸 알 수도, 해결해 줄 수도 없다는 걸 알기에 더 많은 말을 건넸다.
그래서일까. 다른 사람의 슬픔 앞에 서면 나는 더 안절부절못했고, 주저리주저리 계속 말을 꺼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무력감이 견디기 어려워서, 뭔가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말을 걸고, 손을 잡고, '괜찮다'라고 말해줘야 비로소 내가 역할을 다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나도 그런 비슷한 일을 겪어봤다고 말해야 그 사람의 고통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기억 저편 어딘가에 있는 꼬깃꼬깃해진 기억까지 끌어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상대방을 위한 위로라기보다는, 내 역할을 다했다는 나만의 안도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안도감이 무엇인지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력한 나 자신을 견디기 어려워했던 것이다. 말을 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뭔가 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으니까. 결국 나는 상대방의 마음을 다독인 것이 아니라, 무력한 나 자신을 달래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집에 오는 길이면 늘 똑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말실수한 건 없었나? 진짜 도움이 됐을까? 혹시 더 상처를 준 건 아닐까?'

누군가를 위로했다는 것보다 혹시나 했을지 모를 실수에 대한 불안함이 더 컸다.

그제야 깨달았다.

만약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위한 위로를 했다면, 이런 고민을 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그래서 더 많은 말을, 더 적절한 조언을, 더 공감되는 이야기를 찾아 헤맸다. 침묵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고, 그 무력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유학생활 중 큰 좌절과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그간 내가 해오던 방식이 오히려 나의 고통과 감정에 방해가 된다는 걸 느꼈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해주던 위로들이 생각났다.

"너라면 잘 해낼 거야", "이것도 다 경험이야", "힘내, 곧 괜찮아질 거야." 평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던 바로 그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를.



나는 위로받고 싶지 않았다. 조언도 필요 없었다. 그저 이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고, 누군가 그 감정을 판단하거나 해결하려 들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리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도, 그 크기와 깊이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슬픔은 비교할 수 없고, 결코 타인의 틀로 이해될 수 없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사람을 마주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말 대신 자리를 내주기로.
손도 잡지 않고, 다독이지 않고, 괜찮다고 말하지 않은 채,
다만 그 옆에 앉아 있는 것.
울고 싶으면 다 울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어쩌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다정함은 같은 공간에 조용히 머물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어느 날, 외로움에, 학업에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간이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내던 중 내가 제일 의지하던 언니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언니들을 마주 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울기 시작했다.
내 앞에 놓인 까르보나라 소스가 말라 떡처럼 굳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울음이었다.
그런데 언니들은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 내 옆에 그대로 앉아 있어 줬다.
그 시간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


슬픔을 말로 풀어내려 하지 않고,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함을 알려주는 그 시간.
내가 마침내 배운 환대는 그런 것이었다.
환대란 상대방을 나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조용히 걸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편한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말을 던지는 친절이 아니라, 상대의 리듬에 조용히 맞춰주는 다정함. 우산을 함께 쓰자고 먼저 말하는 대신, 그가 비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걸 떠올리는 일.
진정한 환대는 내가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떤 날의 위로는 말보다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우르르 팡 변신우산>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날 작은 우산 하나로 시작해 밤이와 달이가 우산이 필요한 동물들에게 손을 내밀지만 때로는 그 호의를 거절당하기도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또 다른 존재에게 다가간다.
처음엔 그냥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그린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작은 우산 속에는, 예전에 언니들에게서 배운 조용한 다정함과 닮은 무언가가,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닮고 싶은 누군가의 용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은 다정함이 만든 큰 우산



비 오는 날, 밤이와 달이는 작은 우산 하나로 동물들에게 다가간다.
우산을 나누려는 아이들의 마음은 거절당하기도 하지만, 실망하지 않고 또 다른 존재에게 다가간다.
그 다정한 마음은 점점 우산을 크게 만들고, 더 많은 이들을 품으며 하나의 풍경이 되어간다.





작은 우산이 가르쳐준 것들



<우르르 팡 변신우산>은 비 오는 날 작은 우산 하나로 시작된 환대의 마음이 점차 넓어져 가는 이야기다. 밤이와 달이는 우산이 없는 동물들에게 손을 내밀고, 때로는 그 호의가 필요 없다는 거절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거절에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또 다른 존재에게 다가간다.



이 장면을 보며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주저리주저리 말을 쏟아내던 때가 있었다. 뭔가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상대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밤이와 달이는 다르다.

이들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 꼭 결과를 바라서가 아니라,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가치를 보여준다.



이야기 속 우산은 단지 비를 막아주는 도구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다가갈 용기를, 누군가에게는 물러날 자유를 허락하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무심코 건네는 우산은 '내 마음을 열어주는 작은 행동'이자 '다른 존재의 필요를 존중하는 배려'다.

작은 우산은 밤이와 달이의 다정한 마음에 따라 점점 커지고, 더 많은 존재들을 품게 되고, 서로의 다름을 품은 공동체로 확장된다.

환대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나의 방식이 아니라, 상대의 리듬에 맞춰 다가가는 일.



<우르르 팡 변신우산>이 전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거절 앞에서도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음이다.

친절이 언제나 받아들여지진 않지만, 중요한 건 그 거절이 우리의 마음까지 닫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

아이들의 다정함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움츠리는 마음보다 훨씬 용감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환대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 것 같다.

밤이와 달이처럼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환대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기다려주는 환대도 있다.

나는 한동안 전자만이 진정한 친절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위로한 후 집에 오는 길에 늘 불안했다. '내가 말실수한 건 없었나? 진짜 도움이 됐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순간, 나는 이미 상대방보다 나 자신을 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환대는 결과를 바라지 않고, 그저 상대방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니까.



런던에서 울고 있던 내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언니들처럼, 진정한 환대는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라는 말조차 때로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진정한 환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냥 가끔 안부를 묻거나, 함께 산책을 하거나, 별말 없이 차 한 잔을 내어주는 것. 상대의 리듬에 조용히 맞춰주는 다정함이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머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생각해보니 런던 그날 밤도 그랬다. 언니들과 나, 그리고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하나의 풍경이었다.

마치 그림책 속 우산 아래 모여든 동물들처럼.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필요도 없었고, 무엇인가를 해결해 줄 필요도 없었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이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달리는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언제까지고 보호받을 수만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젖어가며 웃을 수 있다면, 그 마음은 이미 충분히 단단한 것 아닐까.



그날 밤 언니들이 내게 건네준 것도 결국 그런 것이었다.

말이 아닌, 곁에 머무는 다정한 침묵이라는 가장 큰 우산을.



어떤 위로는 말이 없고, 어떤 다정함은 손짓 하나 없이 다가온다.
그저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순간들이 있다.
오늘 당신 곁에도 조용히 펼쳐진 우산 하나가 있기를,
그 우산 아래에서 당신이 당신의 방식대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르르 팡 변신우산> 노인경 作을 읽고...








글쓴이│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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