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설명이 아닌 존재로 전해진다, <할머니의 감기약>이 전하는 방법
어떤 따뜻함은, 말보다 먼저 마음에 닿는다.
누군가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다시 일어설 힘이 되던 시절이 있다.
그게 사랑인지도 모르고, 받기만 했던 그 마음을 나중에서야 알아차리는 순간들이 있다.
스코틀랜드로 대학을 가기 전, 나는 캠브리지에서 파운데이션 코스를 다녔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가 유학생 시절 내 정서가 가장 안정적이었던 때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땐 내가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같은 기숙사에는 언니들이 있었다.
열 살 위, 다섯 살 위.
부모도 가족도 아닌 사이였지만, 그들은 이유도 조건도 없이 나를 돌봐주었다.
한참 어린 동생을, 마치 오래전부터 품어온 가족처럼 아껴주던 사람들이었다.
영국에서의 첫 해.
나는 영국 예술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언니들은 영국 예술대 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 대입 경험밖에 없었던 나는 ‘예술적 감각’이란 게 뭔지도 모른 채 파운데이션 코스에서 마주한 과제 앞에 막막하기만 했다.
처음 들었던 과목은 무대 디자인.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클라이맥스를 연극 무대로 풀어내라는 과제였다.
나는 <미녀와 야수>의 마지막 장미꽃 한 잎이 남는 장면을 선택했다.
하지만 장면을 골랐다고 뭐가 달라지나.
스케치북에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결과물까지 과정을 담아야 했고, 어떤 방식으로 결과물까지 발전시켜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혼자 교실에 남아 끙끙대던 내 옆에, 언니들이 하나둘 조용히 나타났다.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법, 디벨롭의 흐름, 결과물을 끌어내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모형으로 구현하는 과정까지. 언니들은 마치 오랜 팀원처럼 내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밤늦도록 내 생각을 함께 들여다보고, 스케치북 앞에 나란히 앉아 방향을 함께 고민해 주었다.
우리는 단지 같은 해, 같은 기숙사에 있었을 뿐인데도, 그들은 주저 없이 내 어려움 속으로 들어와 주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과제를 완성할 수 있었다.
플라스터 가루, 물풀, 검정 잉크와 화이트 잉크로 야수의 성을 만들고, 무대 중앙에는 커다란 검붉은 장미꽃 한 잎을 매달았다.
내 생각이 실물로 만들어졌을 때 그 쾌감을 정말 잊을 수 없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내 인생 첫 ‘진짜 작품’이었고,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진짜 돌봄’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따뜻함을 나는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첫 과제의 성취감에 안주한 나는, 포트폴리오 정리도 미루고 면접 준비도 대충 하며 늘어졌다.
그렇게 대입 첫 면접일이 다가왔다.
생각보다 심리적 압박감이 컸고, 며칠씩 잠을 설쳤다.
언니들은 그런 나를 조용히 다독였다.
“그냥 가볍게 대화하러 간다고 생각해.”
“이건 네가 진짜 원하는 학교로 가기 위한 준비야.”
그러면서 내 스케치북까지 꼼꼼히 봐주었다.
그런데 나는 결국, 도망쳤다.
면접장 앞까지 갔다가 돌아서 나와버렸다.
그리고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울감에 빠졌다.
나 자신이 한심했고, 스스로가 작아졌다.
그러나, 그런 나를 언니들은 나무라지 않았다.
내가 더 무너지지 않도록, 조용히 감싸주었다.
“그 학교는 네가 갈 학교가 아니었던 거야.”
“아직 네 학교는 네 개나 남았어.”
“이제 진짜 네가 원하는 학교를 준비해보자.”
그 말이, 그 말투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나를 다시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그건 꾸중도 설교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 후 나는 다시 준비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포트폴리오를 새로 정리하고, 모의 면접도 여러 번 해봤다.
언니들은 여전히 곁에 있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진심으로 원했던 대학에 합격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립다.
언니들이 해준 그 마음은 다시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선물 같았다.
그때의 나를 돌봐준 건 지시도, 설교도 아니었다.
말없이 옆에 앉아, 함께 있어주던 존재.
실패했을 때도 꾸짖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던 말 없는 위로.
그 시절의 내게 머물던 온기는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살아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누군가 조용히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 말없이 챙겨주는 목도리 같은 마음이 오래 남는다.
추운 날씨보다 마음의 냉기가 더 서러운 날엔, 설명보다 먼저 전해지는 돌봄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새삼 느낀다.
말로 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
그런 따뜻함이 있다는 걸, 어릴 땐 몰랐다.
이제야, 조금씩 알아간다.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진짜 위로의 모양을.
그 마음을 조용히 끓여내는 책, <할머니의 감기약>을 오늘 다시 꺼내본다.
그림이 유난히 잘 그려진 날, 담이는 친구와 놀기보다 엄마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현관에 놓인 신발 한 켤레가 말해주듯, 약속했던 엄마는 오지 않았다.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엄마가 또다시 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담이는 혼자 밖으로 나간다. 추운 겨울 거리를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온 담이에게 할머니는 특별한 '감기약'을 끓여준다.
생강과 꿀로 정성스럽게 우린 따뜻한 차 한 잔. 매콤하다가도 달콤하고, 코도 뚫리게 해주는 할머니만의 감기약이다. 차를 마시며 할머니 품에서 잠든 담이가 깨어났을 때, 현관에는 신발 세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할머니의 감기약>은 감기를 낫게 해주는 약이야기 같지만, 실은 관계의 온기를 되살리는 이야기다.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며 겪는 서운함, 외로움, 실망감은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묻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차를 끓이고, 담이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줄 뿐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진짜 돌봄은, 이유를 묻지 않는 사랑이다.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것. 말보다 선한 행동으로 곁에 머무는 것.
나 역시 그런 위로를 받은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캠브리지에서 만난 언니들이 그랬다.
포트폴리오 과제를 앞에 두고 막막해하던 나를 꾸짖지 않고, 밤늦도록 나란히 앉아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해줬다.
실패한 첫 면접 이후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도, 그들은 “괜찮아, 너의 학교는 아직 남아 있어”라고 말하며 내 마음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돌봄이란, 정답을 대신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실수를 막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다시 자신을 믿고 일어설 수 있도록,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일이다.
할머니는 담이의 기다림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언니들도 나 대신 면접장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을 주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과 “지켜보는 마음”이었다.
이 책은 돌봄의 타이밍 또한 조용히 짚는다.
아이가 스스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의 여지를 남기고, 돌아왔을 때 망설임 없이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
그것이 진짜 돌봄이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필요한 때에 온기를 건네는 일.
그리고 이 책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 따뜻한 온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현관 앞에 나란히 놓인 세 켤레의 신발. 기다림의 끝에 도착한 관계의 회복. 말없이 나눈 마음이 결국 가족이라는 공간을 다시 연결한다.
진심 어린 돌봄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남는 온기인지. 말 없는 위로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지탱해주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훗날 누군가를 또 따뜻하게 감싸게 만든다는 것을.
<할머니의 감기약>은 그런 온기의 계보를 조용히 이어가고 있다.
받았던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릴 적 건네받은 작은 위로 하나가
오래도록 마음속을 데우듯.
그 온기를 다시 건넬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된다.
<할머니의 감기약> 김희주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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