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감싸 안으며, 우리는 우리로 살아간다.

부부라는 공생의 연습, <너와 나>가 보여주는 공존의 방식

by 투유니즈맘
사랑은 종종 ‘같음’에서 시작되지만,
지속되는 관계는 결국 ‘다름’을 품는 태도에서 자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배워가고 있었다.




부부는 얼마나 같을까



나랑 남편은 참 많이 다르다.

같은 점을 굳이 찾자면… 유머 코드?

오빠가 툭 던지는 이상한 개그에 피식 웃다가 어느 순간 빠져들었던 기억은 있다.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

성격도, 반응도, 관심사도, 감정 표현 방식도 많이 다르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지만 사실 ‘온전히 잘 맞아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다.

연애할 땐 잘 몰랐던 거리감, 살다 보니 그 틈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아, 나랑 이렇게 다르네.”

“오빠는 이런 사람이었네.”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부딪히며 푸는 편이고, 남편은 조용히 삼키는 편이다.

처음 갈등이 생겼을 때, 갑자기 ‘아 아니야 괜찮아’ 하고 대화를 닫아버리려는 오빠에게 말한 적이 있다.


“오빠, 지금 우리 사이에 벽돌을 하나 놓는 거야.

그렇게 벽이 생기는 거지.”


내 말에 남편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마음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속도는 느렸지만, 나는 그 느린 걸음에 맞춰 걷기로 했다.



우리는 여전히 다르다.

일에 집중하는 방식도, 좋아하는 관심사도, 심지어 유튜브 알고리즘조차 다르다.



우린 처음부터 뭔가 특별한 연애를 했던 건 아니다.

그저 조용했고, 차분했고, 자연스러웠다.

오빠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내가 관심 있는 것에 슬며시 관심을 가져주곤 했다.

먼저 대화의 손을 내밀기도 했고,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나에게 ‘함께하자’는 신호를 자주 건넸다.



그런 오빠의 모습에 나도 조금씩 감정을 고요하게 꺼내는 사람이 되어갔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닮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편이 남편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남편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다.

나는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으로가 아니라,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법도 배웠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부라는 건 결국,

서로의 속도에 맞춰가며 관계의 온도를 배워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구 한 사람이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걸음을 늦추거나, 때론 한 발 앞서 기다리는 일.

그리고 말이 없어도 연결되는 때가 있다.

눈빛이나 행동 하나로도, 우린 우리가 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온도를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다.





‘나’에서 ‘너,’ 그리고 ‘우리’로


‘달콤한 너’라는 속삭임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의 특별한 만남을 따라간다.

잔디와 개미, 얼룩말과 타조, 하마와 거북,

그리고 바다 너머 상어와 빨판 상어, 문어와 참바리까지.

서로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 조용한 시선 속에서 하나씩 등장한다.

말을 아끼는 문장과 따뜻한 그림 속에서

‘나’는 ‘너’를 바라보고, 부르고, 곁에 머문다.

그리고 ‘너’와 ‘나’는 조금씩 ‘우리’가 되어간다.





다름을 감당해가는 마음에서, 관계는 시작된다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와 끊임없이 엇갈리고 서로 다른 속도를 이해하려 애쓰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주 같은 방향을 보지 못한 채, 서로의 낯선 방식과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마음속에 불쑥 올라오는 질문들.

‘왜 저럴까?’

‘왜 나 같지 않을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알게 된다.

진짜 관계는 닮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다름을 감당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부부가 되고 나서야 조금씩 알아갔다.



상어와 빨판상어처럼,

한쪽이 일방적으로 보일 수 있는 관계조차 크게 보면 하나의 균형 속에 있다.

관계는 꼭 1:1로 나누어져야 의미가 있는 걸까?

누군가가 주고, 누군가는 받는 관계라 해도 그 안에 신뢰와 존중이 있다면,

그 자체로 조화로운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런 시선은 인간관계에서도 유효하다.

우린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내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아도,

충분히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그 다름이 관계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너와 나>는 이처럼 다름을 껴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개미와 진딧물, 얼룩말과 타조, 거북과 하마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존재들이

서로에게 곁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 속에는 우리가 종종 놓치고 사는 관계의 본질이 숨어 있다.



완벽한 이해는 아니지만, 다정한 지켜봄.

그게 어쩌면 우리가 가장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책장을 넘길수록 ‘나’와 ‘너’는 점차 ‘우리’로 확장된다.

닮아야 할 이유 없이,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안에서

관계는 단단해지고, 삶은 풍요로워진다.



공생이라는 건 결국 서로가 같아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지켜보며, 감당하며, 그 다름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 서주는 일.



아이를 키우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너와 나는 얼마나 같아야 함께할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너와 나>는 말없이 답한다.


“꼭 같지 않아도 괜찮아.

다르기 때문에 곁에 머물 수 있는 거야.”



같지 않기에 더 자주 멈춰 서고,

다르기에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간다.





<너와 나> 사이다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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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사진은 첫째 임신했을 때 찍은 만삭 스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