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바라던 세계에 닿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욕망이 좋아함을 가릴 때, <딸기곰 꾸미>가 건넨 전환의 이야기

by 투유니즈맘
어떤 마음은, 오래도록 나를 살게 했고,
또 오래도록 나를 흔들어 놓았다.




아주 오래된,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갈망



올해 서른여섯,

한평생 닿을 듯 말 듯, 가끔은 손끝으로 살짝 스친 듯도 했지만 결국엔 끝내 닿지 못했던 욕망이 하나 있다.


어딘지 모를 낯선 나라에서의 삶.



단지 잠깐 머물다 오는 여행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처럼 그 나라의 언어를 쓰고, 그들의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며,

공기와 분위기, 문화에 천천히 스며드는 삶. 그것이 나의 오래된 욕망이었다.



그 시작이 언제였을까 돌아보면, 2000년 해리포터가 처음 개봉했던 해였을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스쳐 지나가던 갈색빛 런던의 거리.

짙은 안개와 벽돌 건물, 기묘하게 낯선 분위기 속에서 설명할 수 없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어딘지는 잘 몰라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품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외국이라는 세계를 막연한 이상향으로 삼았다.



그 바람을 품은 채 지낸 초등학생 시절,

나는 걸스카우트 활동으로 5학년과 6학년 여름, 일본과 중국을 여행할 기회를 얻었다.

비행기를 처음 탔고 처음으로 내가 쓰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땅에 발을 딛었다.

그 낯선 경험은 이상하고도 신선했고, 무엇보다도 너무 좋았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대기하던 시간동안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지 않았다.

여행 회화책을 꺼내 옆에 앉아 있던 일본인 아저씨에게 서툰 발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는 잠시 놀란 듯 나를 바라보다가, 환한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통했다.


비록 단어 몇 개를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이 주는 설렘과 짜릿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이곳과, 이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감각.

낯선 타인과 이어졌다는 느낌은 내가 한층 더 큰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그때부터 '외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또렷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한 장소에 대한 바람이 아니라 그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을 상상하는 기쁨이었다.

나는 그 기분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고, 그 감정은 자라나 내 존재 전체를 감싸 안은 욕망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 친구가 소개해준 일본 드라마 <고쿠센>을 시작으로 <프렌즈>와 같은 미국 시트콤을 통해

나는 외국이라는 단어 자체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와 드라마, 노래, 책들을 흡수하면서 나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단지 감상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그들처럼 일상을 살고 싶었다. 그 삶에 자연스럽게 묻혀서 나 역시 그들 가운데 살아 숨 쉬고 싶었다.



그 마음은 결국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혼자서 서울에서 열리는 유학박람회를 찾아다녔고,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해 마침내 2007년 9월 1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온 욕망이 현실로 나타난 순간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미국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았다.

단지 '미국에 간다', '미국에서 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충분히 괜찮은 인생이라고 믿었다.

그 뒤로 나는 내 욕망을 따라 계속 움직였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영국으로. 그 나라들이 내 욕망의 좌표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멈추지 않고 걸었다.



영국 공항에 도착해 픽업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 이곳은 내가 오래도록 꿈꾸던 그 세계구나.

해리포터 속 그 영국이 실제로 내 눈앞에 있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그러나 꿈은, 결국 현실의 무게 앞에서 깨지기 마련이다.

외국에 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나였고, 내가 안고 있던 삶은 그대로 내 몫으로 남아 있었다.

이방인의 삶이란,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한 또 다른 투쟁이었다.

외국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반복된 일상이었고,

그 일상은 나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부딪히게 만들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현실에 틈이 생길 때마다 다른 나라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영국에서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네 번째 나라는 없었고, 나는 끝내 그곳에서 부서졌다.

영국 생활 4년 반. 내 환상은 산산이 무너졌고, 나는 조각난 꿈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그 모든 욕망을 놓고, 이젠 현실에 정착할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여전히 외국에 살고 싶었다.

20대의 끝자락,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들고 또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이번엔 환상을 현실로 잘 가꿔보자 다짐했지만,

2020년 2월, 모든 것을 무너뜨린 건 내 욕망도, 내 선택도 아니었다.



현재 나는 한국에 있고, 가정을 이루었고, 아이도 있다.

그런데 여전히, 외국에 대한 욕망은 내 안에 조용히 살아 있다.

아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마음은 처음엔 좋아하는 감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욕망이 되었고,

욕망은 곧 집착이 되어 결국 나를 잃게 만들었다.

<딸기곰 꾸미>는 그 마음의 흐름을 햇살이 바람을 따라 움직이듯 조용하고 단단하게 따라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순간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가 숲을 물들일 때까지



깊은 숲속 작은 집에 사는 아기곰 꾸미는 꿀을 좋아하며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 중 우연히 딸기를 맛본 꾸미는 그 맛에 푹 빠지게 되고,

그날 이후로 꿀 대신 딸기만 먹으며 지낸다.

점점 몸까지 분홍빛으로 변할 만큼 딸기에 몰두하던 꾸미는 숲속 모든 딸기를 다 먹어버리고 난 뒤,

딸기를 더는 구할 수 없게 된다.


딸기 없는 일상에 혼란스러워하던 어느 날 밤, 꾸미는 뒤뜰에서 아주 작은 딸기 새싹 하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간, 딸기를 다시 만나는 조금 다른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

그 길은 예전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마음에도 자라나는 방식이 있다면



꾸미가 처음 딸기를 발견했을 때의 그 순간, "냠냠,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말하던 그때는 순수한 기쁨이었다.

마치 내가 간사이 공항에서 낯선 아저씨와 말이 통했을 때 느꼈던 그 설렘처럼. 그때는 그저 좋았다.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 순간 자체가 주는 기쁨에 온전히 빠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좋아하는 마음이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꾸미에게는 딸기가 일상의 전부가 되었고, 나에게는 외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점차 내가 '가지고 있어야만 안심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결국에는 '가지지 않으면 나는 불완전하다'는 믿음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믿음이 욕망을 만들고, 집착으로 굳어졌다.



결국, 우리는 둘 다 무언가를 잃기 시작했다.

꾸미는 숲의 모든 딸기를 먹어치우며 결국 딸기 자체를 잃었고,

나는 외국에 산다는 사실에만 매달리며 정작 그곳에서의 삶 자체를 놓쳤다.



꾸미는 딸기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딸기를 '다르게'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스스로 심고, 키우고, 나누는 방식으로.

반면 나는, 환상이 산산조각 났음에도 그 마음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

무너진 마음을 끌어안은 채, 또다시 다른 나라로 향했다.

마지막 일본으로 향할 때는 같은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나는 꾸미처럼 완전히 전환하지는 못했지만, 그때부터 조금씩 나만의 새싹을 심기 시작했던 것이다.



꾸미가 꿀벌 친구들과 함께 딸기를 기르고,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나누어 먹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진정한 만족은 독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환에서,

혼자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풍요에서 온다는 것을.

내가 그토록 원했던 외국에서의 삶도 결국 그 안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고,

무언가를 나누는 순간에 비로소 의미를 가졌다.

간사이 공항에서 아저씨와 나눈 짧은 대화처럼,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만난 작은 연결의 순간들이 진짜 소중한 것이었다.



욕망과 좋아함은 다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충만함은 나누어질 때 더욱 커진다.

꾸미가 마지막에 찾은 것도, 내가 아직도 찾고 있는 것도, 그런 종류의 행복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딸기를 품고 살아간다.

그것을 어떻게 기르고, 누구와 나눌 것인지 선택하며.

그리고 언젠가, 그 딸기가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오래도록 가슴에 남은 마음이 있다면,

그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써내려갈지는

이제 나에게 달려 있다.





<딸기곰꾸미> 김소현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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