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을 기다리며 도넛을 잃어버린 개미들의 이야기, <딩동거미>의 경고
어떤 질문은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주도권을 원한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꾸만, 정답을 외우듯 말하게 된다.
'
나는 창의성에도 공식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1+1처럼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좋은 것을 만드는 어떤 법칙 쯤은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수학 공식을 외우듯 창작의 공식도 어딘가에 적혀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같은 것.
그래서 대학교 1학년, 첫 과제를 받았을 때도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듯 머릿속으로 공식을 만들어 냈다.
1학년 1학기.
대강당에 모인 약 80명의 학생들. 우리는 모두 같은 의자에 앉아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4명의 예술가는 차례로 나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꿈꾸는 작업실을, 창작의 철학을 풀어 놓았다.
나는 그 발표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999박스. 가로세로높이 9M의 정육면체 안에 예술가를 위한 작업실을 설계하는 과제.
같은 조건, 같은 예술가, 같은 가이드라인.
이렇게 변수들이 통제되면 결국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스무 명이 한 그룹이니까, 아무리 개성을 부린다 한들 결국 서너 가지 패턴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그 서너 가지 중에 가장 좋은 정답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도서관 건축 서가는 그렇게 내 두 번째 집이 되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집, 건축 잡지들을 뒤지며 성공 사례들을 수집했다.
유명한 아틀리에들의 사진을 복사하고, 효율적 동선과 자연광 유입, 작업 공간의 최적화 같은 요소들을 체크하며 리스트로 만들었다.
내 노트는 마치 정답지처럼 빼곡해졌다.
도서관에서 같은 학년 친구들과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묘한 눈치를 봤다.
서로 다른 책장으로 흩어져 각자의 레퍼런스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우리가 찾는 건 같은 것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 누가 더 먼저 찾느냐가 관건이었다. 어차피 너도 나도 같은 공식을 찾을 거라면, 내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잘 적용해야 했다.
내 머릿속 공식은 완벽해 보였다. 이 정도면 A학점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했을까. 밤마다 침대에서 뒤척이며 생각했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그 생각을 나만 할 수는 없을까.
결국 너도 나도 다 같은 답에 도달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해야 하는 건 아닐까.
같은 공식을 찾아낸 사람들이 나말고도 열아홉 명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다가온 중간평가.
중간평가는 소규모로 진행됐다. 4개의 그룹이 섞여 7-8명으로 나뉘어 모여 앉아 작업의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아이디어들, 어설픈 모형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직 다들 비슷한 수준이네.'
그 작은 울타리 안에서는 각자가 서로 다른 우주를 펼쳐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었다.
중간평가 이후의 개별 상담에서 교수님은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네가 생각하는 이 예술가는 어떤 사람이야?"
"왜 그렇게 생각했어? 왜 그렇게 풀어냈어?"
"그럼 너는 어떤 사람이야?"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찾은 수많은 레퍼런스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한 답변들만 모아서 설계했는데, 왜 자꾸 '왜'라고 묻는 걸까. 정답은 이미 찾았는데.
데드라인이 다가오자 1학년 스튜디오는 전쟁터가 되었다.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으며, 서로의 작업물을 힐끗 보며 안전거리를 재고 있었다.
마치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의지하는, 그런 묘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떠돌았다.
한 학기가 끝, 드디어 그날이 왔다.
전시장 벽면을 따라 네 개 그룹의 작품들이 쫙 펼쳐졌다.
스무 개씩, 총 여든 개의 999박스들. 나는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했다.
정말로, 정말로 그 어떤 것도 비슷한 게 없었다.
같은 예술가, 같은 조건, 같은 가이드라인. 심지어 같은 도서관에서 같은 책들을 보며 준비했을 텐데.
내가 그토록 확신했던 그 공식 안에서 여든 개의 완전히 다른 우주가 탄생해 있었다.
어떤 건 빛을 품었고, 어떤 건, 어떤 건 어둠을 끌어안고 있었다.
또 어떤 건 모든 것을 한번에 품을 만큼 뚫려 있었고, 어떤 건 미로 같았다.
전시장을 한 바퀴, 두 바퀴 돌아보며 나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그토록 확신했던 공식은 어디로 간 걸까.
분명 우리는 모두 같은 출발점에 서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곳에 도착할 수 있었을까.
같은 씨앗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걸까.
그날 밤, 기숙사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틀렸던 건 아닐까.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 자체를 잘못 이해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혼란이 시작이라는 걸.
그리고 진짜 중요한 질문들은 따로 있다는 걸. 그 질문들이 정답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는 것도.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정답을 찾고, 정답을 외운다.
시험지는 사라졌지만, 그 틀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딩동거미> 속 개미들도 그랬다.
거미가 내는 유도된 질문에, 아무 의심 없이 정답을 맞히기 바빴다.
나도 그렇다.
일상에도, 육아에도,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나는 여전히 ‘딩동’을 듣고 싶어하는 개미가 된다.
숲속에 장난기 많은 거미가 살았다.
어느 날, 도넛을 옮기는 개미들을 발견한 거미는
거미줄로 모양을 만들며 수수께끼를 내기 시작한다.
"이게 뭐더라?"
개미들은 신나게 정답을 외치고,
거미는 “딩동~” 하고 즐겁게 반응한다.
놀이처럼 시작된 그 수수께끼는 점점 열기를 더하고,\
개미들은 정답 맞히기에 몰두한다.
그러다 마지막 문제,
눈을 감은 사이
도넛은 사라진다.
"나는 언제부터 정답만 찾으려 했을까?"
이 질문은 내 인생에 종종 떠오른다.
999박스 전시 공간에서 느꼈던 그 혼란스러움은 지금도 밤잠을 설치게 한다.
거미가 내는 수수께끼에 신나게 정답을 외치는 개미들.
나도 그런 개미들 중 하나였다.
교수님이 바랐을 법한 답,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사례, 책들이 말해주는 모범적인 정석들을 찾는데만 급급했다.
그리고 그 정답들을 맞히는 순간마다 스스로를 안도시켰다.
'딩동, 맞았다!' 하면서.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개미도 나도 정답 맞히기에 몰두하는 동안, 정작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공식'이란,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기숙사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떠올린 생각이
지금도 종종 나를 멈춰 세운다.
왜 우리는 질문보다 답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왜 과정보다 결과에, 고민보다 결론에 목말라하게 되었을까.
도서관에서 만났던 친구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서로 다른 책장을 향해 흩어졌지만, 결국엔 모두 같은 '정답'을 향해 걸어가던 우리.
그때 우리가 진짜 경쟁하고 있던 건 무엇이었을까.
창의성이었을까?
아니면 창의성을 흉내 내는 기술이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이게 뭐더라?" 가 아니라 "왜 이 질문을 하는 걸까?"
"정답은 뭘까?" 가 아니라 "내가 진짜 알고 싶은 건 뭘까?"
"어떻게 하면 잘할까?" 가 아니라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그 질문들을 멈추지 않고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정답에 길들여진 삶 속에서 질문을 되찮는 가장 단순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씩 다르게 묻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누구의 답도 아닌, 나만의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여든 개의 999박스가 보여준 건 바로 그것이었다.
같은 조건에서도 각자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질문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 답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딩동거미는 오늘도 새로운 곤충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은 무슨 문제를 내볼까?"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중요한 건 그 거미가 내는 문제를 맞히는 게 아니라,
그 거미가 정말 듣고 싶어하는 게 무엇인지 헤아려보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때로는 정답보다 질문이,
결론보다 과정이,
완성보다 고민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도.
어쩌면 우리 모두 각자의 999박스를 짓고 있는지도 모른다.
똑같은 조건 속에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그런 존재들로서.
진짜 질문은,
대답이 아니라
다시 묻는 나를 남긴다.
<딩동거미> 신성희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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