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과 행동 사이, <오늘은 진짜진짜 혼자 잘거야>가 건네는 숨고르기
결정은 이미 내렸는데,
마음은 아직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가 있다.
"이건 해야 해.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인생을 살면서 이런 확신에 찬 순간들이 있었다.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직감,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명한 목소리.
이런 중요한 결정 앞에서 많은 고민을 하리라 생각되겠지만, 나는 이상하리만큼 흔들리지 않고 결정했다.
준비가 덜 되어 있어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지금 해야 한다'라는 감각이 오면 그냥, 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짜 마지막 그 마지막 순간에 나는 꼭 멈칫한다.
얼마 전 책장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의 일이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책들을 정리해야 했고, 어떤 책장이 필요한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마음에 드는 책장을 찾고, 방 크기에 맞는 수량을 계산하고, 할인 카드에 쌓인 포인트까지 확인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데 결제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마우스가 멈춘다. 잠시만, 정말 이게 맞나?
나도 모르게 오는 숨고르기 시간이다.
이번에 특허를 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꿈이 생겼고, 그 일을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데 특허는 반드시 필요한 안전장치였다. 논리적으로 따져봐도 명확했다. 그런데 막상 특허사무소에 전화 한 통을 걸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핸드폰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번호를 눌렀다가 지우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도 그렇다. 처음에는 신명나게 글을 전개해 나간다. 확신을 가지고 나의 인생을 써내려 간다. 키보드 위를 달리는 손가락이 경쾌하고, 문장들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완성! 이번 글은 정말 잘 써졌다고 스스로 만족한다.
그런데 발행 버튼까지는 하루가 걸린다. 읽고 또 읽고, 이게 맞나? 주제에 맞는 내용을 썼나? 이런 생각에 빠져 같은 글을 수십 번 읽는다.
돌아보면, 그 멈칫은 늘 같은 결을 가지고 있었다.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결정에 대한 의구심 때문도 아니었다.
실은 감정이 따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머리로는 이미 모든 것을 정리했지만, 마음이 "그래,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줄 때까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홉을 넘긴 숫자들을 만들어낸다.
아홉 반, 아홉 반의 반, 아홉 반의 반의 반까지.
그 시간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왜 이렇게 우물쭈물하는 거지? 결정했으면 빨리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데.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됐다.
그건 나만의 리듬이었다는 걸.
누군가는 셋에서 바로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나는 아홉 반의 반까지 숨을 고른다.
그건 느린 게 아니라, 내 방식대로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나만의 열을 향해 천천히 숨을 고르던 그때, 나처럼 숙자를 늘려가던 존재가 있었다.
혼자 자겠다고 다짐한 아기 토끼.
하나, 둘, 셋… 아홉, 아홉의 반, 아홉의 반의 반.
숫자는 늘어나고,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문다.
물을 마시고, 인형을 데려오고, 상상의 박쥐를 떠올리며
토끼는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마음을 준비한다.
그 모습이 꼭 나를 닮아 있었다.
아기 토끼는 오늘만큼은 정말로 혼자 자기로 결심한다.
“나 이제 언니니까 혼자 잘래!”
엄마가 숫자 열까지 세는 동안만 옆에 있어달라는 조건과 함께, 씩씩한 독립이 시작된다.
하지만 다섯쯤부터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목이 마르고, 화장실이 가고 싶고, 인형도 데려와야 한다.
결국 숫자는 아홉, 아홉 반, 아홉 반의 반까지 늘어난다.
그럼에도 아기 토끼는, 여전히 혼자 자고 싶은 마음을 놓지 않는다.
"나 이제 언니니까 혼자 잘래!"
아기 토끼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 결심에는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숫자를 세어가면서 자꾸만 핑계가 생긴다. 목이 마르다, 화장실에 가야 한다, 인형이 무서워할까 봐 데려와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숫자는 늘어진다. 아홉, 아홉 반, 아홉 반의 반.
처음에는 그냥 귀여운 아이의 모습으로만 보였다. 혼자 자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막상 무서워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아이.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토끼는 사실 시간을 벌고 있었던 것 같다. 혼자 자기로 한 결심은 진짜였지만, 마음이 그 결심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 토끼는 재촉하지 않았다. 아이가 만들어낼는 시간들을 그저 함께 보내주었다. 물을 가져다주고, 화장실을 다녀오기를 기다려주고, 인형을 데려오는 것도 허락해주었다. 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들어주었다. 박쥐가 동굴로 착각하고 들어올까 봐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도 웃어넘기지 않았다.
그 기다림 속에서 아기 토끼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혼자 자고 싶은 마음도 진짜고, 무서운 마음도 진짜라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정말로 준비가 되었을 때, 가장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나, 사실 엄마가 제일 필요해."
아기 토끼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의 그 망설임들도 결국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결정은 이미 내렸는데, 감정이 그 결정을 따라오지 못할 때가 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마음이 "아직이야, 조금만 더"라고 속삭일 때가 있다.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의 그 잠깐,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의 그 하루. 그 시간들은 우유부단함이 아니었다. 내가 내린 결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이었다. 마음이 따라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시간.
아마도 이런 시간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닐 것이다.
마치 동그라미를 그리듯, 조금씩 조금씩 둘레를 만들어가다가 마침내 하나의 완전한 형태가 되는 것.
아기 토끼의 아홉 반, 아홉 반의 반은 그 둘레를 그려가는 시간이었다. 나의 망설임도 마찬가지였다.
결정과 행동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빨리 건너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건너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다리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마음을 준비하고, 감정을 정리하고, 때로는 두려워하면서도 결국 한 발을 내딛는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은 감정이 결정을 따라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기 토끼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배워가고 있다. 아홉 반, 아홉 반의 반이라는 나만의 숫자와 함께.
오늘 밤, 혹시 아홉 반쯤에서 멈춰 있다면, 괜찮다.
마음이 따라올 때까지 숨을 고르는 시간,
그것도 분명 필요한 시간이니까.
<오늘은 진짜진짜 혼자 잘거야> 홍수영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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