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사는 용기에 대해, <방울토마토>의 철학
세상의 기준에 닿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빛이 흐려지는 건 아니다.
준비하는 시간이 가장 외로울 때가 있다.
결과가 보이지 않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 의미가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을 때 말이다.
만 29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손에 쥐고 일본으로 떠났다. 한국에서는 이미 신입 채용 나이를 넘어선 상황이었지만, 일본은 조금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막연한 기대에 불과했다.
일본의 신졸 채용 시스템은 정해진 시기에만 문을 열었고, 내가 도착한 건 초여름이었다. 앞으로 9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JLPT N1을 취득하고, 어학원을 다니며 비즈니스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인만 있는 서점에서 일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매일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이 쌓여가는데, 정작 내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일본어 실력? 문화 이해? 면접 기술? 모든 것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으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해가 바뀌고 봄이 와서 채용 시즌이 시작되었고, 서류는 대부분 통과했다. 그때는 그동안의 준비가 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장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현실을 마주했다.
9개월 동안 준비한 답변들은 있었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질문들 앞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답변'만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면접관이 정말 듣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그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은 없었다. 연달아 오는 탈락 통보를 받으면서 깨달았다. 나는 9개월 동안 열심히 했지만, 겉핥기식 준비였다는 것을.
그때 한 분이 내 준비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성당에서 알게 된 오빠였는데, 그는 내 답변들을 보더니 "준비는 많이 했는데, 정작 중요한 게 빠져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외운 답변들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그 답변들이 어떤 맥락에서 나와야 하는지, 면접관이 그 답변을 들었을 때 무엇을 더 궁금해할지를 알려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A4 10장 분량의 질문지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외우지 않았다. 각 질문이 왜 나오는지, 내 답변이 어떤 인상을 주는지 이해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지난 9개월의 준비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만 그 준비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을 뿐이었다.
결국 중견기업에서 내정을 받았다. 처음에 목표했던 대기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이 회사 면접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여기서 일하는 내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어? 이 회사다.' 싶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정말 원했던 건 화려한 간판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을. 달콤한 성공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내가 반짝일 수 있는 곳을 찾았으니까.
돌이켜보면, 준비하는 시간 자체가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조언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준비는 원하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자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어떤 곳에서 빛날 수 있는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나다운지 알게 되었다.
달콤하지 않아도, 내 방식대로 반짝이면 되는 거였다.
도서관에서 만난 반짝이는 방울토마토는 나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달콤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받으면서도, 자신만의 자리를 찾기 위해 묵묵히 준비하는 그 작은 존재.
크리스마스 케이크 위에 오르지 못해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 반짝반짝 빛나는 법을 익혀가는 방울토마토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보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마트에서 방울토마토는 케이크 위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달콤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래도 방울토마토는 포기하지 않았다. 케이크의 훌륭한 재료가 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자신을 가꿔나갔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콘테스트에서 딸기, 포도, 체리가 차례로 선택되고, 마지막 자리마저 블루베리에게 돌아갔다.
다른 채소들이 "우리는 하나도 달콤하지 않아"라며 주저앉았지만, 방울토마토는 달랐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니까 멋진 일이 생길지 몰라"라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자신을 돌보았다.
깨끗한 물에 목욕하고 햇볕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안개 낀 밤에 누군가 방울토마토를 찾아왔다.
그 오랜 준비의 시간이 방울토마토를 어디로 데려갔을까?
<오! 방울토마토>는 작은 존재가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방울토마토는 달콤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받지만,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본질을 더 빛나게 만들어간다.
우리는 종종 '달콤함'이라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
남들이 원하는 모습,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들. 마치 모든 과일이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오르고 싶어하듯, 우리도 모두가 인정하는 '대기업'이라는 무대에 서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여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 적성이나 관심사는 뒷전이고, 오직 누구나 아는 큰 회사에 들어가는 것만이 목표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들이 존재한다. 이는 현대 사회의 획일적 기준이 얼마나 편협한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는지를 보여준다. 방울토마토의 여정은 단순히 개인의 성장을 넘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구조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방울토마토가 자신을 바꾸려 노력하지만, 결국 본질적 특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동을 해도 여전히 달콤하지 않은 방울토마토의 모습에서, 우리는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무리하기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성향이나 강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건설업부터 식품업, IT업계까지 닥치는 대로 지원서를 넣었다. 그러다 보니 지원동기 한 줄을 쓰는 것조차 막막했다. 그 회사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진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먼저 탐구한 후 회사를 선택하니,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워졌다.
준비하는 시간은 때로 외롭고 불안하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니까 멋진 일이 생길지 몰라"라는 방울토마토의 마음은,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며 "분명 좋은 기회가 올 거야"라고 자신을 다독이던 모든 이들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을 가꿔나가는 일. 이런 모습을 통해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다.
그 시간들이 쌓여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예상했던 곳이 아닐 수도 있다. 케이크가 아니라 샐러드 트리의 꼭대기일 수도 있다. 처음 꿈꿨던 화려한 간판이 아니라, 정말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곳일 수도 있다.
산타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울토마토가 자신을 꾸준히 가꿔왔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진정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우리가 얼마나 반짝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기토끼가 방울토마토를 찾는 모습은 진정성의 힘을 보여준다. 겉모습만 화려한 것보다 건강하고 진실한 것의 가치를 아는 안목이 생겼을 때, 비로소 방울토마토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성숙한 시선이기도 하다.결국 이 그림책은 말한다. 달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억지로 케이크에 어울리려 하지 않아도 건강한 샐러드에서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자신만의 자리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것이라고.
방울토마토의 이야기를 덮으며,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워킹홀리데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자리걸음 같았던 답답한 날들, 면접을 겪으며 맞닥뜨린 탈락과 좌절,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나만의 자리까지. 모든 과정이 방울토마토의 여정과 닮아 있었다. 달콤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케이크에 오르지 못해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서 가장 나답게 빛날 수 있는지 아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빛나는 우리 모두가 충분히 아름답다고.
세상의 기준에 닿지 않아도 괜찮다.
내 속도, 내 빛깔을 믿는 마음에서
진짜 나의 자리가 시작되니까.
<오! 방울토마토>를 박지선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읽음談(담)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