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1화 빛의 바다 위, 서툰 발걸음

서툴지만 로딩 중입니다.

by 슬미탐

프롤로그

서툴다는 건,

멈춰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나답게 걸어가는 중입니다.


도시는 늘 빠르게 흘러갑니다.
사람들도, 관계도, 감정도.
그 속에서 나는 자주 뒤처졌고, 때로는 버려진 것 같았어요.
어딘가 부족한 나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마음은 더 깊이 숨게 되더군요.

이 글은 그런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서툰 말투, 엉킨 감정,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들.
그 모든 것들을 감정의 파편처럼 하나하나 주워 담아 보았습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당신의 마음 한켠에도,
그런 서툰 감정이 있다면—
이 이야기들이 조금은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창밖에는 검푸른 밤하늘 아래로 거대한 불빛의 물결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 검은 천 위에 수천 개의 별을 흩뿌려놓은 것 같았다. 기내는 잔잔한 음악과 낮은 기내등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R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도시의 빛에 매달려 있었고, 비행기 안은 어두운 조명 아래 잔잔한 기내 음악만 흐르고 있다.



“Ladies and gentlemen, we’ll be landing shortly at 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 Please fasten your seat belts…”


기내 안내방송이 끝나자, 작은 진동과 함께 활주로가 가까워졌다. R은 가죽 시트에 등을 단단히 붙인 채 손바닥에 약간의 땀을 느꼈다. 창밖으로 펼쳐진 도시의 불빛은 말 그대로 ‘빛의 바다’였다. 아득하게 펼쳐진 맨해튼의 야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로 반짝이는 도로, 고층 빌딩의 창들, 쉼 없이 움직이는 헤드라이트들이 어지럽게 깔려 있었다.


그가 살아온 버몬트의 고요한 풍경, 숲과 호수, 벽돌집들이 고르게 이어진 평화로운 마을은 이 빛나는 도시에 비해 너무도 멀고, 작게 느껴졌다. 그는 얼마 전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글로벌 브랜드 전략 컨설팅 AUREL & Co. 로부터 Job offer 제안을 받아 이제 막 뉴욕에 도착한 것이다.


비행기는 천천히 게이트로 진입했다. 엔진 소리가 낮아지고, 다시 안내 방송이 다시 흘러나왔다.


“On behalf of the crew, welcome to JFK International Airport.
We hope you enjoy your stay in New York City.”


그 순간, R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도시의 소음보다 더 크게 들리는 듯한 기분과 가슴 한편엔 묘한 긴장감과 두려움, 그리고 막연한 기대가 동시에 스며들고 있었다.

터미널 문을 빠져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와닿았다. 그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천천히 택시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앞사람들이 차례대로 택시에 올라타는 동안,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의 불빛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밝았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빨랐다. 모두가 마치 어디론가 급히 도망치듯 움직였다. 그는 자신만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Next!”

택시 안내원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손짓하며 그에게 말했다.

R은 서둘러 택시를 타러 다가갔다. 노란 차의 문이 살짝 열리고, 짧게 자른 흰머리에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 있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드라이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짐을 R의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으며 물었다.

“어디로 가세요?”


R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헌슨 호텔, 매해튼요.”


“네.. 출발합니다.”


잠시 후 그가 탄 택시는 JFK 공항에서 빠져나와 맨해튼을 향해 달리고 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 끝없이 이어진 고속도로의 불빛들이 R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복잡한 도로 위를 매끄럽게 달리는 택시의 진동 속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긴장했다. 그때 백미러로 R의 표정을 살피던 드라이버가 말을 걸었다.

택시안.png

“맨해튼은 처음인가요?”

R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네, 처음입니다. 뉴욕 자체가 사실 처음이에요.”


드라이버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이더라고요. 보통 처음 오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표정을 지어요. 설레고 기대되는데,

한편으로는 긴장되고 불안한 그런 얼굴이죠.”


그의 말에 R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제 얼굴에 그렇게 다 드러났나요?”


“여기 오래 일하다 보면 알게 돼요. 뉴욕은 그런 도시거든요. 다들 성공을 꿈꾸며 이곳에 오지만,

한편으론 어디론가 금방이라도 떠나고 싶어 하죠.”


창밖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광고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뉴욕은 겉보기엔 반짝거리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꽤 힘든 곳이에요. 외롭고, 사람들도 바쁘고.

근데 또 이상하게 사람을 계속 붙잡는 뭔가가 있어요. 참 묘한 도시죠.”


“뉴욕에는 왜? 오신 거예요? 일 때문인가요, 꿈 때문인가요?”


R은 이 대화가 살짝 귀찮은 듯 답했다.

“둘 다…겠죠? 이 도시가 저를 조금 더 성장시켜 줄 거라고 믿었어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뉴욕은 사람을 많이 성장시켜 주죠. 아프게도 하고요.

한 가지 중요한 팁을 드리자면, 이 도시에서 버티려면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야 해요.

남들 따라 너무 빨리 뛰면 금방 지쳐버리니까요.”


R은 그의 말이 가슴 깊이 파고드는 걸 느꼈다. 짧은 대화였지만, 처음 만난 이 낯선 사람의 말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와닿았다. 그는 작게 미소 지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자신의 속도를 찾아야 한다…”


택시는 어느덧 맨해튼 중심가로 접어들었다. 길게 늘어선 차들, 쏟아지는 빛, 건물 사이사이 스며드는 그림자들. 그는 유리창 너머로 뉴욕의 심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택시는 호텔 인근 도로 옆에 멈췄다.


“자, 다 왔습니다. 행운을 빌어요.”

R은 고개를 숙이며 작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차 문이 열리고, 낯선 도시의 공기가 다시 그를 감쌌다.R이 택시에서 내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출발했다. 그리고 뉴욕 맨해튼 밤거리 속으로 녹아들었다. 아마 또 다른 낯선 이방인을 만나러 갈 것이다. 그 짧은동행이 남긴 건, 도시가 말없이 건네는 아주 조용한 첫 번째 인사였다.


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커다란 간판이 네온 불빛 아래 차분히 반짝였다.

『The Hanson Hotel』

간결하고 현대적인 간판에 적힌 글자, 호텔은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했고, 마치 이 도시의 차가움과 어울리는 절제된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당분간 지내게 되겠구나. “


R은 혼잣말을 하며 호텔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호텔 로비는 절제된 조명과 고요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대리석 바닥 위로 무겁게 끌리는 캐리어의 소리가 또각, 또각 울렸다.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은 사람들의 대화조차도 조용히 흘러가게만들었다. R은 잠시 숨을 고르듯 주변을 살폈다. 프런트 데스크에 다가서자,


호텔 직원이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Welcome to The Hanson Hotel. May I help you?”


“네, 예약했어요. R...입니다.”


직원은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컴퓨터를 확인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룸키를 꺼내며 직원이 말을 이었다.
“Room 1803입니다 ”엘리베이터는 왼쪽에 있습니다. 편안한 숙박되세요."


그 말에 R은 작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룸 키를 받아 들었다. 카펫이 깔린 복도는 깊은숨처럼 조용했다. 카펫 위에 발이 닿을 때마다, 묘하게 눌린 듯한 발소리만 작게 들렸다. Room 1803. 도어플레이트 아래 숫자를 확인한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키카드를 리더기에 대었다.


‘삑.’ 소리와 함께 초록 불이 켜지자, R은 조용히 문을 밀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온도와 공기의 결이 바뀌는 걸 느꼈다. 객실 안은 차분하고 정갈했다. 무채색 계열의 벽지와 짙은 우드톤 가구, 간접 조명만이 은은하게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정면엔 벽 너머까지 탁 트인 뉴욕 시내의 야이 펼쳐져 있었고, 유리창은 그 불빛들을 아무 말 없이 안고 있었다. 침대는 군더더기 없는 호텔식. 화이트 리넨이 팽팽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한쪽엔 작은 탁자와 책상, 그리고 커피포트와 몇 개의 머그컵. 그러나 정돈된 그 공간은 어딘가 공허했다.

R은 천천히 캐리어를 침대 옆에 내려두고,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벽 한쪽에 걸린 추상화, 거울 속의 낯선 얼굴, 창밖의 복잡한 도시에 비해, 이 방은 너무 조용하고 너무 깨끗했다. 그는 잠시 멈춰 서 있다가 휴대폰을 꺼내 화면에 익숙한 이름을 눌렀다.


“엄마, 나 도착했어.”


수화기 넘어로 그녀의 걱정스런 말투가 느껴진다.


“괜찮아. 아직은 조금 어색한데… 그래도… 잘해볼게....”


짧은 통화가 끝난 후에야.. 그는 자신이 맨해튼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R은 호텔의 작은 창가에 앉아 낯선 도시를 바라보았다. 밤새 꺼지지 않는 광고판의 빛과 끊임없이 흐르는 자동차의 불빛들. 맨해튼의 밤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에필로그


누구나 처음은 흔들리며 시작한다.

새로운 도시, 낯선 공기,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오가는 공간 속에서
자신이 너무 작은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시간은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늘 그런 풍경 속에 던져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 한켠엔 늘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두려움과 기대.
놀랍게도 이 둘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설렘과 불안이 구별되지 않을 만큼 뒤섞이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과
잠시 멈추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피어오른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묻는다.
“나는 이걸 잘 해낼 수 있을까?”
“여기서, 나라는 사람이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흔들림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흔들린다는 건 지금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고,
내 안의 감각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명이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흔들리면서도, 천천히라도
계속 나아가는 것.

남들보다 빠르게 가지 않아도 괜찮다.
길을 돌아가도, 때론 멈춰서 숨을 고르더라도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는 사람이 결국 도착한다.

흔들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성장 직전의 미세한 진동일지도 모른다.
그 진동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당신이 지금 ‘시작의 문 앞에 서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흔들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걷는 이 낯선 길이
언젠가는 가장 자신다운 이야기의 첫 문장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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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예고

R은 호텔 방에 홀로 앉아, 낯선 도시의 밤과 마주한다. 잠을 이룰 수 없던 R은 어느 바에 들어선다. 그리고 그곳엔 또 다른 인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