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2화 낯선 밤, 두 번째 목소리 BAR. Seco

서툴지만 로딩 중입니다.

by 슬미탐

호텔에 도착 한 R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하고 정돈된 호텔 방 안은 오히려 그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화려한 간판과 헤드라이트, 수천 개의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불빛이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깜빡이며 스스로를 증명하듯 도시의 맥박을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무엇에 이끌리듯 맨해튼 거리로 나서는데…



밤공기는 희미한 알코올 냄새와 젖은 아스팔트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조명이 꺼지지 않는 도시, 그 불빛들은 여전히 자기만의 리듬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R은 어느 방향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발이 이끄는 대로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소호의 한적한 골목 안, 붉은 벽돌 외벽 아래로 작은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BAR, Second Voice-

네온의 글자는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히 숨죽인 골목에서 그 글자만이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이 깜빡였다. 문틈 사이로는 낡은 목재 바닥, 그리고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R은 망설이지 않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고요한 무언가가 자신을 이끌고 있는 기분이었다.


실내는 따뜻한 조명으로 은은하게 채워져 있었다. 탁자 위엔 반쯤 비워진 잔들, 벽에는 오래된 포스터들과 목재 장식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손님들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거리에서 자기만의 속도로 머물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검은 셔츠를 입고 차분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가진 중년의 바텐터가 R에게 다가왔다. 잔주름이 선하게 얼굴에 잡혀 있지만, 그 미소에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낯선 밤엔, 조용한 자리가 더 어울릴 겁니다.”

그는 자연스럽고 조심스럽게 R을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


R은 앉아 마자, 바턴더에게 주문을 했다.

“맥주 한 잔 부탁합니다.”


말은 짧았지만, 그 속엔 긴 하루의 피로가 그리고 묘한 긴장감이 함께 실려 있었다. 바텐더는 R의 테이블로 맥주 한 잔을 올려놓았다. 맥주 안의 거품은 조용히 일었다가 사라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천천히 첫 모금을 넘겼다.


무엇이 특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밤, 그는 처음으로 조금은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거품은 어느새 사라졌고, 맥주잔 아래 테이블엔 둥근 물자국이 번지고 있었다.


얼마 후,

공간을 조금 흔드는 다소 격양된 여자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나..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R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무심코 시선을 옮겼다. 조금은 취기 어린, 하지만 힘을 잃지 않은 목소리. 말끝마다 서툰 숨이 섞여 있었다.


“회사에서도… 다들 다정한 것 같으면서도 또 아닌 것 같고, 어딘가 계속 틀어지고…


뭔가 자꾸만 뒤죽박죽,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


“사라..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클레어 술집.png


그녀는 긴 머리를 대충 묶고, 잔을 들었다 놓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눈 밑은 피곤해 보였고, 손끝은 무언가를 잡으려다 놓는 사람처럼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 말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너무나도 낯익었다. 그 말은 R의 가슴속에 작은 파문처럼 퍼져갔다.


"그건 나도 매일같이 생각해요.”

그는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녀에게 나도 그렇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말을 건네기엔 이 도시는 너무 낯설었다. 그녀의 친구가 그녀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으며 말했다.


"클레어"

“서툴러도 괜찮아, 이 정도쯤은 누구나 겪는 일이야.”


“그래도 넌… 취업이라도 했지만... “난”....


그녀는 친구의 말에 아무 말도 없었다.

술에 살짝 물든 눈빛으로 바닥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아주 작게, 거의 보이지 않게 올렸다.


“그런가?... 나 행복한 고민인거지?..

“미안해.. 사라...

나 좀 취했나 봐... 우리 이제 그만 갈까?


"톰 아저씨, 우리 계산해 주세요?"


잠시 후, 그녀는 친구와 나란히 어깨를 붙인 채 느릿한 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이 닫히고, 불 빛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가 점점 사라져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나둘씩 손님들이 자리를 떠나고, 웃음소리도, 잔 부딪히는 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잔잔한 재즈의 멜로디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바는 어느새 피곤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지만, 그 밤의 마지막 맥주는 처음보다 부드러웠다.


R은 두 번째 맥주잔을 들고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그 순간, 바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행 중이신가요?”

고개를 들자, 그 바텐더가 R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의 명찰에는 작게 Tom이라 적혀 있었다.


R은 고개를 저으며,

“아닙니다. 이곳을 우연히 지나가는데,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와서 들렸습니다.”


그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자연스레 R이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서 대화를 이어갔다.


“여긴.. 잠시 쉬었다 가기에 좋은 곳이에요.. 반가워요.. 톰입니다.

목적지를 묻지 않고, 그냥, 잠시 멈춰도 괜찮은 공간이죠.”


“네~ 저도 많이 편해진 느낌이네요.. R입니다."


R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이어갔다.


“혹시.. 아까.. 그 여자 두 분 있죠..

저쪽에 앉아 있던…...”


톰은 바로 알아차렸다.


"클레어랑 사라 말하는군요.

금요일 밤엔 가끔 이곳에 오곤 하죠…



“무심코 하는 대화를 들었는데.."


톰은 웃으며,


"클레어랑 사라는 만나면 늘 그래요.. 그렇지만 요즘 보기 드문 친구들이죠...

혹시.. 실수라도.."


"아.. 아닙니다.. 그런 거..."

R은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뉴욕의 낯선 곳에서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 없는 듯 느꼈다.


"그녀의 말이.. 저에겐 꽤 익숙한 말들이었어요..." R은 속으로 되뇌었다.


그는 두 번째 맥주를 다 마시고, 그 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주잔을 살짝 밀어놓으며, 톰에게 계산을 부탁했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R은 톰을 보며, 문득 생각난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런데... 톰, BAR 이름이 왜? Second Voice 죠?


톰은 잔잔한 미소로 마지막 대화를 이어갔다.

“아마.. 다음에 이곳에 또 오실 때 즘.. 알게 되실 겁니다.."


R은 톰의 알 수 없는 그의 말을 뒤로한 채 다시 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온기가 빠져나간 도시엔 약간의 외로움과, 약간의 결심만이 남아 있었다. R은 말없이 호텔까지 걸었다.


c4f9e989-b6fd-4dc0-988d-219b3d2857a8.png


낯선 도시의 콘크리트 틈을 걷는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마음속에 무언가가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 그 말의 무게를 그는 어깨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그렇게 뉴욕 맨해튼의 첫날, 각자의 이야기와 함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모든 게 낯선 이 도시…

하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이곳에 왔고, 다시 일어서야만 했다. 비틀거리더라도, 부서지더라도. R은 알고 있었다. 이 도시는 무심하지만, 무너진 자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는 곳이라는 걸.


톰은 문을 나서는 R의 등 뒤에 조용히 말을 건넸다.

"첫 번째 목소리는 우리가 바깥에서 내는 말이에요.
‘괜찮아.’ ‘잘하고 있어.’ 사람들 앞에서 꺼내는, 견디는 말들이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더 낮은 목소리로 이어갔다.

"진짜는, 두 번째 목소리예요. 우리 안에서 조용히 울리는 소리.
무너진 채로 꺼내는 말.

‘나 사실 괜찮지 않아.’
‘오늘 정말 힘들었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진짜 내가 조용히 꺼내는 아주 작은 목소리예요." 바로 내 목소리죠~


#서툰나에게

#감정에세이

#속도의온도

#성장소설

#회사생활에세이

#관계의복잡함

#뒤처진듯앞서가는중

#도시의감정들

#불안과함께걷기

#자기다운삶

#괜찮아서툴러도

#브런치에세이

#감정기록

#공감글

#직장이야기


☞ 3화 예고

월요일 아침, 도시의 차가운 리듬 속에서 R은 첫 출근을 맞이한다. 모두가 빠르게 움직이는 거리, 낯선 지하철, 높게 솟은 빌딩들.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이 아주 작은 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익숙한 듯한 눈빛을 가진 한 여자와 마주친다.



“ 서툴지만 로딩 중입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구독 응원해 주세요.

sticker sticker

매주, 당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