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지만 로딩 중입니다.
월요일 아침, 첫 출근에 긴장한 탓인지 밤새 뒤척이다 겨우 눈을 떴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시계는 아침 6시 42분을 가리키고 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어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두운 새벽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옷을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섰지만, 어딘가 좀 부자연스러웠다.
R은 호텔 로비를 빠져나와 가까운 50번가 역으로 향했다. 뉴욕의 아침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고, 거리에는 이미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출근길인 듯, 커피를 손에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걷고 있었다. 그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 지하철역 입구가 보였을 때, 심장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는 플랫폼에서 전광판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서 있었다. 그리고 미드타운 방향으로 울리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This is a downtown E train to World Trade Center. Arriving in 2 minutes.’
다들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누구 하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꼭 콘크리트 정글에 사는 "도시의 룰" 같았다. 함께 있는데 혼자인 듯한 느낌이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다급한 여자 목소리가 터졌다.
“내 가방”
“도둑이야!”
R은 순간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플랫폼 반대편, 한 여성이 급하게 누군가를 쫓아가고 있었다. 앞선 그는 회색 후드에 야구 모자를 눌러쓴 남자. 누가 봐도 도망치는 자세였다.
그 여자는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저 사람 좀 잡아주세요!”
그 남자는 하필 R 쪽으로 전력질주해 달려왔다. “비켜!!” 그가 소리쳤다. 사람들이 움찔하며 피할 때, R은 반사적으로 뒤로 피하는 척하며 다리를 살짝 내밀었다.
퍽!
그 남자는 그대로 R의 발에 걸려 바닥으로 거칠게 넘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서 여성의 가방이 쏟아졌다. 주변 사람들은 놀라움에 잠시 얼어붙었고, 그 여성은 허겁지겁 달려왔다.
넘어진 그는 황급히 다른 곳으로 도망갔고, 여성은 바닥 위에 떨어진 소지품을 챙겼으나, 중요한 디스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지하철이 도착했다. 그는 첫 출근에 "지각하면 안 된다." 생각에 빨리 지하철에 올라 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 여성이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방금, 그 사람 어디서 봤지?.. 고맙다는 말도 못 했네"
그렇게 그가 탄 지하철은 다음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This is 5th Avenue – 53rd Street.
Exit here for Midtown offices and Rockefeller Center.”
53번가 플랫폼에 내린 R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지상으로 나서는 순간, 빌딩 숲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그를 감쌌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AUREL & Co.’ 뉴욕 본사 빌딩 앞, 압도당한 듯한 느낌에 걸음을 멈췄다. 고딕 건식 양식의 단단한 직선을 지닌 거대한 외관이었다.
회색빛 석재 위로 강한 수직선이 리듬감 있게 이어졌고, 날카롭지만 질서 있는 구조는 도시의 하루를 가르고 서 있는 거대한 성벽처럼 느껴졌다. 반사되는 하늘빛이 창문마다 유리결처럼 흘러내렸고, 로비로 이어지는 입구에는 선명한 ‘AUREL & Co.’ 로고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 압도당하는 느낌이 이었다.
AUREL & Co. 글로벌 브랜드 전략 컨설팅회사다. 고객 대부분은 포춘 500에 드는 거대 기업들, 늘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는 프로젝트들이었다. 그의 부서는 이름도 길고 복잡한 ‘브랜드 리뉴얼 및 크리에이티브 전략팀’. 화려한 이름 뒤에 숨겨진 건, 팽팽한 긴장감과보이지 않는 압박이었다.
시간은 거슬러 한 달 전으로...
버몬트의 작은 브랜딩 회사에서 근무하던 R. 작은 팀, 단골 클라이언트, 단조로운 기획서. 일은 안정적이었지만, 더 이상 성장도, 떨림도 없는 매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지나던 거리에서 우연히 들른 서점의 북 토크 행사에서 AUREL & Co. 뉴욕 본사 브랜드 전략가 마이클, 그의 말이 R의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브랜드는 결국 사람의 감정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감정을 언어로, 언어를 설계로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그 말은, R은 뭔가 가슴에 뭉클거림을 느꼈고, 잊고 있던 자신의 ‘처음’을 불러냈다.
그리고, 오렐앤코의 채용 페이지에 올라온 공고를 보게 된다.
“글로벌 브랜드 리뉴얼 전략 컨설턴트 채용 – 뉴욕 본사”
이직을 고민해 본 적도 없던 그는, 마치 무엇에 이끌린 듯 프로필을 써내려 갔다.
“어차피 연락도 안 오겠지만....”
그렇게 잊고 있던 어느 날, AUREL & Co., 본사 HR 매니저로부터 줌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그 후 일주일 후 크리에이티브 전략팀 리더 마이클과의 심층 인터뷰가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Welcome to AUREL & Co., Manhattan.”
최종 오퍼를 받았다.
짧은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R은 한참을 화면만 바라보며, 숨이 깊어지고, 심장은 묘하게 빠르게 뛰었다. 기쁨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꿈꾸던 순간이었지만, 지금 이 감정이 어떤 이름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어나 이것만은 분명했다.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렇지만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그날 밤, 그는 식탁에 앉아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나, 뉴욕으로 떠나야 할 것 같아. AUREL & Co.라는 회사야인데 브랜드 전략 회사예요.”
그말을 들은 R의 부모님은 조금 당황하신 듯..
아버지 말을 꺼냈다.
“뉴욕...? 갑자기?
“버몬트에서 잘 하고 있었는데, 왜 굳이 ?”
R은 차분히 설명했다.
"그냥… 내가 다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어서 그래요."
"그런 감정을 잊고 사는 기분이었어요"
듣고 있던 어머니는
“R, 그런 설렘으로 사는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이곳에서도 충분히 너는 능력을 펼치고 있잖니, 친구들도 이곳에 다 있고..."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릴 때 나 하는 얘기지. 지금은 네가 안정을 지킬 때야."
"이제, 결혼도 해야 할 나이고.."
그 말에 R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그의 마음엔 새로운 방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낮은 대화 소리를 뒤로한 채, R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시 멈칫하다가, R은 창문에 이슬 맺힌 유리를 손으로 닦았다. 그 유리에 작게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그는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늘 익숙한 것만 선택해 왔어."
"이번엔,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선택해보고 싶어.”
“익숙함에 머물러선, 내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아.”
그리고 그는 결심한 듯, 부모님의 이해를 기다리지 않고도, 그는 떠나기로 했다. 누구의 허락도 없이, 자신의 삶으로. 잠시 후 캐리어를 꺼내 몇 벌의 셔츠와 책, 노트북을 넣었다.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마이클의 명함을 지퍼 안쪽 포켓에 넣었다.
그렇게 R은 거대한 콘크리트 정글 속으로 이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회사 로비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과 조명이 강하게 비추는 유리벽, 빠른 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완벽한 비즈니스 슈트와 높은 힐의 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그의 존재를 아주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R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나서야 프런트 데스크로 다가갔다.
유니폼을 입은 리셉셔니스트가 미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았다.
“Good morning. Can I help you?”
R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부로 크리에이티브 전략팀으로 근무하게 된 R입니다.
"확인 부탁 드립니다.”
리셉셔니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컴퓨터 화면을 확인했다.
“Ah, yes. R. Welcome aboard.” “21층입니다. 오른쪽 엘리베이터를 타시면 되세요..
"HR 부서와 크리에이티브 마이클 씨에겐 연락해 놓겠습니다."
R은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그 짧은 안내 한 마디도 이 낯선 공간 안에선 조금 숨 가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그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잠깐만요!”...
에필로그
오래전 서툰 결심을 한 적이 있다.
확신은 없고, 이유는 흐릿한데,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그런 순간. 사람들은 말한다.
“그게 맞는 선택이야?”
“조금만 더 생각해보지 그래.”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큰 변화는 언제나 그렇게 ‘서툰 결심’에서 시작되었다.
한 발 내딛기까지 너무 오래 망설였고,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백 번쯤 물었지만
결국, 그 조심스러운 발걸음 하나가 내 삶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서툴러도 괜찮다고, 흔들려도 괜찮다고, 확신보다 중요한 건 ‘움직이기로 한 나’라는 것을.
그러니, 지금 당신이 작고 서툰 마음 하나를 품고 있다면 그건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증거다.
모든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툰나에게
#감정에세이
#속도의온도
#성장소설
#회사생활에세이
#관계의복잡함
#뒤처진듯앞서가는중
#도시의감정들
#불안과함께걷기
#자기다운삶
#괜찮아서툴러도
#브런치에세이
#감정기록
#공감글
#직장이야기
엘레이터 안 R과 클레어는 자신들이 과거에 만났던 사실조차 모른 채 그렇게 또다시 마주한다. 콘크리트 정글 속 우연과 인연의 조각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있었다. R은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지만 자신이 이방인이 된 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