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7화 보이지 않기에 더 알 수 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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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미탐

그날 저녁, 클레어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오늘 하루 애써 눌러 두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새어 나왔다.


그리고, 조용히 유리창 속의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작게나마 진짜 미소가 번졌다.


‘그래, 잘하고 있어! 조금 서툴러도 괜찮아.’

그녀는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어…!”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 바로 소피아였다.



7화 표지.png

“클레어, 지금 퇴근하는 거야?

오늘 진짜 고생했어!! 디렉터도 정말 만족했다던데...!


클레어가 웃으며 말했다.

“소피아,

그게, 얼떨결에...”


“오늘 같은 날엔 바로 집 가면 안 되지...
우리 가볍게 맥주 한 잔 어때?


클레어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미소가 번지며 대답했다.

“좋아요… 제가 가끔 가는 곳이 있는데요. 가실래요?”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럼, 오늘은 클레어 픽으로..!”


그렇게 두 사람은 회사를 나와 작고 조용한 소호의 골목으로 향했다.

붉은 벽돌 외벽 아래로 작은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BAR, Second Voice- 작은 간판이 반짝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운터 안에서 톰이 그들을 반겼다.

“오, 클레어 오랜만이네.”


클레어는 수줍게 인사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익숙한 듯 자리에 앉았다.


“톰, 이분은 소피아예요, 회사 같은 팀 매니저세요.”

소피아와 톰은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다.


곧,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위에 맥주 두 잔이 놓였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조용한 대화가 시작됐다.


“클레어,

저번 미팅 때 백업 디스크.. 그 얘기, 이제 말해 봐요, 어떻게 된 거예요?”

소피아가 먼저, 말을 건넸다.


클레어는 잠시 웃더니, 지난번 지하철역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말했다.


캐런이 부탁한 수정 자료를 백업 디스크에 넣고, 집에서 일부 다시 정리했는데,

출근길에 도둑을 만나서... 가방이 떨어지면서 잃어버린 것과...


… 그때 도둑을 잡아준 사람이 알고 보니 R이었다는 사실도..


소피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요? 그때 이미 만났던 거예요?”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잔을 한 번 더 들어 올렸다.


“그땐 전혀 몰랐죠.
그런데,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나고, 또 같은 팀이었다는 것도요..
참… 이상하죠. 도시가 이토록 넓은데, 우린 자꾸 다시 만나네요.”


소피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와~. 진짜 신기하다.

세상이 좁은 걸까? 인연이 조각이 맞춰지는 걸까?.ㅎㅎ”


그때,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톰이 두 번째 맥주를 가져다주며 웃으며 말했다.

“클레어랑 그 분, 어쩌면 예전에 어디선가 만났을지도 모르죠...

서로 몰라 봤을 뿐..


클레어와 소피아는 톰의 모호한 말을 그냥 농담처럼 흘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잔을 부딪히며, 클레어는 오랜만에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도시의 소음 속, 세컨드 보이스는 오늘따라 더 조용하고 따뜻했다.


클레어는 오랜만에 마음속 숨겨둔 긴장을 조금 내려놓았다.

소호의 밤하늘 아래, 그렇게 그녀들의 이야기는 천천히 깊게 스며들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그날 새벽, 캐런.


아이의 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휴대폰 알람은 무심히 울렸고, 클라이언트 미팅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캐런은 이불속에서 앓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단단히 결심한 얼굴로 마이클에 연락했다.


"오늘, AVINE 클라이언트 미팅에 저 대신 팀에서 대처해 주세요."


목소리는 최대한 단단했지만, 전화기를 내려놓는 손은 떨리고 있었다.


중요 미팅을 빠진다는 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시선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건 캐런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일을 시작한 이래, 그녀는 한 번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핑계로 내세운 적이 없었다.


연락을 받은 마이클은 소피아에게 누가 대응이 가능한지 의견을 물었고, 소피아는

클레어를 추천한 것이었다.


그렇게 캐런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말없이 휴대폰 문자를 봤다.

'캐런 씨, 오늘 미팅은 클레어 씨가 대신 가기로 했어요, 아이 잘 돌봐 주세요, '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고, 그 속에서 멈춰 선 사람은 자기 혼자뿐인 것 같았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소리가, 조용히 가슴속 어딘가를 긁었다.


그날 오후, 다행히 열이 내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캐런은 돌보미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회사로 급하게 출발했다. 마음은 온통 엉켜 있었다.


회사에 들어섰을 때, 소피아가 "고생하셨어요, 아이는 괜찮아요?"라고 인사했다.

하지만 캐런은 그것마저 차갑게 받아쳤다.


"별일 아니었어요."


그녀는 다시 단단한 표정을 지었다.
피곤하다는 티를 내지도 않았고, 부드럽게 웃지도 않았다.

그녀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시 차가운 벽을 세웠다.


R은 그런 캐런을 바라보며, 어딘가 불편한 거리감을 느꼈다.


'누구에게도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더 단단해진 사람.'

오늘 본 캐런의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

집안은 고요했지만,
캐런의 마음속에는 조용한 분노가 일고 있었다.

분노의 방향은 명확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일까?
아플 수밖에 없었던 아이일까?
아니면, 단 한순간도 '약해질 수 없는 자신' 일까?


그녀는 몰래 혼자 소파에 앉아,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침묵이, 마음을 더 무겁게 눌렀다.


'이렇게 자신을 다독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도시는 그렇게, 보이지 않기에 더 알 수 없는 마음과

말하지 못한 서로의 어긋난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에필로그


그날,
누군가는 웃으며 잔을 부딪혔고,
누군가는 병원 대기실에서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누군가는 가볍게 마음을 열었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벽을 세웠다.


누군가는 "괜찮아"라고 웃으며 말했고,
누군가는 "별일 아니야"라고 마음을 꾹 눌렀다.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무게로,

말하지 못한 감정, 표현되지 못한 마음 하나.


그래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진짜 마음을 모른 채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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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예고

AVINE 클라이언트 미팅 후 R 에겐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그날 밤, 도심을 벗어난 그의 차는 안개 낀 외곽도로에 멈춰 서고,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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