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니볼의 티핑 포인트는 무엇인가? -
빌리 빈이 활용한 데이터 기반의 세이버메트릭스는 현재 야구계에서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이 되었다. 머니볼 당시에는 일부 팀만이 경쟁우위 확보 요소로 활용했지만, 이제는 메이저 리그 전 팀이 사용하는 기본 인프라가 된 것이다. 심지어 야구 중계를 보다 보면 OPS (On-base Plus Slugging, 출루율 + 장타율), WHIP(이닝당 출루 허용), WAR (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등 과거에는 낯설었던 세이버메트릭스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가 모르는 새 세이버메트릭스는 선택이 아닌 야구단 운영의 기본 인프라가 된 것이다.
티핑 포인트 관점에서의 머니볼
세이버메트릭스가 어떻게 야구계에서 사실상 표준이 되었는가를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관점에서 살펴보자. '티핑 포인트'는 어떤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작은 변화로 인해 갑자기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는 극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티핑 포인트(2000년 발간)에서 어떤 제품이나 아이디어가 티핑하기 위해서는 3가지 규칙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 제1법칙: 소수의 법칙 (The Law of the Few)
말콤 글래드웰은 사회적인 유행은 특별한 소수의 능력에 좌우된다고 말하고 있다. '머니볼'에서는 이 역할을 빌리 빈과 피터 브래드가 수행하였다. 우선 세이버메트릭스라는 혁신적인 데이터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정보 전문가인 피터 브래드는 메이븐(Maven, 지식을 축적한 자라는 의미) 역할을 하였다. 브래드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OPS'의 가치를 발견하고, 저평가된 선수들을 찾아낼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였다.
빌리 빈은 데이터를 구매한 첫 고객이자, 이를 야구계에 판매하는 세일즈맨 역할을 수행했다. 동시에 그는 구단 안팎의 다양한 인물들을 연결하는 커넥터(Connector)였다. 그는 반발에 맞서며 아이디어를 현실로 밀어붙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얼마나 강력한지 증명하였다,
● 제2법칙: 고착성 요소(The Stickiness Factor)
메시지는 기억에 남고 행동을 유발할 만큼 강력한 '고착성'을 가져야 한다. '머니볼'에서 고착성 요소는 바로 ‘우리는 돈 없는 구단이 부자 구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명확하고 강력한 메시지였다.
세이버메트릭스는 홈런이나 타율같은 화려한 지표가 아닌, OPS라는 하나의 핵심 지표에 집중했다. 이는 복잡한 야구 세계에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단순함과 명확한 무기가 되었다. 특히 20연승이라는 메이저리그 신기록은 이 메시지가 단순한 이론이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고착제'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너무나 극적이어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 제3법칙: 상황의 힘(The Power of Context)
아이디어가 성공적으로 퍼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환경과 맥락이 중요하다.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는 '머니볼' 혁명이 일어나기에 최적의 상황이었다. 뉴욕 양키스 같은 부자 구단이 스타 선수들을 독식하였고, 오클랜드와 같은 가난한 구단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절박함이 새로운 해법을 찾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였다.
머니볼은 피터 브래드(메이븐)가 제공한 지식을 빌리 빈(세일즈맨)이 OPS라는 강력한 메시지(고착성)로 만들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절박한 시대적 상황(상황의 힘) 속에서 메이저리그의 룰을 바꾼 완벽한 티핑 포인트 사례인 것이다.
티핑 포인트를 가속화시킨 보스턴
보스턴 레드삭스는 베이브 루스를 1919년에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한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하였다. 이러한 밤비노의 저주(밤비노는 베이브 루스의 별명)를 풀기 위해 보스턴 구단주는 2002년 시즌 종료 직후 빌리 빈을 단장으로 영입하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 구단주는 빌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벽을 처음으로 뚫고 나가는 사람은 항상 피를 흘리게 돼. 이건 단순히 사업 방식 하나를 위협하는 게 아니야. 그 사람들 눈에는 야구 자체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그들의 생계, 일자리를 위협하는 거야. 그들이 일해 온 방식 자체를 위협하는 거고.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든, 사업 방식이든 뭐든 간에,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결정권을 쥔 채로 완전히 미쳐버려. 내 말은, 지금 당장 팀을 해체하고 네 모델로 다시 구축하지 않는 팀은 전부 공룡 같이 쇠퇴해 버리는 존재가 될 거야.”
보스턴 구단주는 변화와 혁신에는 저항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의사결정권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아니면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찌 보면 미친 것처럼 과잉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그런데 보스턴 구단주는 이제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즉 그는 지금 안 바꾸면, 그 구단은 TV로 남이 우승하는 거나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빌리를 영입하기를 원하며, 자신과 손을 잡고 성과를 내면 이제 머니볼은 변방이 아닌 야구계의 주류,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단장으로서 최고 대우의 금액을 제시한다. 하지만 빌리는 거절 한다.
● 보스턴 레드삭스의 다음 행보
빌리를 영입하는 데 실패한 레드삭스 구단주는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레드삭스 프런트에서 선수 평가 및 데이터 분석을 업무를 하고 있던 테오 엡스타인(Theo Epstein)을 단장으로 선임한다. 엡스타인이 28살이라는 나이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연소 단장이 될 수 있었던 핵심 이유는 바로 그가 당시로서는 비교적 드물었던 데이터 기반 사고를 가진 젊은 인재였기 때문이다.
엡스타인은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과감한 선수 영입 및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필요하다면 팀의 상징적 선수도 과감하게 트레이드하는 결정도 내렸다. 이를 통해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4년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7년도에 다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빌리 빈의 오클랜드가 머니볼의 실험실이었다면, 엡스타인은 거대 자본과 결합해 세이버메트릭스 혁신을 우승이라는 현실의 성과로 만듦으로써 머니볼이 현대 야구의 표준이 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이다. 테오 엡스타인의 성공이 없었다면 빌리 빈의 혁명은 '가난한 구단의 몸부림' 정도로 평가절하되었을지도 모른다.
빌리빈은 왜 레드삭스의 제안을 거절했을까? 아마 그 대답은 영화 속에서 브래드에게 말하는 다음의 대사 속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기록 같은 거 상관 안 해. 우승반지에도 연연하지 않아. 그런 건 패배한 놈들이나 하는 얘기지. 이 재정에 이 팀으로 우승한다면 그땐 우린 경기의 모든 틀을 바꿀 수가 있어. 난 바로 그걸 원하는 거야. 그러면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