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세계를 연결하는 혈관
18세기 런던의 어느 직물공장. 거대한 증기기관이 숨을 헐떡이며 돌아간다. 석탄을 삼키는 화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보일러,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대한 피스톤. 마치 잠든 거인이 몸부림치는 듯한 이 광경이 당시 산업혁명의 상징이었다. 에너지 공급원과 전달 매체가 각각 따로 분리되어 구조가 단순했고, 석탄부터 나무까지 다양한 연료를 삼킬 수 있었지만, 거대한 몸집에 비해서 힘 없는 거인의 모습이었다.
열이 외부에서 전달되는 우회로를 거쳐야 했기에 에너지 효율은 형편없이 낮았고, 부피와 무게는 건물만 했으며, 기동성과 반응성은 거북이보다 못했다. 133°C의 증기는 오늘날 발전용 터빈이 내뿜는 압력의 겨우 7% 수준에 불과했다. 공장에서 실을 잣는 데는 충분했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운송 수단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콘월의 구리 광산에서 매일 증기 펌프와 씨름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리처드 트레비식(1771~1833)은 산업혁명의 격동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던 모험을 즐기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단순히 광산 엔지니어가 아니라 기계 문명의 경계선을 넘보는 모험가였다.
트레비식이 목격한 현실은 명확했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안전했지만 건물만큼 거대했고, 달팽이처럼 느렸으며, 고정된 위치에서만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동하는 기계를 꿈꾸기에는 너무도 무력했다.
그의 해답은 대담했다. 작은 보일러에서 폭탄 같은 위력으로 응축시킨 증기를 실린더 안으로 직접 주입하는 것. 와트의 온순한 증기에 비해 야생마 같은 격렬함으로 피스톤을 밀어내는 고압 스팀 엔진이었다. 귀청을 찢는 소음과 함께 땅을 진동시키는 위력을 자랑하는 이 기계는 훨씬 가볍고 강력한 추진력을 낼 수 있었다.
트레비식은 1801년 세계 최초의 증기자동차라 불리는 ‘퍼핑 데빌(Puffing Devil)’을 제작해 짧은 거리의 주행에 성공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친구들과 함께 도로용 증기차 ‘퍼핑 데빌’을 몰고 잉글랜드 콘월(Cornwall)의 캠본 언덕을 오르며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술집 앞에 차를 세워둔 채 자리를 비운 사이 보일러에 물을 보충하지 않아 발생한 화재로 차량이 불타버렸다.
1804년에는 철도 위에서 움직이는 최초의 증기기관차 ‘페니다렌 로코모티브(Penydarren Locomotive)’ 실험을 단행했다. 그는 ‘페니다렌 호’ 시험 운행에서 10톤의 철과 수십 명의 사람을 태우고 15킬로미터를 주행하는 데 성공했으나, 레일이 기관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서지는 문제를 경험했다. 이는 트레비식의 발명이 기술적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자 철도혁명의 서막을 알린 사건으로 평가된다.
트레비식의 도전은 단순한 발명 시도를 넘어, 철도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의 가능성을 최초로 실험한 사건이었다. 그의 고압 증기기관은 비록 기술적 안전장치와 자본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대규모 확산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기존의 정지식 엔진을 넘어서는 이동식 동력 장치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퍼핑 데빌'과 '페니다렌 호’ 실험은 증기기관의 활용 영역을 공장 내부에서 도로와 철도로 옮기는 근본적 사고의 전환이었다.
17세기 잉글랜드, 찰스 2세의 궁정에 한 르네상스적 지식인이 있었다. 사무엘 몰랜드(1625~1695)는 수학자이자 발명가, 스파이이자 외교관, 그야말로 궁정의 만능 해결사였다.
어느 날 왕으로부터 난제가 주어졌다. "궁전의 물 공급 문제를 해결하라!" 몰랜드의 해답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화약의 파괴력을 창조력으로 전환한 기상천외한 장치가 바로 "폭약 동력 펌프"였다.
화약의 폭발력을 순간적인 압력원으로 활용해 물을 높은 위치로 퍼올리는 펌프. 실험적이었지만 런던 궁정을 발칵 뒤집어놓기에는 충분했다. 비록 실용화에는 실패했지만, 내연 방식의 원리를 최초로 구현한 역사적 사례였다.
시간이 흘러 18세기 후반, 스위스 시옹 근처의 작은 작업장. 프랑수아 이삭 드 리바즈(1752~1828)는 촛불 아래서 이상한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발명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그는 수소와 산소를 혼합 연소시켜 폭발력을 동력으로 바꾸는 엔진을 구상하고 있었다.
당시 수소는 '가연성 공기'라고 불리며 극도로 위험한 물질로 여겨졌다. 하지만 리바즈는 달랐다. "이 폭발하는 기체를 길들일 수 있다면..." 그는 혼잣물을 중얼거렸다. 몇 달간의 실험 끝에 마침내 조그만 실린더에서 수소와 산소를 터뜨려 피스톤을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1807년, 드디어 실제 크기의 수소 자동차가 완성되었다. 길이 6미터, 무게 거의 1톤에 달하는 거대한 마차였다. 리바즈는 이 괴물 같은 기계를 시옹 시내 중앙 광장에서 공개 시연하기로 했다. 리바즈가 엔진에 수소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쉬이익~" 소리가 나자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뒷걸음질쳤다. "자,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가 외치며 점화 버튼을 눌렀다.
"꽝!!"
귀청을 찢는 폭발음이 광장을 진동시켰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소차는 폭발하지 않고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엔진이 너무 시끄러웠다. 몇 초마다 한 번씩 터지는 폭발음에 광장의 말들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결국 리바즈의 수소차는겨우 26미터를 전진한 후 멈춰 섰다. 연료 공급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실험은 가스 연료의 무한한 가능성을 최초로 제시한 선구적 시도였다. 100여 년 후 자동차 시대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줄은 그때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