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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② 쇠의 양면성

기술력이 곧 군사력인 시대

by 블루스카이

철강의 경제적 생산은 도시 건축과 인프라를 재편하며 현대 문명을 형성했다. 값싸고 질 좋은 철강은 건축, 교통, 산업의 기술적 기반을 제공하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례 없는 변화를 이끌었다.


마천루와 철도, 도시와 대륙의 연결

1885년 시카고에 세워진 홈 인슈어런스 빌딩은 철골 프레임 구조로 지어진 세계 최초의 고층 건물이었다. 10층 높이의 이 건물은 석조 건축의 한계를 넘어섰다. 철골 구조는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하며 더 높고 가벼운 건축을 가능케 했다.


1890년대부터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급격하고 구조적인 변화를 맞이하며, 도시는 마치 거대한 나무가 하늘로 뻗듯 수직으로 확장되었다. 마천루 중심의 건축 패러다임이 열렸다.

슬라이드19.JPG ▲ 1869년 유타주 미국 유타주 프롬나토리 포인트에서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 철도 완공, 출처 wikipedia

철도망의 확장은 광범위하고 혁신적이었다. 1869년 미국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었으며, 1891년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이 시작되었다. 철강 가격 하락(1880년대 톤당 $60에서 $20)으로 수만 킬로미터의 철로가 건설되었다. 철도는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극복하며 대륙 규모의 경제권을 형성했다. 철도가 지나가는 곳마다 새로운 도시가 생겨났고, 기존 도시는 급성장했다.


경제적 파급효과

철강의 대량생산은 생산 비용을 혁신적으로 절감하며 시장을 확대했다. 1880년대 철강 가격 하락은 제조업과 건설 산업의 비용 구조를 변화시켰다. 철도 건설 비용이 30% 이상 줄며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가 가능해졌다. 이는 자본과 노동의 이동을 촉진하며 산업화의 속도를 가속화했다.


대량생산의 혁신, 포드주의 탄생

제2차 산업혁명의 정점은 1913년 헨리 포드가 디트로이트 공장에 도입한 컨베이어 시스템이었다. 사실 포드가 이 아이디어를 얻은 곳은 의외로 시카고의 도축장이었다. 1908년 어느 날, 포드는 친구와 함께 시카고 근교의 한 대형 도축장을 견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소 한 마리가 천장에 매달린 채로 이동하면서 각 단계별로 해체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저것을 거꾸로 하면 어떨까?" 포드의 머릿속에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해체가 아닌 조립을, 그것도 움직이는 라인에서 한다면?포드는 시카고 도축장의 효율성을 보고 “소 대신 자동차를 조립하면 어떨까?” 하고 미소 지으며 실험에 착수했다.

슬라이드18.JPG ▲ 포드가 도입한 컨베이어 시스템, 출처 Wikipedia

1913년 10월 7일, 세계 최초의 자동차 조립라인이 가동되었다. 자동차 조립 시간이 12시간 30분에서 1시간 33분으로 단축되었다. 작업자는 단순 작업만 반복하며 숙련공 의존도가 줄었다.


포드는 1914년 1월 5일 직원들을 모아 전례 없는 정책을 발표했다: 하루 임금 $5, 근무시간 8시간. 당시 평균 임금($2.34) 대비 두 배 이상이었다. 이는 노동자 구매력을 높여 1915년 포드 직원의 모델 T 구매율이 일반인보다 10배 높았다.


디트로이트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포드 공장은 마치 금광이라도 발견된 듯 활기를 띠었다. 포드주의는 대량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을 통해 20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했다

군사적 영향

기술이 곧 군사력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독일이 영국을 추월하려 했던 것도, 미국이 급속히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철강 생산력과 직결되어 있었다. 강은 산업화의 초석이자 제국주의적 팽창의 강력한 매개체로 기능했다.

슬라이드17.JPG ▲ 1906년 영국이 건조한 드레드노트 전함, 출처 Wikipedia

1906년 영국의 드레드노트 전함은 베세머 강철로 제작되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의 철갑함이 스페인 함대를 격파한 사례는 철강 기술의 우위를 보여주었다. 철강 생산량(1914년 미국 31백만 톤, 독일 17백만 톤)은 국가 경쟁력의 지표였다.


이런 경쟁은 20세기 초 세계대전의 구조적 배경이 되었다. 1차 대전은 '철강의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각국의 철강 생산력이 승부를 가른 전쟁이었다. 독일은 강력한 철강업을 바탕으로 유럽을 제패하려 했지만, 미국의 압도적인 산업력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었다. 철강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이 철강으로 인한 전쟁으로 귀결된 아이러니였다.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인류의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씁쓸한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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