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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Dec 18. 2019

[서평, 리뷰] 클래식 아는 척하기

클래식 여행을 이끌 도선사

  언제부터 클래식을 듣고 싶어 했나? 음악 시간에 클래식 작품의 주요 악장을 듣고 답을 맞추는 시험을 치루던 중고등학교 때나 아예 음악 자체에 관심이 없던 대학시절은 아니다. 서른 중반 즈음부터 오디오에 취미를 갖기 시작했으니 이 즈음에야 클래식에 눈길을 조금이나마 주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 세례를 받지 않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구입한 클래식 CD로 헨델의 <메시아>를 택한 어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크 스타일의 장중한 종교 합창에 매료되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학창 시절에 활동했던 가톨릭 동아리의 경건함에 익숙했음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메시아> 이후로 꽤 많은 클래식 작품들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클래식을 안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움을 느낄 뿐이라는 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I6dsMeABpU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중  할렐루야,  동영상 링크가 바로 걸리지 않아 URL을  적었음>


  이렇게 클래식에 무지하다는 지적 결핍증이 종종 나를 격하게 몰아 부친다. 그럴 때면 뭔가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 잡힌다. 조급해진 결과, 폭넓은 감상과 인터넷 탐색으로 클래식 저변의 지식을 넓혀 나가는 노력 대신에 클래식 서적의 도움으로 성급하게 지식만 채우려는 못된(?) 습성에 매달린다. 오디오 마니아 중에 기기변경, 업그레이드에 집착한 나머지 음악을 감상하지 않고 소리 그 자체에 매몰되는 이들이 꽤 있다. 내 경우는 클래식을 귀로 체험하지 않고 눈으로 이해하려는 어리석음일 것이다. 비록 본말이 전도된 셈이지만 클래식 서적 리뷰에 도전하는 걸 봐서는 그나마 독서의 성과가 있긴 한가보다.

                                                   

  그간 내가 경험한 클래식 서적은 크게 3가지  스타일이다. 1) 감상기를 곁들인  명곡, 명반 위주 해설과  작곡가 생애와 에피소드 소개 :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2,3>, <이 한 장의  명반>이 대표적이다. 2) 클래식 연대 흐름에 따라 작곡가 생애와 주요 작품을 설명 :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 <고희일의 클래식  이야기>를 꼽을 수  있다. 3) 연주자 입장에서 주요  작품들을 악장, 악절 단위로 구체적인  해설 : <클래식을  변호하다>가 최근에  발간되었다.  


  <클래식 아는  척하기>는 두 번째  유형이다. 클래식 연대 흐름을 따라 주요 시대별 음악 사조와 시대를 이끌었던 주요 작곡가들의 활동과 이들이 클래식 발전에 끼친 영향과 공헌도를 설명한다. 일종의 클래식 연대사 입문서이다. 이 책의 목차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내심 명곡, 명반의 해설

, 에피소드와 클래식 연대 흐름이 입체적으로 짜였기를 기대하였다. 그래야만 클래식을 아는 척하기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욕심이었다. 하지만 225페이지의 짧다면 짧은 분량으로는 내 바람이 과욕이다.

  

  클래식 연대 흐름과 개략적인 역사를 설명한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다른 책과 달리 서양음악사의 기원과 최근 동향까지 치우침 없이 고르게 설명하는 것에 있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이란 바로크 시대부터 20세기 초중반 사이의 서양음악이다. 따라서 대부분 클래식 역사를 다룬 책들은 주로 바로크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음악 사조와 작곡가들을 소개한다. 반면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범위를 확장하여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17세기 말 존  블로우(pp.1~105), 비발디에서  바그너(pp.106~181), 말러에서 존 케이지, 스티브 라이히(pp.184~215) 순으로 구성되었다. 흔히 비발디부터 스트라빈스키까지를 클래식 음악으로 구분한다. 근 절반 가량의 분량을 클래식 이전인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초기 바로크 시대를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클래식 연대를 알려주는 입문서임에도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바로크 - 고전주의 - 낭만주의 - 인상주의 - 러시아 국민음악 - 현대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음악 사조에 익숙하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부터 초기 바로크 교회 음악까지 낯선 시대의 처음 접하는 내용과 개념들을 짧게 풀어 써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 책이 갖는 차별성이자 약점이다. 안타까운 점이 또 있다. 일부 문구에서 번역이 좀 더 부드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문맥상 부적확하게 옮겨졌거나 약간의 오역이 있다고 여기지는 건 혼자만의 착각일까?                                                      

                                                                                      

  이런 연유로 이 책을 좀 더 수월하게 읽기 위해서 독자들은 부록 ‘클래식 용어 아는 척하기’를 먼저 일독하기를 권한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인터넷 지식백과에서 추가 검색을 하자. 예를 들어 책에서 피타고라스가 완전 4도, 완전 5도, 완전 8도를 4:3, 3:2, 2:1의 숫자로 정의하였다고 소개한다. 책에서는 완전 4도의 비율이 왜 4:3인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검색을 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길이가 다른 두 개줄의 비율이 4:3일 때 완전 4도(도-파)의 화음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익숙해진다면 간과했던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거나 몰랐던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내용들이 무수히  많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서명을 ‘클래식 아는 척하기’로 정했는지 모르겠다. 몇 가지 예를 들겠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음악에 인간의 영혼에 스며드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음악은 정신과 마음을 위한 교육이라 간주했다. 감정을 중시한 고대의 음악에 대한 관점이 조물주에 대한 절대 신앙을 강조했던 중세음악에서 잠시 가리어졌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되살아났다. 르네상스 시대는 종교와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 로마로의 회귀와 부할을 꾀했다. 따라서 인간 개성의 존중과 자유 추구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르네상스 음악이 중세와 달리 표현의 자유를 찾아 곡의 음역대를 확장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설명에 이르면 문득 훗날 제철 봄에 무르익어 꽃잎을 만개할 새순이 겨우내  움츠렸다가 이제 막 터지는 장면이 그려진다. 아울러 90년대 충격적으로 데뷔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떠오른다. 슈베르트 작품을 듣노라면 그리스 이래로 음악에서 강조되었던 충만한 감정의 표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k_m85e_i18o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소나타’ 로스트로포비치  연주> 

                                           

  고대로 이어져 왔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이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정동설(doctrine of affec tions)*’에 근거하여 인간의 감정을 곡에 담아 내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정동설이야말로 후대의 고전주의, 낭만주의라는 클래식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원동력이다. 바로크 음악의 대표적 특징으로 통주저음, 화성, 대위법, 콘체르토, 꾸밈음 등을 꼽는다. 나는 바로크 음악은 수학이라고 종종 표현한다. 바로크 음악을 듣자면 마음이 편해지고 다음 악절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규칙적으로 유추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들이 어쩌면 바로크 음악 역시 피타고라스 음률의 영향을 이어받았던 탓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

 * 정동설 :   슬픔, 기쁨, 분노, 사랑과 같은 정서들이 인간의 영혼에 발현되어있다는  이론 


  한편 서구 문명의 암흑기라 할 수 있을 중세 시대가 음악사에서 언제나 반작용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이 시대의 기념비적인 사건 중 하나가 ‘음악 기보’ 발명이다. 인류가 기보를 손에 쥠으로써 그간 수없이 많은 음악들이 구전을 거치며 원작의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원곡을 기록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후대가 전 세대의 유산을 계승 발전하게 되었다. ‘네우라’라 불리는 초기 기보법은 조그마한 기호를 적는 소박한 수준이었다. 11세기 이탈리아인 귀도 다레초가 오늘날 기보의 근간이 되는 체계를 제시하였고 13세기에 음 길이마저 기보하기에 이르렀다. 기보는 다성음악, 금속활자와 더불어 바로크 시대부터 발현된 클래식 전성기를 예비했다. 음악에서 있어 기보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다. 


  이 책이 저술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클래식 음악 사조에서 영향이 큰 작곡가를 선별하여 소개한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차이코프스키가 유독 빠진 이유이겠다. 낭만주의와 러시아 국민음악 그 어디에서도 그가 소개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차이코프스키가 당시 러시아에서 드물게 서유럽의 고전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즉 고전주의 형식과 낭만주의적 흐름을 '단지 계승했다'는 한계 때문에 과감히 제외했을 거라 추정한다. 비록 러시아 정서를 바탕에 둔 그가 국민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을지라도 말이다.                                                   


https://youtu.be/-Jtzq55kcQI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정경화  연주>


 도미 속의 도미라는 말이 있다. 도미 머리 부분에서 도미처럼 생긴 뼈를 뜻한다. 일본에서 행운을 상징한다. 클래식은 오늘날 서양의 고전음악을 의미한다. 그러나 19세기에는 대략 1750~1820년대의 음악을  고전주의로 간주했다.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전형적인 서양 고전음악으로서의 클래식 형식이 거의 완성되었다. 후대 작곡가들에게 고전주의는 교과서와 같은 뼈대, 계승하여야 할 뿌리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도미 속의 도미처럼 고전의 고전인 셈이다. 21세기 한국에서 말러가 대세이다. 왜 말러일까 궁금하던 차에  2~3년 전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을 감상하였다. 얼핏 듣기에 고전주의 작품에 비해 곡의 스케일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이래서 말러, 말러 하는구나 정도로만 이해했다. 이 책을 통해 말러가 베토벤을 계승하고자 했던 점과 물량 투입이 가능해진 시대를 반영하여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구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청력을 잃은 운명에 베토벤이 도전하였듯 고전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말러 이후로도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다분히 이어지고 있다. 클래식이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적응하고 끊임없이 변모하는 좋은 사례이다.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열정은 언제나 환희와 감동을 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9OdIl8Tf4CI
<베토벤, ‘합창  교향곡’중 환희의  송가>


  항구에 정박한 배가 출항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이가 있다. 바로 ‘도선사’이다. 도선사의 지휘 아래 예인선이 항구에서 안전한 위치까지 대형 선박을 이끈다. 안전한 지점으로 나간 후에야 비로소 배들이 망망대해로 유유히 헤엄쳐 나갈 수 있다. ‘클래식 아는  척하기’는 클래식 음악 감상에 있어 일종의 ‘도선사’이다. 경험많은 도선사가 항구 근처 지리를 잘 파악하여 배를 이끌 듯 음악을 전공한 저자가 무한히 넓은 클래식의 바다를 이해하기에 꼭 필요한 내용들을 간결하게 소개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내게 한 가지 숙제가 생겼다. 책에서 소개된 작품 중에서 아직 감상하지 않은 곡들을 소장하고 있는 음원이나 유튜브로 전부 일청 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기 바란다. 서서히 지식을 쌓고 안목을 넓힌다면 클래식이 그다지 낯설고 어려운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하리라 믿는다. 독자들이 어느 순간 자신 곁으로 다가선 인생의 멋진 동반자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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