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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Dec 19. 2019

[서평, 리뷰] 영화관에 간 클래식

일거양득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제작과정에서 문학, 건축, 음악,  미술 등 여러 예술 장르가 통합된다. 명작으로 꼽는 영화에서 배우들의 열연은 기본이다. 우선 스토리 라인이 단단하다. 잘 쓰인 소설처럼 대본이 매끄럽고 치밀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연출자의 아름다운 미장센과 세심한 연출도 필요하다. 여기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한 가지. 바로 영화음악도 필수이다. 러닝타임 내내 음악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흑백 무성영화 시대를 떠올려 보라. 주인공들의 애절한 이별, 다수를 위한 거룩한 희생, 긴장감을 조성하는 클라이맥스에 걸맞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 장면이 얼마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겠는가?


  [영화관에 간 클래식]을 집필한 김 태용 작가는 서양 음악사 저술가이자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이다. 클래식  식견이 출중하다. 저자는 영화 한 편을 여러 번 관람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간 들리지 않았던 클래식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다른 영화들에서 클래식 음악이 어떻게 쓰였는지 모니터링한 것에서 시작된 셈이다. [영화관에 간 클래식]에서는 저자가 즐겨 시청했던 22편의 영화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할 만하다.


  첫째, 이미 밝힌 집필 의도처럼 영화에 삽입된 클래식 작품을 일러준다. 서번트 증후군 장애를 가진 천재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다룬 '그것만이 내 세상'을 예로 들어 보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 쇼팽의 <녹턴 2번 Eb장조, Op.902>,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Op.11> 등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한다고 알려준다. 당해 영화 어느 장면에서 어떤 음악들이 소개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DVD, 블루레이와 같은 콘텐츠나 VoD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유용하다. 처음부터 진득하게 클래식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려도 되고 시간이 없다면 해당 장면 위주로 감상할 수도 있겠다.


  둘째, 영화 음악으로 쓰인 클래식 작품을 설명한다. 작품의 배경, 작곡가와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소개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저자의 내공과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다. 베토벤 교향곡이 익숙하다 여겼다. <영웅>, <전원>, <운명>, <합창> 등 베토벤 교향곡들의 선율을 머리에 담았다고 생각했다. '킹스 스피치'에서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92 - 2악장>을 설명한다. 문득 '교향곡 7번, 내가 들어봤던가?', 헷갈렸다. 서둘러 유튜브에서 2악장을 들은 다음에야 비록 내가 기억을 못 했지만 얼마나 유명한 곡인지 깨달았다. 7번 교향곡은 오스트리아 - 프랑스 전쟁 동안 작곡되었다. 저자는 전쟁으로 인해 후원이 끊기고 연인 테레제 말파티와 헤어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전쟁과 실연을 이겨내려는 베토벤의 강인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해설한다. 저자는 7번 교향곡이 등장하는 여러 영화들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 중 '맨 프롬 어스'가 김수현, 전지현이 열연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도 친절하게 일러준다. 


  셋째, 깨알 같은 클래식 상식과 용어들을 익힐 수 있다. 서곡은 오페라 도입부의 단악장으로 구성된 독립적 기악음악이다. 흔히 오버츄어라고 한다. 서곡은 빠르게 - 느리게 - 빠르게로 전개되는 이탈리아식과 느리게 - 빠르게가 두 번 반복된 후 마무리되는 프랑스식이 있다. 이탈리아식 서곡을 신포니아라고 한다. 후대에 이르러 신포니아가 발전한 형식이 바로 교향곡(심포니)이라 귀띔한다. '언터처블  : 1%의 우정'에서는 17~18세기 고급 음악과 저급 음악을 다룬다. 당시에는 왕, 귀족 등 상류층들이 장 밥티스트 륄리의 발레 음악과 같은 프랑스 음악을 고급 음악으로 간주하였다. 서민들이 즐겨 듣는 저급 음악은 텔레만과 같은 바로크 음악이었다. 그는 3천 곡을 작곡할 정도로 바로크 음악의 대중화를 앞장섰다고 한다. 오늘날 바로크 음악이 클래식 역사에서 갖는 의의를 이해하면 자연스레 실소하게 된다. 시대에 따라 예술사적 가치가  달리지니 말이다. 


  22편에 어우러져 소개된 클래식 음악을 읽어가면서 개인적으로 미처 몰랐거나 흥미로웠던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첫째, 마리아 칼라스,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오페라 가수이다. 저자는 '보헤미안 랩소디'편에서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를 마리아 칼라스에 비견되는 최고의 디바라고 비유한다. 그녀의 폭발적인  고음과 풍요로운 성량이 무척 궁금하다. 폭발적인 고음이라고 하는 걸 봐서는 미국 소프라노의 대모 레온타인 프라이스와 비슷한 성량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전성기 시절, 그녀의 성량을 제대로 담아낼 레코딩 기술이 없어 현재 남아있는 LP로는 그녀의 잠재력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다. 


  둘째, 베토벤의 피아노 소품 중 애잔한 선율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있다. 원제는 <바가텔  25번, WoO 59>이다. 이 작품이 가슴 저미도록 슬픈 이유가 있다. 베토벤의 청혼을 그의 연인 테레제 말파티가 거절한 것이다. 프러포즈를 거부당한 후에 작곡한 것이 바로 이 곡이다. 그래서일까? <엘리제를 위하여>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시리고 먹먹해진다. 실연당한 아픔을 달래려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셋째, 클래식에 대한 깊이가 짧지만 현대 클래식은 더욱 문외한이다. '엑소시스트'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클래식 작품은 현대 클래식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첼로 협주곡 1번 1972>이다. 이 곡은 첼로가 낼 수 있는 가장 불편한 소리를 구현했다고 평가한다. 구마 의식을 다룬 방화 '검은 사제들'에서 바흐 노래가 퇴마 음악으로 등장한다. 바흐의 <칸타타 BMV  140>의 첫 번째 곡 '눈뜨라 부르는 소리 있어'이다. 이 노래 제목을 듣자마자 떠오른 소설 작품이 있다. 이 우혁 작가의  <퇴마록>이다. 퇴마록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한 국내편 1에서 동명의 제목을 단 에피소드가 있다. 


  넷째, 2001년 나를 홈씨어터 세계로 인도한 영화가 있다.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이다. 6.1 채널에서 쏟아지는 게르만족과의 전투는 당시 홈씨어터의 레퍼런스였다. 당시 홈씨어터로 감상해야 하는 DVD 레퍼런스 타이틀 3종이 있었다. 바로 '글래디에이터',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글스 : 헬 프리즈 오버'이다. '글래디에이터'의 게르만족과의 전투씬에서 등장하는 <The  Battle> OST를 한스 짐머가 작곡했다. 그러나 이 곡은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 Op.32>의 첫 번째 곡 화성, 전쟁의 전령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고 한다. 홀스트의 행성은 교향적 모듬곡이다. 교향적 모음곡이란 교향곡의 독립된 3, 4악장이 아닌 여러 악장으로 나뉘지만 악장마다 별다른 구조적 특징이 없이 자유로이 쓰인 형식을 말한다. 한편, '슈렉'에서 등장하는 <죽음의 무도>는  교항시이다. 교향시란 다악장의 교향곡과 달리 단악장으로 구성되었고 문학작품을 음악에 결합한 장르를 뜻한다.


  보통 클래식 마니아라고 하면 집에서 자주 클래식 음원을 감상하고 직접 공연장을 찾는 이들을 일컫는다. 나 역시 클래식을 듣는 것에 만족하고 공연장에 가도 무대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집중할 뿐이었다. 저자는 클래식을 듣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보고 읽으라고 추천한다. 공연장에서 음악 듣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실황 장면 하나하나를 눈으로 담으라고 조언한다. 지휘자가 해석하고 강조하는 연출(지휘)하에 연주자와 악기들이 언제 어떻게 연주하는지 꼼꼼하게 봐야만 작품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다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직접 악보나 작품집을 구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악보를 읽어 볼 것을 강권한다.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악보를 읽으면서 음악의 흐름을 듣는다면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 전공이 아니어서 악보를 함께 본다는 착상을 해 본 적조차 없다. 저자의 추천대로 오페라 아리아 중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가에타노 도니체니의 <사랑의 묘약> 2막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 악보를 구해서 파바로티의 노래를 다시 감상해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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