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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Nov 08. 2019

[서평, 리뷰] 왜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을까

완독과 삼독이 주는 즐거움

유연천리  래상회(有緣千里 來相會) 인연이 있으면 천리 밖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무연대면 불상봉(無緣對面 不相逢) 인연이 없다면 얼굴을 마주해도  만나지 못한다.


  ['왜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을까]를 접하게 된 일이야말로 '만날 인연은 언젠가는 만난다'는  중국 속담에 딱 맞아떨어진다. 독서법을 주제로 하는 책이 상당한데도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하늘이 내게 준 행운, 즉 천운 일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필요는 (우연한) 선택의 어머니라고 해야 하겠다. 노안이 시작되어 책 읽기가 약간 불편해지고 악필에 정리하기 조차 주저스러워  독서노트를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하던 차에 접하게 되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독서법을 다룬 책들이 다양한 내용들로 꽤 많이 출간되었다. 내가 독서법을 다룬 서적을 접한 경험은 이 번이 처음이다. 단 한  번의 인연을 기준 삼아 아직 맺지 못한 다른 인연을 함부로 평가하는 건 아무리 제 눈의 안경이라 해도 오만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만남에 불꽃이 튀고 전율이 흐르는 운명적 사랑을 만났는데 굳이 다른 인연에 한 눈 파는 어리석음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만큼 이 책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꽤 오래전부터 책을 읽은 후 줄거리, 주제, 기억에 남음직한 인상적인 문장이나 주요 내용 몇 개 등을  제외하곤 쉽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주위 하소연이 남 말 같지 않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하는 안타까운 절망감이 노안과 악필과 더불어 책 읽기를 멀리하게 하여 음악을 듣거나  TV를 시청하거나 아니면 구글링으로 애써 위안을 삼곤 했다. 기억력이 생생하고 화려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자면 오늘의 장려한 落日이  초라해진다.


  학창 시절, 주로 속독과 다독에 의지하였다. 몰아치기와 벼락치기에 익숙한 탓이다. 직장을  다니고 나서는 평소 독서를 할 때 나름 중요하다 여긴 문장을 노트에 적거나 내 생각과 견해, 주장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하는 편이다. 책의 주제와 개략적인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손 치더라도 꼼꼼히 메모하며 읽어 내려가는 방법에 비해 많은 내용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속독과 다독으로 돌아가자니 왠지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 같아 주저했다. 어찌할지 몰라 답답하던 차였다. 다시 생각해도 귀중한  인연이다. 


  이 책은 저자 남낙현 작가가 수년간 다독하며 체험한 실전적  독서법과 노트 작성법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책을 매개로 저자와 대화하여 독자 스스로가 작가가 되어 자신만의 노트를 쓰게 해주는  노하우를 알려 준다. 


  그가 제안하는 독서법의 첫출발은 완독이다.  천천히 읽자는 주장이다. 패스트 라이프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슬로 라이프는 왠지 몸에 안 맞는 옷이다. 불편하고 어색하다. 책을 빠르게  통독하다가 천천히 읽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답답한 나머지 읽지 않은 뒷부분이 궁금하여 집중하지 못할 개연성도 있다. 여행에 비유해 보자. 자동차로 여행하면 경치가 확확 바뀐다. 세세하게 보지 못하나 풍경이 빠르게 변한다. 자전거를 타면 느려진 속도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천천히 볼 수  있다. 도보 트레킹을 할 경우는 경치가 변하지 않을 듯한 빠르기여서 주변을 두루 살피고 상념에 잠길 수 있다.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리라 믿고서  말이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통독보다 묵독이, 묵독보다 지독(指讀, 손끝 독서)이 더 많은 사색을 하게 하고 기억에 남을 문장과 감상을 기록할 수 있다. 결국 완독, 지독이란 자신의 독서노트를 준비하기 위한 대전제인  셈이다.


  손끝 독서의 두 번째 단계는 삼독이다. 책을 3번  읽으라는 것이다. 학창 시절 벼락치기할 적 교과서를 연습장 메모 없이 3~4번 정독한 효과가 얼마나 큰 지 알기에 저자가 말하는 삼독이 3번  정독하라는 줄로 알았다. 나의 오해였다. 저자가 권하는 삼독은 한 권의 책을 읽고(1독), 읽은 책에 밑줄  친 부분을 초서하고(2독), 초서한 내용을 읽으며 사색한 바를 글로 적는 것이다(3독). 책 한 권을 핵심 부분에 밑줄 그으며  주욱  감상하듯 읽어 나간 후 밑줄 친  문장을 초서하면서 꼽씹어 다시 읽고, 노트한 초서와 생각을 되짚으며 작가와 다르게 자신의 독창적 생각을 적어 내려가면 작가가 얘기하고자 했던  주제와 줄거리, 핵심적인 내용과 문장들을 쉽게 기억해 낼 수 있다고 알려 준다. 


  내게 독서란 책을 매개로 작가와 독자가 주고받는  대화이다. 작가는 그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핵심적인 몇 가지로 분류하여 전하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써내려 간다. 일종의 연역적이고 Top-Down적 접근방식을 취한다. 반면  독자들은 각 장마다 구분된 내용들을 읽어 내려가 작가가 저술한 책의 줄거리와 핵심 내용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를 유추한다. 귀납적이자 Bottom-Up 접근방식에 익숙하다. 결국 독서는 작가가 연역적으로 풀어낸 사고의 부산물을 독자들이 귀납적으로  이해하여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작가의 화두를 찾아내는 지적 게임인 것이다. 


  저자는 지적 게임인 독서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작가가 숨긴 보물 찾기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토대로 완독과 삼독을 제안한 것이다. 토대가 탄탄하다면 집을 짓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첫째, 삼독할 주인공을 달리 한다. 한 권의 책과 밑줄 친 핵심  문장과 초서를 읽는 주인공이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독자로서 읽기다. 독자 입장에서 정독 내지 통독으로 밑줄 그으며 감상하자는  것이다. 다음은 작가로서 읽기이다. 작가 관점에서 밑줄 친 문장을 다시 읽으며 초서를 하여 작가가 얘기하려는 줄거리와 주제를 파악하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작가가 되어 초서와 감상을 읽으며 주제를 파악하고 재해석하는 주체적인 제삼자로서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둘째, 독서노트의 다방면 활용이다. 인류가 문자를 통해 기록하고 지식을 축적했듯 책을 읽고  사색할수록 쌓이는 지식과 경험을 노트로 적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을 무작정 쓰라는 이응준 작가의 조언처럼 저자도 형식과 내용에 좌고우면 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초서하고 생각을 적으라고 당부한다. 노트에 쌓인 무수한  초서와 생각들이 언젠가는 자신만의 도서관을 짓는데 필요한 벽돌이 될 것이다. 노트가 무작정 쌓여만 있으면 정작 필요할 때 찾기가 어렵다. 따라서  노트를 검색할 수 있는 색인을 활용해야 한다. 저자는 '번호, 책 제목, 저자'로 분류해도 필요한 내용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일러준다. 필요할 경우 작가나 장르, 테마별로 세부 기준을 만들면 충분하지만 세부 기준은 가급적 복잡하지 않도록 가급적 10개 이내로 관리하라고 추천한다.


  셋째, 초서의 진화이다. 독서노트를 처음 접한다면  눈에 들어오거나 마음에 남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초서를 추천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초서한 다음 해당 문장의 감상을 간략히 적고  초서와 감상을 읽으며 책을 통해 자신이 느낀 감상, 주제와 내용에 대한 독창적인 재해석을 더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넷째, 독서노트 관리방안이다. 독서노트가 많아질수록 노트 관리가 필수적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필사한 노트를 다시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직접 쓰고 타이핑한다는 점에서 기억에 확실히 각인되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불가피하다. 저자 경험상 노트 필사본만으로도 적절한 색인 관리를  전제로 우려보다 쉽게 인용하거나 자신이 기록한 생각과 감상들을 찾을 수 았다고 한다.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은 PC나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여  파일로 관리하는 것이다. 필사에 비해 속도가 빠르고 분류와 검색이 매우 편리하다. 다만 타이핑이 필사를 할 때만큼 사색을 깊게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저자는 요즘 PC 등 디지털로 관리한다니 참조하자. 


  서평 리뷰를 몇 차례 준비하면서 인용한 초서와 나의 생각, 견해, 주장, 갑자기 떠오른 글감과  소재들을 마구 뒤섞어 노트에 적기만 했다. 보통 100페이지당 한 장을  목표로 정리해 왔지만 어찌나 악필인지 다시 보려면 제법 수고를 들여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몇 가지 팁을 얻었다. 1) 노트 안쪽에 목차를 기록할 수 있게 리뷰 서평마다 번호와 색인을 달자. 2) 장르별로 노트 분철이  가능하게끔 파일링 가능한 종이를 사용하자. 3) 초서와 내 주관을 구분하기 위해 일정한 표시 내지 색깔별로 달리 기록하자. 4) 나중을 위해서  빼곡히 적지 않고 여백을 충분히 두자.


  무협만화에 흔하디 흔한 레퍼토리가 있다. 무공을 모르는 순진하고 착한 주인공이 기연으로 무공비급을  얻어 난적을 물리치는 전형이다. 언젠가 웹소설이나 본업인 투자 운용업 관련 서적을 쓰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초보 작가의 발끝도 미치지  못할 내게 이 책이 다시없을 기연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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