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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Jan 17. 2021

테슬라 은퇴, 동학 개미와 소로스

Boom & Bust는 반복된다. 우리는 버블 사이클 어디에 있는 걸까?

내게 0.0028% 확률(1/35,724)*로 발생할 행운이 온 적이 있다.

2004 년 5 월경, 퇴근길에 나도 모르게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가게에서 로또 복권을 샀다. 그날 이전까진 로또를 거의 사지 않았다. 2001 년이던가? 로또 복권이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 재미 삼아 두어 번 샀던 게 전부다.

'운 좋으면 4등 아니면 5등이나 하겠지.'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거다. 기대가 없으니 주말 내내 잊고 있다가 일요일 오후 늦게서야 아내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금요일 퇴근할 때 샀어. 재미 삼아 맞춰 봐"

복권을 든 아내가 책상에 앉아 인터넷에서 당첨 번호를 확인하며 동그라미를 그려 나간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자꾸 원을 그리는 모습에 꽤 맞는구나 싶으면서도 이건 뭐지라는 심정이었다. 확인이 끝나자 아내가 복권을 내민다.

"오빠, 5개 맞았는데? 괜찮은 거야?"

순간 가벼운 흥분이 일면서 서둘러 복권을 확인했다. 6개 숫자 중  정말 5개가 맞았다. 그리고 보너스 숫자가 아쉽게 한 끝 차이였다. 6개 중 유일하게 틀린 숫자도 당첨번호와 셋 끝 차이. 보너스 번호가 틀린 3등이다.

3등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에 제일 먼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우, 내게 이런 행운이 오다니'라는.
신기한 감정을 곧바로 밀어내며 감사한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살아갈 날이 한창 남은 아내와 내게 앞으로도 좋은 일이 기다릴 거라는 계시로 받아들였다. 예상치도 않은 뜻밖의 '로또'를 만끽하며 둘이서 저녁 내내 행복해했다.** 다음 날 은행에서 당첨금을 수령한 다음 친가와 처가에만 조심스럽게 3등 당첨 소식을 전했다. 누군가 알게 되면  혹여라도 내 품에서 안은 복덩이가 허무하게 날아갈지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걱정에 지인들에게는 행운을 알리지 않고 쉬쉬했다.

그 날 이후로 로또를 다신 사지 않았다. 왜냐고? 0.0028% 이상의 벼락도 맞지 않을 확률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로또 당첨은 독립 사건이지 종속 사건이 아니다. 이 번에 당첨되었다고 한들 다음에 로또를  구입하더라도 1등 확률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에 횡재는 한 번이면 족하고, 맞지 않을 복권을 사면 살수록 이미 받은 당첨금의 기대값만 축낼 것이란 나름의 계산이었다.

*)  로또 복권 1등 당첨확률은 1/8,145,060.  조합 45C6의 값이다.
**) 복권 당첨 후 사나흘이 지나서야 비로소 1등에 당첨되었더라면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뒤늦게 찾아왔다.


 엊그제 테슬라 주식으로 39세에 조기 은퇴한 투자자가 화제이다. 테슬라가 880 $ 찍던 날. 조기 은퇴한다는 코멘트와 계좌 잔고 인증샷을 트윗하자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주인공 제이슨 드볼트는 2013년 테슬라 전기차를 구입하며 차량 구입 이벤트로 테슬라 공장을 방문한다. 테슬라 성공을 확신한 그는 주당 7 $에 2,500 주(액면분할 전 기준 주당 35 $에 500 주)를  산다. 적금 붇듯이 꾸준하게 매수하여 평균 단가 58 $에 14,850 주(액면분할 전 기준 주당 290 $, 2,970 주)를 야금야금 모았다. 그가 은퇴를 결심한 날, 트위터에 올린 평가액은 1,194만 $, 한화로 약 131억 원이었다. 대박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조기 은퇴하는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꿈을 이룬 드볼트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전하고 싶다.


기사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드볼트의 조기 은퇴를 부러워할 것이다. 한편으로 ‘난 왜 드볼트처럼 대박 날 주식, 투자처를 발굴하지 못할까’ 혹은 '나도 테슬라를 샀을 걸'하는 후회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시라. 정답을 보면 언제나 쉽다. 일단 방법을 알면 콜럼버스 달걀은 누구나 세울 수 있다. 그러나 2013년으로 돌아가서 2019년까지 평균 단가 58 $에 14,850 주를 투자할 배포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투자원금만 ‘86.1만 $ 가량이다. 원화로 치면 대략 9.5억 원이다. ‘영끌’해서 테슬라 한 종목에 올인, 몰빵이다. 확신만 있다면야 집중투자 못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근 6년을 액분 후 50 $ 대에서 횡보하는 주식을 마냥 기다리는 건 쉽지 않다. 내 주식은 놀고 있는 사이 두 세 배 나는 종목들이 수두룩한데. 배 아파서라도 참기 힘들다. 옆으로만 기면 그나마 다행이다. 테슬라가 망하거나 실패한다는데 목숨 건 헤지펀드들이 거칠게 공매도까지 하는 상황에 머스크가 야심 차게 내놓은 100% 자동화 공장에서 생산이 뻑나기 시작한다. 70 $에서 놀던 주식이 19년 5월 순식간에 37$까지 하락했다. 고점에서 반토막, 원금에서 37% 손실이다.  9억 5천만 원이 6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주위에서는 테슬라 끝났다고 난리다. 이런 상황에서 멘붕 되지 않고 버틸 수 있다면 정말 강심장이다. 아마도 드볼트의 심장은 초합금 제트이지 않겠나.


 [고공 행진하기 전의 테슬라 장기 횡보 추이]

드볼트가 처음 테슬라를 구입한 이후 테슬라 주가는 1년 새 6배 이상 오른다. 신차 모델 S 기대감이 컸다. 판매량이 늘어남에도 실적이 나아지지 않으며 주가는 15 년까지 정체된다. 16 년 회사가 제시한 판매계획에 미달하는 부진한 매출과 급증한 적자로 인해 직전 고점 대비 -50% 하락. 17년 기가팩토리 기대감이 커지며 150% 상승. 그러나 목표 대비 판매량이 미치지 못하고 생산 차질까지 발생하자 생존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감이 대두되며 19년 5월까지 다시 50% 하락한다.


'흔들리는 주가 속에서 숏 베팅들이 늘어난 거야~~. 대세 하락한 건가, 후회막급이지만 그냥 오를 날만 기다린 거야.' 폭락이 있을 때마다 드볼트는 이 노래를 부르며 애써 위안 삼지 않았을까?


[테슬라 회의론 - 테슬라의 대량 해고를 문제 삼는 경제 전문가]

국내 최대 연금의 기금운용본부에서 경제분석을 담당한 이코노미스트가 17 년 말에 올린 기사. 당시 테슬라는 100% 자동화 공장을 추진했다. 생산 인력이 필요 없는 건 당연한 이치임에도 전형적 제조업 생산에 익숙한 사고로 인해 테슬라가 심각한 오류를 범한다고 분석하였다. 이런 오해와 편견들이 쌓여 테슬라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기에 이른다. 19년 자동화 공장이 가동되지만 당초 기대보다 수율이 올라오지 않아 머스크는 공장에서 숙식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밤낮없이 매달렸다.  


내가 테슬라를 산 게 이즈음이었다. 18 년 말 액면분할 전 고점 350 $에서 19년 5월 말 180$까지 급락하자 청개구리 심정이 발동하였다. 미치도록 사고 싶었다. 지금 사면 저점이라는 판단에도 손이 나가질 못한다. 다들 망한다고 하니까. 테슬라 생산 차질. 노답. 분기 실적은 계속 기대에 미스. 머스크가 공장에서 노숙자처럼 숙박하는 가십성 사진이 도배를 하던 시기다. 테슬라를 사자고 하면 다들 정신 나간 놈 취급하던 시절이었다. 글로벌 시총 상위 5위(사우디 아람코 오일 제외)에 등극한 오늘날의 테슬라만 기억하는 투자자들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테슬라가 망한다고? 일언반구의 여지가 없을 불경스러운 망발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랬다. 테슬라가 성공한다는 믿음이 이단이었던 시기다. 어쨌든 난 176 $ 바닥을 확인하고 180 $ 이상으로 빠르게 반등하는 테슬라를 안타깝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여전히 손이 나가질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시세를 확인하니 드디어 220 $를 넘겼다. 이제라도 못 사면 내 성격상 절대 살 수 없을 가격이다.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테슬라에 인생을 걸 것도 아닌데, 그냥 투자했다가 설사 테슬라가 부도가 난다고 하더라도 데미지 받지 않을 정도만 사보자. 난 머스크의 성공을 믿잖아’. 곧장 후배가 며칠 전에 보내준, Ark Investment가 공개한 ‘테슬라 수익 예상 모델’ 파일을 열었다. 2023년 사업 현황에 따라 최소 500 $ ~ 최대 1,400 $을 목표로 하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내가 그리는 이런저런 가정을 넣어 본다. 판매대수가 100만 대가 안된다면? 로보 택시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는? 가정을 바꿀 때마다, 마진율을 건드릴 때마다 숫자가 민감하게 바뀐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었던 유일한 건 테슬라가 아무리 버벅거려도 23년에는 최소 80~100만 대를 만들 수 있는 capa를 갖출 거라는 믿음이었다. 바로 위 단락부터 지금까지 얘기한 주가들은 액분 전 주가임을 참고하시라. 액분 후로 치면 나누기 5를 해야 한다. 70 $, 35 $, 36 $, 44 $, 100$, 280 $이다. 지금으로 치면 무척 소박한 가격들이다.


‘그래. 테슬라는 망하기 전에 최소한 M&A라도 될 거니까 피인수 가치를 고려 시 최소 2배, 잘되어 200~300만 대 팔 수 있다면 10배, 2천 $을 목표로 하자. 10배 나서 모델 3나 Y 살 정도의 금액을 역산해서 사보자. 최악으로 망해도 인생 쪽 나는 거 아니잖아? ’ 위험을 상당히 회피하는 투자성향에서 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지금도 의아하다. 넉넉하게 230 $에 예약 주문을 냈고 다음 날 220 $대에 체결되었음을 확인했다. 액분 후 지금 기준으로는 44 $에 산 셈이다. 테슬라가 다시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자 엑셀 파일을 준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여의도에서 형만큼 싸게 테슬라 산 사람 없을 거예요.”

“뭐, 운이지. 나도 살 때는 쫄렸어. 그냥 잘 되면 차 한 대 사는 거고 안되면 날리는 셈 치고 산 건데 뭘”


말로는 날려도 된다고 했지만 망해도 M&A는 될 것이고 그러면 어느 정도 수익은 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있었다. 무엇보다 투자한 규모가 제로가 된다 하더라도 속은 쓰리겠지만 인생에는 지장 없을 거라는 허영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없어져도 된다는 정도의 투자 규모야말로 드볼트와 달리 내가 시세가 어떻게 움직이건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로또 당첨은 운일 뿐이다. 기대하기 어려운 확률이 운좋게 실현됨에 지나지 않는다. 테슬라와 같은 주식은 사고 파는 행위에 회사를 분석하는 인간의 노력이 가미된다. 그래서 주식은 성공의 경험과 자신감이 쌓일 수 있다. 누군가는 로또처럼 사겠지만 로또만큼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나와 드볼트의 차이는 인생을 걸만큼 치열했느냐이다. 그럴 배포가 없는 나는 지금의 행운에 만족한다.


테슬라를 구구절절하게 얘기한 이유가 있다. 지난 1년 간 테슬라는 투자자의 욕망과 주가의 속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불과 1년 반 만에 벌어진 주가의 대역전극이자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19년 상반기에는 누구나 테슬라가 망한다고 치부했다. 난 테슬라를 샀다며 지인들에게 추천을 해도 반신반의가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는 ‘갑툭튀’가 아니라 갑자기 툭 테슬라 얘기를 한다는 ‘갑툭테’ 느낌으로 나를 바라보면 다행, 심한 경우에는 왜 이런 망할 주식을 자꾸 얘기하냐며 역정을 부린 지인도 있었다. 요즘은 어떤가? 테슬라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할 량이면 맛있는 음식에 재 뿌리는 못된 놈 내지 세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한가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유튜브로 테슬라 공부나 하라고 구박받는 건 다반사다.


도대체 지난 1년 6개월 투자자들에게 어떤 마법이 드리운 것일까?


[테슬라 로그 차트]

15 년 이후에 테슬라는 두 번의 폭락이 있었다. 모두 직전 고점에서 절반가량 주가가 하락하였다. 이러한 고통을 이길 투자자들은 흔치 않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이 이어진다. 19 년 5 월 저점으로부터 21 년 1 월 고점까지 25배 올랐다. 20 년 2~3 월 다시 60% 폭락한다. 뭐. 이 때는 코로나로 세계가 망한다고 할 때니까 그렇다 치자. 테슬라 주가가 단기 급등폭이 너무 가파라 등배수 간격의 로그 차트로 그렸다.


8 년간의 테슬라 주가 흐름을 개략적으로 정리한다. 드볼트가 주식을 샀던 2013 년 초 이후 테슬라 주가는 35 $에서 2014 년 말 291 $ 까지 불을 뿜는다. 그리고는 200$대를 중심으로 5년간 지루하게 횡보를 한다. 350 $ 고점을 찍고 2019 년 5 월 176$의 대바닥을 그린다. 그 이후 멈춤 없는 질주가 시작된다. 2021 년 1 월 초 4,400 $(액분 기준 880 $)까지 로켓처럼 치솟았다. 분출 국면에서도 위기는 있었다. 20 년 1 월말 968 $ 찍은 다음 코로나 1차 확산이 덮쳐 대공황이 올 수 있다는 공포심에 20 년 3 월 350 $ 까지 급전 직하한 적도 있다.  19 년 5 월부터 9개월간 5배 이상 오르고, 20 년 3 월 이후로 9개월 동안 12배가량 상승했다. 이런 주가 흐름은 유례를 찾기 힘든데 요즘 나스닥 시장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버블을 구경할 수 있다는 자체가 투자자에게는 행운이라 하겠다.


장기 횡보 후 2년이 채 안 되는 시점에 20배가량 오른 원동력이 과연 무엇일까? 테슬라가 정말 훌륭한 회사이기 때문에? 아니면 엄청난 흑자를 내며 이익 성장을 해서?, 그도 아니라면 자율 주행과 배터리 기술에서 경쟁자가 감히 얼굴을 들이밀 수 없을 탁월한 기술력을 보유해서? 무엇이 테슬라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켰을까?


투자업계의 그루라 일컬을만한 대가들마저 쉽사리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피터린치는 아마도 드볼트처럼 테슬라 모델 S를 타보거나 구입하려는 고객들로 들끓는 매장을 보고 투자를 했을 것이다. 워런 버핏이라면 테슬라가 글로벌 자동차 판매 1위에 등극이 유력할 때 혹은 연간 수십조 원 이익을 낼 때에서야 발을 담글 것이다. 앤서니 볼턴은 어떨까? 아마도 배터리 기술, 자율 주행, 전장 기술에 관련된 어려운 설명보다 테슬라는 애플 같은 회사라고 쉽게 설명하려 할 것이다. 역발상 투자의 대가 켄 피셔는 대중과 정반대가 아닌 다른 각도로 테슬라를 보려 할지 모르겠다. 제각기 테슬라의 성공, 실패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투자 근거를 대겠지만 그들의 투자방식과 철학으로는 테슬라 주가가 왜 이런 롤러코스터를 타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답을 주진 못한다고 장담할 수 있다.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한 악마의 헤지 펀드 매니저, 36조 원의 막대한 금액을 천사처럼 기부한 기부왕. 악마와 천사의 얼굴을 가진 조지 소로스. 나는 그를 광폭 상승하는 테슬라 주가와 KOSPI 3,000, 나스닥 역사적 신고가를 설명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투자철학을 제공한 유일한 대가라고 감히 단언한다. 내 능력으로 소로스의 '반사성 이론'을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짧고 쉽게 설명하기가 벅찬 작업이다. 몇 번이고 '반사성 이론'에 대해 정리하고 싶었으나 주저되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 드볼트의 은퇴 기사를 보며 테슬라 사례로 써보자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반사성 이론의 시작은 인간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아. 말을 떼자마자 '인식'이라니. 여기까지 읽어 준 브런치 회원들의 스크롤이 빨라질 것 같기만 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심하다. 남들보다 예측력이 나으면 나았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남들과 다른 각도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애를 쓴다. 소로스가 이런 나를 본다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간이란 지적 능력에 한계가 있는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언제나 자연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사건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불완전함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오류와 편견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가정한다. 테슬라의 경우 회사 가이던스에 미흡하는 판매량, 생산 차질, 자금 부족 등으로 망한다는 부정적 편견이 극심했던 18~ 19 년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겠다. 이러한 오류 가능성(fallibility)이 첫 번째 전제이다.


불완전한 인식과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상황이 완전하게 되도록 완벽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잘못된 판단과 예상을 가지는 데 앞으로의 상황이 100% 올바르게 되게끔 조치할 수 없을 것이다. 테슬라가 망한다고 여긴 투자자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주식 투자자는 뒤늦은 손절매, 채권 보유자라면  원금 상환 요구, 파산 시 중고차 가치가 하락할 걸 우려하는 자동차 구매 희망자는 다른 전기차를 살 것이다. 모두 테슬라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요인이다. 주가를 떨어트리며 자금상황은 악화, 판매량은 더 부진할 것이다. 이처럼 불완전한 견해를 가진 참여자의 행동에 의해 관련된 상황이 영향을 받는 반대 작용. 참여자의 반사성(reflexivity)이 두 번째 전제이다.


 소로스가 전제한 오류 가능성과 반사성이 우리 인간이 야기하는 불확실성(uncertainty)의 원인이다. 흔히 투자론에서 위험을 불확실성으로 표현한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사전에 예측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기에 위험이 아니다. 미리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거나 확률로 표현할 수 없는 혼돈이 바로 불확실성이자 위험인 것이다. 인간이 오류를 범하는 건 우리가 이해 가능한 이상으로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인간의 뇌구조상 복잡한 세상이 던져 주는 수많은 시그널들을 동시에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뇌과학에서는 인간이 동시에 처리 가능한 감각적 충격은 7~8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수와 왜곡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반사성에 대해 좀 더 언급하겠다. 소로스는 생각하는 참여자가 있어야만 반사성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참여자가 무언가를 보거나 느끼려면 인식의 대상인 실체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사회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세상, 실체를 객관적 현실이라 부른다. 세상의 사건, 사고를 바라보는 존재인 생각하는 참여자를 주관적 현실이라 간주한다. 오류 가능성을 가진 생각하는 참여자가 객관적 현실을 이해하고 인지하는 것이 인지적 기능이다. 인지적 기능은 현실이 참여자에게 (현실을 주관적으로 이해하도록) 영향을 주는 것이다. 19 년 5 월의 테슬라나 21 년 1 월의 테슬라나 테슬라는 테슬라일 뿐이다. 한 때 생산에 문제가 있고 자금난도 있을 법했지만 결국 문제 된 수율을 잡고 계획한 대로 매출을 일으키는 테슬라는 오직  테슬라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테슬라를 이해하는 생각하는 참여자들은 각각 자기의 주관에 따라 '테슬라는 망할 것이다', '테슬라는 안된다', '테슬라는 전기차의 애플이다', '테슬라는 10년 뒤에 1천만 대를 팔 글로벌 1위 자동차 회사가 될 것이다'라고 믿을 뿐이다.   


재미있는 건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생각하는 참여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이해를 반영하려고 객관적 현실인 세상, 실제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점이다. 소로스는 이를 조작적 기능이라 부른다. 전술한 대로 테슬라를 나쁘게 보면 공매도하거나 손절매하거나 채권 상환을 요구하고 낙관적일 경우에는 모델 S를 사는 행동을 할 것인데 이런 행동들이 궁극적으로 테슬라 매출, 이익과 같은 펀더멘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참여자의 영향으로 변화된 테슬라를 다시 본 생각하는 참여자들은 또다시 자신의 판단에 따라 테슬라에 대한 반대급부 행동을 하는 무한 루프가 반복된다.  생각하는 참여자가 있기 때문에 인지적 기능과 조작적 기능이 서로의 종속변수이자 독립변수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반사성을 일으키는 무한 루프가 인간의 오류 가능성에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테슬라를 긍정적으로, 누군가는 테슬라를 부정적으로 판단할 텐데 시점에 따라, 뉴스 플로우에 따라 긍정적 편견이 우세할 수도 부정적 견해가 지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생각하는 참여자들의 불완전한 인지, 견해가 그들의 의도와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불완전한 행동이 주는 결과와 그들의 기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 하겠다. 이처럼 인간 행동의 비이성, 불완전성을 가정한 소로스의 반사성 이론의 토대는 주류 경제학과 매우 배치된다. 보통 경제학과 투자론에서 인간의 이성적 기대, 합리적 선택, 완전한 투자자를 가정한다. 독자들은 누구의 전제가 더 현실에 맞다고 여길까? 나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오류 가능성과 반사성을 증시에 빗대어 보자. 오류 가능성으로 인해 주가는 회사의 펀더멘탈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미래 이익을 정확히 예측하는 펀더멘탈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주가란 단지 미래 시장 가격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와 예상에 지나지 않는다. 투자자들의 기대와 예상이 변함에 따라 주가가 변동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의 미래 이익과 펀더멘탈에 다시 영향을 주어 주가의 변화를 이끌게 된다.


인식과 행동이 서로 얽히고설켜 객관적 현실과 생각하는 참여자에게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준다. 소로스는 피드백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째 부정적 피드백이다. 참여자의 주관적 견해와 실제 상황을 근접하게 해주는 피드백이다. 이를 자기 교정(self correcting)이라 하자. 둘째 긍정적 피드백이다. 참여자의 주관적 견해를 실제 상황에서 더 괴리가 발생하도록 하는 피드백이다. 일종의 자기 강화(self reinforcing)이다. 테슬라 주가에 취해서 더 빠질 것이라 믿어 공매도하거나 파는 것, 반대로 테슬라 주가 상승에 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테슬라를 상대할 배터리, 전기차 회사가 없고 시장을 장악하리라 여겨 이천 슬라, 만 슬라를 논하는 것. 자기 강화의 전형적 사례이겠다.


  테슬라의 R&D, 독보적인 배터리 기술, 20년 말 50만 대를 갓 넘긴 연간 생산능력, 두 번에 걸친 증자로 10조 원 실탄 마련, 기가 팩토리를 넘어선 테라 팩토리 계획, 경쟁사가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주행 데이터, 주기적인 업데이트로 연비 개선이 가능한 차별화된 플랫폼 가치, 로보 택시 서비스의 야심 찬 구독 경제 비전. 모두 테슬라의 펀더멘탈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다. 이처럼 테슬라의 펀더멘탈 한 요인들은 '기초적 경향'이라 부른다. 전통적인 재무론에서는 '기초적 경향'만이 주가를 결정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소로스는 '기초적 경향'과 더불어 생각하는 참여자의 '우세적 편견' 역시 주가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펀더멘탈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선입견으로 받아들이는 투자자들이 갖는 편견이 펀더멘탈을 바뀌기 때문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테슬라가 1 년 6 개월 동안 20배 오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붐 앤 버스트(Boom & Bust) 이론이다. 소로스가 보기에 버블은 항상 기초적 경향과 우세적 편견이 서로 자기 강화를 할 때 발생한다. 테슬라가 자동화 라인을 안정시킨다. 공언한 분기 판매 수량이 현실로 입증되기 시작한다. 때마침 탄소배출권 수익으로 순이익으로 전환된다. 배터리 데이에서 기대했던 전고체는 없었지만 대규모 양산 설비와 제조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주행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리는 신기술 로드맵을 선보인다. 개선된 펀더멘탈에 투자자들이 테슬라 매출 전망에 확신한다. 독보적인 자율주행 기능*이 궁극적인 위너가 되게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우세적 편견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펀더멘탈이 나아진 것 이상으로 테슬라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기대케 하여 주가를 끌어올린다. 주가가 올라가면 다시 우세적 편견이 더해지는 자기 강화가 반복된다.

*) 많은 이들이 자동차 회사들 중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이 제일 앞서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네비건트 리서치는 구글 웨이모, 포드, GM의 오토 파일럿이 테슬라보다 탁월하다고 평가한다. 전문가들은 테슬라의 강점은 주행 데이터에 있을 뿐이고 완전한 오토 파일럿 기술은 경쟁사에 비해 뒤쳐져 있다고 진단한다.


버블이 형성되면 자기 강화 현상이 더욱 공고하게 정착한다. 우세적 편견이 극단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펀더메탈, 현실에 비해 참여자의 주관적 견해, 우세적 편견이 너무 벌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급격히 괴리된 현실을 참여자가 인식하게 되면 자기 교정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기 교정이 작동하게 되면 그간 진행되어 온 자기 강화 현상이 반대 방향으로 급속하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낙관적 기대가 현실에 비춰 터무니없다는 부정적 피드백이 형성되면 편견과 현실이 엇비슷하게 일치하게 되지만 급격한 부정적 자기 강화로 인해 주가는 펀더멘탈이 훼손되는 것에 비해 급격하게 하락하게 된다.

  

[소로스의 붐 앤 버스트 모형]

AB : 잠복기, 추세가 시작되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투자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으므로 펀더멘탈이 나아지는 속도에 비해서도 주가 반응이 더디다.
BC :  우세적 편견이 시작하는 이륙 단계, 스마트한 투자자만이 추세가 시작되었음을 인식한다. 우세적 편견이 작동하여 추세는 가속화되고 펀더멘탈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 되기 시작한다. 드볼트가 이 시기에 투자했다고 보면 된다.
CD : 회의, 검증 단계, 고평가 논란에 추세 지속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어 주가가 하락한다. 13 년~19 년의 테슬라가 이에 해당되겠다.
DE :  긍정적 추세와 우세적 편견이 시험을 통과하면 확신이 강해진다. 실적이 부진해도 주가 상승에 탄력이 붙는다.
EF : 투자자들의 기대와 펀더멘탈 사이에 간극이 더 벌어진다. 펀더멘탈에 비해 투자가 기대가 과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모멘텀이 바뀐다.
FG : 부정적 피드백이 작동하는 여명 단계 : 비록 투자자들이 자신의 기대가 과함을 인지하면서도 게임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점차 기대와 현실이 균형점에 도달해 간다.
GH : 버블 해소, 폭락 단계 : 부정적 자기 강화로 인해 대폭락이 발생한다.
HI : 비관론이 서서히 마무리된다. 펀더멘탈도 점차 바닥을 지난다. 주가가 이를 반영하여 일부 회복된다.


  붐 앤 버스트 모형에서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펀더멘탈(기초적 경향)과 투자자의 우세적 편견 사이에 간극이 아주 심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가 변동은 늘 있는 일이고 통계와 퀀트 분석으로 이를 분석하여 위험을 일정 부분 회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균형점에서 극단적으로 벌어진 슈퍼 버블의 경우는 다르다. 불행히도 균형점에서 일정 부분 일탈한 데이터들의 평균 회귀를 가정한 기존의 통계학이나 수리분석 모델이 전혀 쓸모없게 된다. 미증유의 버블이기에 예측하기도 어렵다. 기존의 분석 잣대가 무용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퀀트 분석가들도 놓치기 십상인 거대한 지각판의 균열을 예고하는 초미세한 변화, 잠복 단계의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는 AI 알고리즘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설령 AI는 아닐지라도 2008 년 금융 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를 어느 정도 감지한 퀀트 펀드들이 있지 아니한가?


테슬라는 붐 앤 버스트의 어느 국면일까? 이제 DF 국면을 넘어섰을까? 아니면 EF 단계로 접어들었을까? EF에 있다면 초기 일지, 막바지 일지 무척 궁금하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증시는 어느 단계에 있는 것일까?


코로나 19로 대공황을 걱정하던 투자자들에게 디플레이션, 거대한 경기침체는 피안의 세계로 가버린 지 오래이다. 모두가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흩뿌리는 유동성 확장기조가 앞으로도 2~3년 더 갈 것이라 믿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와서 명목금리가 오른다고 해도 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가 여전히 마이너스이거나 제로 금리 수준이니까 주가가 더 갈 수 있는 환경이 유효하다고 당연시한다. 그러나 기억하자.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고 경제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면 1970 년 달러의 금태환이 포기된 이래로 10 년에 한 번 꼴로 스테그플레이션, 부동산 버블, 블랙먼데이, 미국 저축은행 파산, TMT버블, 서브 프라임 사태, 재정위기, 위안화 폭락과 같은 침체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언제던 유동성의 약발이 떨어질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지금도 낙관적인 우세적 편견이 경기와 실적이라는 펀더멘탈을 지배한다. 소로스의 견해를 빌리자면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경로로 부정적 피드백이 시작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언제, 어떻게 올 지를 지금 예단할 수 없다. 나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이 버스트의 시작이라고 수년 째 가정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듯하면서도 혁신 IT 기업, 게임회사,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입지가 양호한 상업용 건물을 사들여 전시장, R&D 센터, 사무용 공간, 데이터 센터 등으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약한 고리가 충분히 버틸 시간을 주고 있다.


KOSPI가 3천을 상회하는데 동학 개미의 역할이 매우 컸다. 2020 년 개인투자자는 45조 원을 사들였다. 올해는 2주 동안에만 14조 원을 매수 중이다. 그럼에도 증권회사에 예치된 고객예탁금은 75조 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매일 물밀듯이 증시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초저금리와 인터넷,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덕택에 증시가 활황이다. 임금 소득으로 부를 늘리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동학 개미, 개인 투자자들에게 주식은 나의 부를 늘려지고 지켜줄 유일한 대안일지 모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다. 다들 힘내어 산을 올라 정상에서 투자의 과실을 마음껏 향유하기를 바란다. 언제고 내려가야 할 시기에는 지나친 욕심에 파티가 끝나가는지도 모르고 버스트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KOSPI 3,000을 있게 한 동학 개미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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