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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Jan 20. 2021

핸드폰 없는 하루

flow와 stock의 차이

코로나 19로 점철된 2020년을 부질없이 보낸 탓에 연초에 받았던 건강 검진 결과가 실망스럽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아웃도어 활동을 활발히 할 때에 비해 워닝 시그널이 많이 뜰 거라 여겼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이틀 동안 기분이 몹시 심란했다. 정신 나간 것처럼 멍하고 자존감마저 바닥을 기어 집중이 안된다.


그래서일까? 출근길에 분명 빼먹은 거 없이 차에 탔다고 여겼건만 회사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당혹감에 휩싸였다.


평소에 비해 뭔가 허전하여 서둘러 옷을 더듬었다. 아뿔싸! 습관처럼 패딩 왼 주머니에 넣는 핸드폰이 없네~. 깜빡 잊고 집에 놓고 나왔다. 핸드폰 없이 하루를 지낸다고 생각하니 너무 갑갑하다. 예정된 저녁 모임은 또 어떻게 연락하지? 상쾌하게 시작해도 모자랄 오늘 첫출발이 뭔가 크게 꼬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수천 개의 연락처 중에 전화번호를 외우는 게 거의 없다. 핸드폰을 사용하기 전에는 수첩에 빼곡히 이름 석자와 연락처를 기록하고선 필요할 때마다 꺼내었다. 아니, 자주 사용하거나 꼭 외워야 할 번호들은 수십, 수백 개 정도는 자연스럽게 암기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20 년 전에는 누구나 그랬을 거다. 아~. 노래도 마찬가지다. 노래방으로 인해 가사를 외워 부르는 곡들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내가 기억할 무언가를 기계에 의존하는 건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이 혼재한다. 애써 외우려 애쓰지 하지 않는 건  암기 능력 향상에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굳이 외울 필요 없는 것들에 애를 쓰지 않는 대신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내가 필요하고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상당히 생산적일 것이다.


어쨌거나 핸드폰이 부재한다는 사실에 맨 처음 들었던 난감함은 저녁 약속을 어떻게 컨펌할지였다. 모임 장소도 긴가민가하고 시간도 정하지 않은 상태. 결정적으로 저녁같이 하기로 한 멤버들의 연락처를 모른다는 사실. 당황스러웠지만 대안이 곧 떠올랐다. 우선, 컴퓨터 아웃룩 연락처에서 찾아본다. 없으면 회사 동료에게 지인 연락처를 확인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웃룩을 열고 검색하니 떡하니 멤버들 핸드폰 번호가 있었다. 오케이. 땡큐~~. 혹시라도 일과에 바빠 못 볼까 하여  예약장소가 어디인지 메일을 발송한다. 퇴근 전까지만 확인되면 되니 마음이 좀 여유로워진다.


두 번째 당혹감은 SNS상에서 실시간 컨택을 하지 못한다는 불편함이다. 업무 특성상 하루에 문자가 수백 통, SNS에 쌓이는 메시지들은 더 많다. 매일매일 스팸처럼 쏟아지는 메시지 홍수에서 옥석을 가려 버릴 건 버리는 일이 쉽지 않다. 전투에 나갈 군인이 총알이 든 탄창 파우치를 잃어버린 꼴이다. 그래도 피씨에서 확인할 수 있는 메일로 상당 부분 커버되어서 천만다행이다.


일초, 일분, 한 시간. 하루 중  시간이 흘러가는 흐름에 놓치면 곤란한 real time 성격의 콘텐츠와 정보가 있다. 현대인들은 핸드폰이 없을 때 이런 flow를 커버하기가 상당히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그나마 모바일이 아닌 온라인에서 일부분을 만회할 수 있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런데 핸드폰이 없어도 큰 불편 겪지 않고 생활할 수도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구글 일정표에 하루 약속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다. 점심을 누구와 어디서 하기로 했는지, 저녁 모임은 어떤 성격인지 세세히 정리되어 있다. 오늘 스케줄을 전부 다 확인할 수 있으니 시간만 지키면 된다. 메일과 구글 계정은 flow가 하나씩 쌓여 있는 누적된 stack이다. 일종의 stock 성격이다. 핸드폰이 없어 비록 flow 전개에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쌓여 있는 정보를 누락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핸드폰은 flow와 stock를 동시에 매개하는 하이브리드 입력장치로 간주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갤럭시 워치 3를 착용했다. 스마트 워치보다는 아날로그 시계에 더 갬성이 쏠리고 애용하는 편이다. 수영이나 격한 운동 내지 장거리 산행을 할 때 갤럭시 기어핏을 선호한다. 운동할 때 반나절을 채 못 가는 배터리 용량이 성에 차지 않던 차에 갤럭시 워치 3를 선물 받아 요즘 즐겨 차고 있다. 핸드폰이 없어도 전화가 오면 누구에게서 왔는지 부재중 알림이 뜨고 SNS에 실시간으로 메시지 도착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웨어러블 기기가 입력장치로서 핸드폰을 보조하기에 꽤 쓸모가 있다.


클라우드와 와이파이 망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stand-alone의 구세대 핸드폰을 분실하거나 집에 두고 왔다면 매우 불편하고 정상적인 하루 일과를 마치기 상당히 힘들겠지만 가상세계로 연결된 스마트폰이 잠시 부재할 경우에는 우려보다 그리 불편하지 않다는 걸 체감했다.


어쩌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내 일상이 스마트폰에 종속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음악을 들을 때도 유튜브 뮤직을 블루투스로 보내 DAC을 통해 앰프와 스피커로 듣는다. 핸드폰에서 재생하는 것보다 음질이 좋기 때문이다. SNS 메시지를 놓칠까 노이로제 걸린 건지 틈나는 대로 상대방 반응을 확인한다. 웹툰을 보며 시간을 소일할 때도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스마트폰으로 짤방을 시청한다. 본방사수는 옛말. 이제 본방사수란 식구들 다 같이 모여서 넷플릭스 개봉 작품을 동시에 보는 걸 뜻한다.


구태여 있는 스마트폰을 없애고 살 필요는 없다. 아니, 스마트폰은 이미 나의 삶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핸드폰이 없다고 쳐도 세상 무너질 일이 없고 그냥 익숙함에서 잠시 벗어난다는 불편을 느끼는 게 전부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가끔 일상에 지칠 때, 어디 먼 곳을 떠날 계획에 골몰하기에 앞서 하루 이틀 핸드폰으로부터 탈출하는 여행을 하기를 권하고 싶다. 나부터 가끔 이런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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