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라이프, 은사님께서 보내주신 책 한 권
A good teacher is like a candle
지난 12월 23일 택배 안내 문자가 왔다. 택배 시켰던가 긴가민가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집 현관 앞에 놔두라는 답신을 보냈다. 귀가했더니 택배가 오지 않았다. 좀 늦나? 그리곤 이내 잊었다. 문득 섣달 그믐날이 되도록 소식이 없다는 사실에 회사로 왔으려나? 오늘 출근하고 오후에 1층 택배 수령실에서 10일 묵은 택배를 찾았다.
뜯어보니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책, '굿라이프'이다.
평소 같으면 연말에 대학원 지도교수님과 송년 모임을 하곤 했다. 교수님께 논문 지도받은 석박사들이 주로 참석한다. 개중에는 연구실 조교 출신들도 상당수 있다. 나 역시 교수님 방조교를 지냈다. 지난 12월에 코로나가 너무 극심하여 이번 겨울은 어쩔 수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 대신 친한 선배 한 분과 교수님을 만나 3명이서 저녁을 함께 했다.
이런저런 덕담과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내년 증시와 세계 경제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고 물으시길래 선배님과 각자 자기 견해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대학원 졸업한 지 26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교수님 앞에서는 조심스럽다. 지금까지도 이메일이나 카톡을 드릴 때면 항상 '아무개 조교 배상'으로 마무리한다. 내게 당신께서는 단지 대학원 석사 논문을 지도해주신 교수님이 아니다.
교수님 전공은 재무관리이다. 재무관리, 투자론, 경영분석. 과목도 그러거니와 학부 수업을 빡빡하게 진행하셨지만 늘 진지하고 열정적인 강의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으셨다. 대학원에 반드시 진학하겠다는 계획이 있던 건 아니지만 어찌하다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개강 전, 3학기 들어가는 동문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어디서 공부하는 게 나아요?".
선배 왈, "제대로 할 거면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가야겠지. 어느 교수님에게 지도받고 싶어?".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답한다. "당연히. 아무개 교수님이죠. 선배".
그 선배도 논문지도받는 중이다. "잘 되었네. 마침 조지 워싱턴 대학 안식년 마치셨으니 찾아뵙고 인사드려"
교수님 연구실을 두드렸다. 교수님께선 방 안쪽 책상에 앉아 논문을 보고 계셨다.
"교수님, 이번에 석사과정에 입학한 아무개입니다. 제가 본과를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교수님 연구실 조교를 하고 싶습니다."
문득 안경을 고쳐 쓰시고 찬찬히 내 얼굴을 다시 보신다. 수 초 지나고 나서 "좋아요. 박 군. 그렇게 해요."
허락받아 다행이라는 숨 돌리면서 무리한 청까지 올렸다. "교수님. 죄송스럽게도 제가 아침잠이 많습니다. 대신 밤에 연구실을 정리 잘해놓겠습니다. 출근하실 때 차를 직접 내려 드리지 못하더라도 드시는데 차질 없도록 준비하고 퇴근하겠습니다. 괜찮으실는지요?"
당돌한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시며 "괜찮아요. 편할 대로 하세요. 박군."
이것이 은사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 날로부터 올해까지 그 인연이 28 년이 다 되어간다. 개강한 지 한 달이 지날 즈음, 제법 교수님과 친숙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연구실 들어갈 때 내 가족 등 간략한 인적 사항을 말씀드린 탓인지 문득 학비는 어떻게 마련하냐고 물으신다. 첫 등록금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미리 마련한 돈에 형이 도와주셨고 앞으로도 상당 부분 스스로 해결해야 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며칠이 지났다. "박 조교. 올해 재무관리 연습 개정판을 내려고 해요. 참고할 책을 몇 권 줄 테니까 아르바이트라고 여기고 새로 낼 문제 만들어 봐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책 두어 권과 봉투 하나를 내미신다. 자리로 돌아와서 열었다. 당시 한 학기 등록금의 절반 이상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그냥 주시면 내가 자존심이라도 상할까 봐 나름의 방안을 내셨을 것이다. 지금 떠올려도 당신이 베풀어주신 정말 고마운 배려이다.
후일담이지만 석사 1학기 말미에 심각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인사조직 과목 중 하나인 '조직행위론' 시험이 독특했다. 중간고사는 오픈 북, 기말고사는 주제를 던져 주고 각자 문제를 내서 답을 적어 오란다. 동기 이론, 목표 이론, 인지 부조화가 출제 범위였다. 경영학 석사과정에 다니면서도 미국식 경영학에 나름의 반감을 갖고 있던 차였다. 변증법적 인식론 하에 동기 이론과 목표 이론에 대한 어프로치를 하며 기존 이론이 갖는 의의와 한계를 정리해서 제출했다. 담당 교수님이 찾는다고 방 조교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뜸 물으신다. "아무개. 내게 불만 있어?"
태연하게 답한다.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왜 답안지를 이렇게 썼어? 무슨 의도야?"
"교수님께서 유학 추천장도 못 받으실 정도로 학교생활하시다 유학 가셔서 경영학 전공할 때 어떠셨나요?"
한참 답을 하지 않으신다. 그러다가 "내 방에 들어올 생각 있으면 지금이라도 잘 생각해보고 얘기해."
숫자도 좋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변적이고 뜬구름 잡는 것도 관심을 갖는 터라 인사조직이 급하게 당겼다. 그러나 홀로 타과 대학원에 입학한 외톨이이었을지 모를 나를 흔쾌히 받아 주시고 내 형편까지 티 나지 않게 챙겨주신 교수님께 전공을 바꿔 방을 옮기겠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내게는 배은망덕이었기 때문이다. 은사님과 연이 끊길 뻔한 유일한 일은 그렇게 유야무야 지나갔다.
교수님의 도움이 이 것만이 아니었다. 2학기부터 졸업 때까지 학부 교육조교를 하게 해 주셨다. 월급은 없지만 등록금 절반이 면제다. 이 뿐이 아니다. 지금의 금융투자협회 연수 교재로 교수님 책이 지정되자, 저서를 참고로 연수원 교재 초안을 작성하게 하셨다. 물론 협회가 지급하는 수당을 그대로 내게 주셨다. 이 외에도 틈틈이 석사과정 중에 생활비를 마련할 만한 일들을 주선해 주시곤 하셨다. 다행히 성적우수 장학금도 놓치지 않아 등록금과 생활비를 남의 도움 없이 대부분 마련하여 석사 2년을 쉼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만일 내가 지도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혹은 교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아 석사과정 중간에 휴학을 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을 하곤 한다. 아마도 지금의 내가 되기가 무척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베푸신 게 단지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도움에 그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신 삶의 표상이야말로 학교를 떠나 이십여 년 동안 나를 사회생활에서 부정직한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준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정년퇴임까지 33 년간의 후학 양성과 연구에 초지일관 매사에 진정으로 열성을 다해 임하셨다. 온화한 미소에 진실한 향기가 풍겨 나온다. 보직을 맡으시면 경영대학과 모교를 위해 사심 없이 활동하셨다. 퇴직하실 때 모교에 거액을 쾌척하셨다. 은퇴하시고는 수년간 재능기부 차 연변 과학대학 등에서 자비로 생활하면서 무보수 강의를 하시기도 했다. 일정 규모 이상으로 자산이 불어나면 요즘도 퇴직 시 쾌척하셨던 만큼 기부를 하신다.
교수님을 평생 뵈어서 그런지 신문지상에서 흔히 보는 대학교수들의 추문, 민낯이 믿어지지 않는다. 진한 꽃향기가 구린내 나는 추함마저 없애주는 것일까?
딱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 지근거리에서 평생 교수님을 뵈어 왔으면서 교수님과 같이 베풂의 삶을 살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이다. 말로는 주위를 둘러보고 살자면서도 행동에는 인색하다. 봉사활동도 잠시 하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은 지 꽤 오래.
'A good teacher is like a candle, it consumes itself to light the way for others.' - 무스타파 아타튀르크
'I am indebted to my father for living, but to my teacher for living well.' - 알렉산더 대왕
그다지 진실하지도 않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살아왔다는 자기만족에 그치지 말고 은사님이 조용히 걸으시며 남을 위해 자신을 밝히는 희생을 본받자는 다짐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진정 잘 사는 법을 몸소 보여주신 은사님께 진 빚을 갚고 싶다.
연말에 '굿라이프'를 보내 주신 깊은 속 뜻에 그간 태만히 살아왔던 내게 이런 각오를 다지게 해 주시려는 은사님의 깊은 헤아림이지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