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설 Nov 26. 2019

[서평,리뷰] 생쥐혁명

만화로 감상하는 마르크시즘


  자본주의 속성을 잘 묘사한 카툰이다. 공원 나무 그늘 아래서 한 시민이 쉬고 있다. 자본가가 톱과  망치로 나무를 잘라 목재를 다듬어 만든 그늘막을 멀쩡히 그늘 아래 쉬던 시민에게 판다. 톱과 망치라는 생산수단에 자신의 노동을 더해 그늘막 상품을 판 것이다. 가변자본인 노동과 불변자본인 생산수단이 더해져 상품이 탄생하여 화폐를 매개로 교환된다.  


  [생쥐혁명 : 만화로 만나는 마르크스]는 철학 전공인 대학생이 마르크시즘을 쉽고 재치 있게 그려낸  만화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이 한 권의 만화로 풀어냈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그녀는 전공수업에서  [공산당 선언]을 읽었던 경험을 떠올려 고전을 토대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복수 전공 프로그램에서 별 고민 없이 [공산당 선언]을 그려본 것이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였다고 얘기한다.


[생쥐혁명에 소개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서평단 모집 공고문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대학생이 마르크시즘을  만화로 그렸다는 호기심과 생경함이다.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화 형식으로 원작을 소개하는 요즘 출판계 동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마르크시즘을 만화로, 그것도 대학생이!'라는 낯선 기분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분량이 짧은 [공산당 선언]은 그렇다 치더라도 방대한 [자본론]을  어떻게 압축하여 그려냈을까?라는 호기심이었다.


  32년 전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카우츠키가 지은 [마르크스 자본론 해설] 번역서를 읽은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회과학 서적들을 틈틈이 봤던 터라 크게 무리 없었다. 어느 정도 기초가 닦여 그럭저럭 이해했다 여겼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부론] 완역본을 처음 읽었다. 머리에 쇠뭉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간 아담 스미스의 사상을 잘못 이해다는 인식의 짧음을 반성하였다. 자본주의의 주창자로 알려진 그의 사상적 견해에 오늘날 한국에서 소위 '빨갱이'로 몰릴 여지가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 자본론  해설]을 다시 들춰봤다. 역시 충격이었다. 원문 번역에 부 적확한 용어아마도 오역 듯한 문장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런 수준의  번역서를 읽으면서 나름 이해했다고 믿었단 말인가? 다시 한번 부끄러웠다. 제대로 번역된 자본론을 읽고 싶어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자본론]*을 구입하게 된 배경이다. 5 권 분량의 내용을 그녀가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풀어냈단 말인가?  의구심조차 일었다.

 *  [자본론] 완역본 5 권을 아직 읽지 않고 있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체력을 키운 후에 려고 서고에 꽂아 둔 채 봉인중이다. [자본론]을 독파하고 나서 노자, 주역과 마르크스 변증법적 인식론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은퇴 후 소망 중  하나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 걱정은 부질없었다. 이래서 나이 들수록 '필요 이상 걱정하는 꼰대'가 되나 싶었다. 5 권으로 구성된 [자본론]의 내용들을 자세히 그려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본론]에서 언급된 주요 개념들을 4 컷 형식의 짧은 분량이란 제약하에서도 거의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다. '자본의 축적'과정이 다소 에둘러 표현되었고 자본의 금융화와 초과이윤의 지대 전환을 설명하는, 어쩌면  [자본론]의 핵심 내용을 이해하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을 [자본론 3권-(하)]에 해당하는 부분생략했다.  꽤 훌륭하게  요약한 셈이다.


  이 책은 크게 두 개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서명과 같은 제목의 첫째 파트 '생쥐혁명'에서는  [공산당 선언]을 다룬다. 둘째 파트 '자본의 비밀을 찾아서'는 [자본론]을 소개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의 첫 구절은 너무나 강렬하고 유명하여다. 심심치 않게 인용되어 오히려 식상다. 원전은 4 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i)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ii) 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주의, iii)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헌, iv) 기존 여러 반대파에 공산주의자의 입장이다. 첫째 파트 '생쥐혁명'에서는 4 개 장으로 구성된 원전  중 주로 i)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 iii)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헌 부분을 설명한다. 먼저 계급투쟁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고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두 계급,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와 노동력을 공급하는 프롤레타리아를 언급한다. 후반부에서는 마르크스 등장 이전 19세기의  반동적 사회주의자와 같은 여러 유형의 비과학적 사회주의들을 분류한 후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과학적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원전의 나머지 파트인 i), iii) 장은 도해로써 간접적으로 짧게  묘사되었다.


  개인적으로 '생쥐혁명' 부분에서 꼽은 인상적인 카툰과 요약된 도해는 아래 사진과 같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선언'의 도입부를 어떻게 그렸을지 기대가 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던가? 첫 번째 카툰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는 너무 밋밋하고 평범하여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 나가다 보면 이 유령은 너무나도 친숙하게 카툰에 자주 등장한다. '선언'에서처럼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자본주의 생산 체제 내에 실재하는 존재임을 은연 중에 암시한 것이다. 분업으로 인한 노동과정과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를 밝힘으로써 노동자 계급이 게으르고 무지하기 때문에 빈곤하다는 오도된 이데올로기가 허구임을 적절하게 묘사하였다. 근대 유럽에서 태동한 사회계약론에 익숙할 독자들이 마르크스가  이해하는 '국가'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원전의 두 번째  장 '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사회를 도해한 그림으로 설명되고 있다.


[생쥐혁명 - 인상적인 카툰들]


  두 번째 파트인 '자본의 비밀을 찾아서'는 [자본론]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가치설, 자본축적론, 이윤율의 경험적 저하와 궁핍화 법칙, 공황론 등 핵심적인 개념을 간단명료하게 그려낸다. 방대하고 개념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낸 저자의 공력과 재치가 돋보인다. 이 파트는 '상품'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상품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구성되고 (교환)가치는 상품을 만드는데 그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측정다. 이 때 노동자의 노동이 사용가치를 만들어 내는 구체적인 유용노동과 (교환)가치를 형성하는 추상적 노동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을 밝힌다. 다음으로 오직 사회적으로 평균화된 추상적 노동시간만 상품의 가치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한편 '화폐'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화폐 가치척도로써 유통과 지불 수단이다.그런데  화폐가 생산과정에 직접 투입됨으로써 자본화하여 자본이 스스로 가치 증식하는 흐름을 그린다. 이 과정이 그 유명한 '자본으로 전환하는 화폐의 유통(M-C-M)'과 '자본이 가치 증식하는 일반 공식(M-C-M')'으로 대변되는 자본축적론이다. 이어 잉여가치와 잉여노동에 대한 개념을 소개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다. 노동자가 제공하게 되는 노동시간은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으로 구분된다. 필요노동시간이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재화들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뜻한다. 자본가들은 필요노동시간에 해당하는 임금만을 지불하기 때문에 필요노동시간 이상의 잉여노동시간으로부터 잉여가치를 얻게 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자본 축적의  비밀을 알 수 있다.


[자본 축적의 비밀]

 자본은 유통에서 생겨야 하는 동시에 유통의 외부에서 생겨야 한다. pp.158

자본이 증식되어  축적되는 비밀은 결국 상품이 유통되는 과정(C-M-C)과 노동력이 소비되어 잉여가치가 생산되는 과정(M-C-M')에 있음을  뜻한다.


 한편 자본은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나눌 수 있다. 불변자본은 생산수단을 구입하는데 투입된 자본이다. 가변자본은 노동력을 구입하는데 투입된 자본이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가 오직 가변자본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가정했다. 그의 견해를 따르자면 자본가들은 더 많은 상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불변자본을 끊임없이 확대할 것이다. 불변자본(C)와 가변자본(V)의 비율,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C/V)은 불변자본을  투입할수록 고도화될 것이고 총자본(C+V)과 가변자본의 비율인 이윤율[V/(C+V)]은 점점 낮아지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이 공식이 이윤율의 경험적 저하법칙이다. 자본이 고도화되어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공식에 따라 자본가들의 이윤율 저하불가피하다.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자본가들은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노동력을 줄이려 할 것이다. 실업은 산업예비군이 양산되고 임금이 물가에 비해 낮게 유지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생산력이 고도화될수록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들게 되어 높아진 상대적 잉여가치를 자본가에게 빼앗기게 되고 그나마 노동력을 팔 기회마저 빼앗기게 되어 더욱 궁핍해진다. 한편 막대하게 투입된 불변자본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상품이 과잉 공급되는데 반해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해고되거나 수입이 적어진  노동자들의 소비여력이 감소되는 모순이 발생하여 대공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결국 생산력의 발달로 인한 대공황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혁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됨을 설명한다.


[자본의 비밀을 찾아서 - 인상적인  카툰들]


  21세기 1인당 GDP 3만 불을 상회하는 한국에서 공산주의를 논하는 시대착오적다. 체제 경쟁에서 이미 현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패배다. 그러나 과연 지구 상에 출현했던 사회주의가 진정 마르크스가 웅변했던 과학적 사회주의 내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시대의 모순을 극복한 그것이었는지 되묻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만나지 못한 것일지  모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스마트시티와 유토피아'리뷰인 [우리가 꿈꾸는 미래 사회]를 참고하길 권한다. 인류가 목도하게 될 미래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필연적 모순이 해결된 체제가 출현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우리 사회 레드 콤플렉스가 극심하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무턱대고 적대시하거나 치유하지 못할 몹쓸 병적 존재로 치부한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회과학으로서의 접근조차 불온시한다. 한국적 환경의 제약에서 마르크스 이론이 기를 못쓰고 사멸하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마르크시즘을 소개하는 많은 책들이 절판되었다. 그나마 요즘 쉽게 설명하는 입문서들이 새로이 소개되고 있어 다행이지 싶었다. [생쥐혁명]은 이런 점에서 반다. 다행히 내용마저 충분히 소화시켜 만화로 풀어내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우리 사회가 적대적 이념이 아닌 인간과 노동의 소외로부터 휴머니즘을 되찾길 바란다. 또한 자본주의 폐단을  치유하 대안의 하나로써 사회주의를 양심적 사회과학으로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가 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설사 이 것이 불가능한  공상일지라도 체 게바라의 말대로 그 꿈을 꾸기를 희망한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


예스 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리뷰]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