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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Nov 30. 2019

[서평, 리뷰] 산티아고 가는 길

No Pain, No Glory

                                           

  예스 24 검색창에서 '산티아고'를 검색하면 국내 도서 중 103 권의 여행기가 뜬다. 순례길 여행을 소개하는 책들이 홍수를 이룰 정도다.  연초에 케이블 채널 tvN에서 [스페인 하숙]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3 명의 출연진이 '카미노 프랑스'길을 걷는 순례자를 대상으로 알베르게(순례객 대상 민박집)를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내용이다. 여행 관련 프로그램에 알베르게가 소개될 정도로 한국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행이다. 


  산티아고 여행기를 다룬 책들이 넘쳐 나는 요즘, 내가 굳이 김효선 작가가 쓴 [산티아고 가는  길]을 선택한 이유는 새빨간 표지에 새겨진 '카미노 프랑스'  경로가 주는 강렬한 첫인상에 있다. 7 월 무더위를 뚫고 아내와 문래동 창작촌을 찾은 적이 있다. 철강 유통점과 공구가게가 몰려있는 문래동 거리가 도심재생으로 새롭게 단장되고 있다. 젊은 예술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운치있게 변하자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거리로 탈바꿈한 지 꽤 된다. 한낮 땡볕도 피하고 아내 취미 중 하나인 가죽 공예를 구경할 겸 눈에 들어온 잡화점에 들어갔다. 아내가 눈여겨본 가죽 가방을 주인장에게 이리저리 물어보는 동안 가게에 진열된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이내 시선이 한 쪽으로 쏠린다. 빈티지 장식장 한 켠에 꽂혀 있는 시뻘건  책 한 권. 마치 '나를 꺼내 봐주세요' 애타게 부르는 착각이 일었다. 바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행여나 제목을 잊을까 서둘러 핸드폰에  메모했다. 수년 내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리라 마음먹은 탓에 꼭 읽자고 다짐했다. 8 월 처갓집에서 부모님들과 가족모임을 하였다. 올  생일 선물로 뭘 해줄까 물어보는 처제에게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사달라고 했다. 생일을 한참 기다린 끝에 이번 주에야 받게 되었다. '카미노  프랑스'길을 두 번은 걷고 남을 기다림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일종의 산문 사진집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필요한 여행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낭 꾸리기, 여정길에 유의해야 할 사항, 여행 중 묵기 좋은 시설이 괜찮은 알베르게  소개, 여정길에 가봄직한 현지 식당 등 순례길 경험자들의 지혜가 필요한다면 다른 여행기를 찾길 권한다. 이 책은 한국에서 순례길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저자가 누가 권하지도 않았을 2,400여 km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간 여정을 기록한 사진집이다. 화보 사이사이에 틈틈이 짤막하게 저자의 감상이 적혀 있다. 산티아고를 가보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거나 순례 계획이 있더라도 미리 고행의 느낌을 맛보고 싶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순례길이 불러일으켜 주는 감동과 아련한 여행의 갈망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내년에 아내와 스페인 여행을 갈 예정이다. 비행기는 이미 예약을 했고 숙소와 이동경로 등 상세한  여행 일정을 이번 겨우내 짤 예정이다. [이지유럽] 스페인편도 참고하고 이왕 가는 첫 스페인 여행길에 스페인 역사도 공부할 겸 [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도 읽으려고 한다. 두 번째로 스페인을 간다면 아마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  싶다. 


  문래동 창작촌의 한 가죽공예 잡화점에서 내 시선을 끌었던 [산티아고 가는 길]의 강렬한  표지. 만일 이 책이 푸른색이나 초록 색 등 다른 색깔로 표지를 썼다면 내가 꺼내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산티아고라는 글자가 주는 흥분에도  어쩌면 책 제목이 눈에 안 띄어 모른 채 넘어갔을 거 같다. 


  화보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책을 열면 가로로 펼쳐놓고 보게끔 디자인되어있다. 왼편으로 한 장씩  넘기면서 글을 읽고 사진을 감상하도록 편집되어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크게 4가지 경로로 나뉜다. 이 중 '카미노 프랑스' 800 km가  대표적인 코스이다. '카미노 델 노르테'는 관광명소인 북부 해안을 따라 걷는 여정으로 복잡한 휴가시즌은 피하는 게 낫다. '비아 델 라  플라타'는 1,000 km에 달해 4 코스 중 가장 거리가 길고 힘들다. 한여름은 피해야 한다. '카미노 포루투기스'는 포르투갈에서 시작하는 순례길이다. 훗날 나는 '카미노 프랑스'길을 걸을 계획이다. 


  '카미노 프랑스'로 명명된 코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 길은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된다. 출발하자마자 피레네 산맥을 넘는 여정이다. 초반 난이도가 상당히 있다. 산행을 종종 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코스이다. 뚜벅뚜벅 한  걸음씩 올라가다 보면 정상을 만나고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상에서 내려가야 할 길을 보는 상쾌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순례길이라 해서 우리네 시골길과 그리 정감이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국적인  풍광과 끝이 안 보일 평야를 걸으면서 어깨를 짓누르는 한 짐 배낭에 지쳐가는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아니, 생각조차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저 오늘 머무를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을 힘겹게 내딛을는지 모르겠다. 먼지 하나라도 내려놓고 싶을 고통에서 내가 얻고자 함이 무엇인지는 걸어봐야만 알 일이다.  


  비박이 가능한 장소에서는 알베르게를 이용하지 않고 비박을 하는 순례객들도 있다. 나도 일행이 있다면 도전하고 싶지만 홀로 간다면 비박은 언감생심일 게다. 혹여라도 비박하는 이들을 만난다면 "부엔 카미노" 인사를 건네며 응원해주련다.


  800여 km를 걸어서 도착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한없이 지친 여행객들을 담담히  맞아주는 대성당을 바라볼 때 어떤 마음일지 사뭇 궁금하다. 감격의 눈물은 아마도 다반사일 것이다. '콤포스텔라'는 스페인어로 '무덤'을 뜻한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12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데서 유래한다. 또 다르게는 '별이 빛나는 들판'이라는 의미도 있다. 한 수도사가 별이 빛나는 들판에서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버건디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부르고뉴로부터 걸어온 고행자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산티아고 캄포스텔라 대성당에서 순례 여정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산티아고에서 80 km 남짓 서쪽으로 더 걸아가면 유럽의 서쪽 땅끝 피니스테레를 만나게 된다. 순례객들 중에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서쪽 해안길에서 기도를 하고 셔츠와 양말 등 순례길에 입고 왔던 물품들을 불에 태우는 마치 종교의식과 같은 세리머니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을 알려주는 이정표. 저자는 이 곳까지 걸어온 후 기념으로 여행길을  함께 해 준 등산화를 예쁘게 꽃단장하여 찍었다.


  강렬한 스페인의 태양이 내려쬐는 길에서 한 자락 지팡이에 의지하여 순례길을 걷는 그녀는 무엇을  얻고 싶어 했던 것일까? 오늘날 산티아고 순례길은 신자들만이 떠나는 순례 여행이 아니다. 바쁜 일상에서 잃어버린 나를 되찾고 싶은 사람, 인생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한 걸음씩 앞을 걷고 싶은 이들처럼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고행을 하려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고즈넉하고 외로운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순례길에서 홀로 한가로이 걸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앞서거나 뒤쳐지는  순례객들을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가 고통을 느끼면서 걷는 여정이겠다. 그들 모두가 찾고 싶었던 실마리라도 찾기를 바라며 고통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 주는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를 기대한다.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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