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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Dec 01. 2019

드가와 함께 하는 파리 인상파 기행

클래식 클라우드 프리미엄 클래스 1주 차 강좌

           

  YES24  블로그에서 클래식 클라우드 프리미엄 클래스 강좌 초대권을 얻어 9/18일  아내와 광화문 스페이스 라온에 갔습니다. 6시 반 넘어  도착해서 여유가 있어 어둑어둑해지는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로마네스코 양식으로 지어진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담장 밖에서  둘러봤습니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스페이스 라온에 입장하여 차분하게 수강 준비를 하였습니다.


[스페이스 라온과  내부시설, 강연 전 소개방송]


  제가 신청한  강좌는 프랑스 인상파 드가입니다. 강사는 미술사가인 이연식 작가입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18년 9월부터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분야  인물을 정하고 이를 소개할 전문가가 현지답사한 결과물을 출간, 강연하는 인문학 강좌입니다. 드가 강좌는 13번째로 1년이 지나 다시 미술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알려진 대로  드가는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인상주의는 19세기 중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빛과 색에서 화가가 받는 주관적인 느낌, 즉 인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조입니다. 미술사조에 있어 근대미술 사조인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이전 작품들은 그림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주로 그리스, 로마 신화나 기독교를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들라 크루아와 존  에버렛이 그린 오필리아의 죽음은 햄릿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주의는 보편적 인물들을 사실대로 그리는 것에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쿠르베 돌깨는 사람은 석공의 노동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인상파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보면 이전 작품들과 사뭇 다릅니다.  그늘과 햇빛을 대비시켜 화가가 느낀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빛과 색을 대비시키는 이러한 화법은 당시 프랑스 미술계에서는 생소한  기법이었다고 합니다. 얼핏 무신경하게 세밀히 그리지 않은 듯하게 보입니다. 여인의 누드에 직접적 관심을 두지 않도록 천사, 아기들로 위장하지  않고 남성 바로 옆에서 나신을 드러내어 외설 논란에 휩싸여 혹평을 받게 됩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루아 - 에버렛 - 마네 - 쿠르베 작품]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의 인상파에 비판적 평론이 이어질 당시 프랑스 화풍을 대표한 작가들은 부그로 카바넬, 메소니에, 제롬 등입니다. 사진을 찍은 듯  정교하고 디테일하게 그린 작품들이 프랑스 살롱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당시 부그로는 가장 돈을 많이 번 화가라고 합니다. 부그로와 카바넬의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감상하면 디테일한 묘사가 상당히 사실적입니다. 이들 작품은 프랑스에서 큰 찬사를 받았지만 미국에서는 관객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비너스 주위의 천사, 아기들이 위장한 것을 프랑스 관객들은 용인하고 이해한 반면 미국 평단은 비너스 자체가 너무 사실적으로  나신이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시대를 살아도 문화환경이 다르면 호불호가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부그로 - 카바넬 - 르누아르 - 모네


  오늘날 현대  관람객들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는 쉽게 떠올려도 부그로, 카바넬은 생소합니다. 당시 천대받던 작품들은 오늘날 명화로 칭송받습니다. 이들이  묘사한 빛과 색의 인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반면 부그로처럼 메소니에, 제롬도 거의 잊힌 화가가 되었습니다.  나폴레옹 그림을 주로 그린 메소니에 작품을 보면 얼마나 디테일하고 역동적인가요. 제롬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현대 관람객들은 사진을  묘사한 정도의 느낌만을 받아 큰 감흥을 얻지  못합니다.  


[왼쪽 위부터  메소니에 - 제롬 - 다게르(사진)]


  인상주의가 출현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은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물감 튜브의 출현입니다. 이전에는 기름과 안료를 섞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실내에서  그렸다고 합니다. 튜브가 나오면서 화가들은 이젤을 들고 야외로 나가 빛과 햇살, 색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철도 발명입니다.  철도여행이 가능해지며 도시 교외로 나가 아름다운 풍경을 화가가 받은 인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사진 발명입니다. 초기 사진은  30분가량 정지된 상을 잡아야만 사진을 인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정된 사물이야 상관없지만 인물사진을 찍기 어려운 이유였습니다. 다게르  사진의 왼쪽 하단에 2명이 있습니다. 구두를 닦는 신사와 구두닦이라고 합니다. 한 포즈로 움직이지 않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같은 위치에  있었기에 처음으로 사진에 인물이 찍힌 사례라고 합니다. 19세기 후반 화가들은 사진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사진이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러나 화가들이 그린 인물화는 사진을 바탕으로 찍었다고 하니 아이러니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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