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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Dec 01. 2019

드가와 함께 하는 파리 인상파 기행 (2)

클래식 클라우드 프리미엄 클래스 강좌 2~3주 차

  다비드, 앵그르와 같은 고전주의 화가는 정교하고 치밀한 밑그림을  그린 후에 색을 덧칠하여 그림을 그렸다. 반면 들라 크루아 등의 낭만주의 화풍은 밑그림은 간략하게  그리지만 색을 중시하여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어서 심할 경우에는 정신이 산란하다. 한마디로 고전주의는 선, 낭만주의는 색을 중시했다.


[그림]  다비드, 앵그르, 들라  크루아, 드가 작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다비드 [나폴레옹  대관식], 2) 앵그르 [브롤리 공작부인], 3) 들라 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여신], 4) 드가 [자화상]


  드가는 특이한  화가이다. 인상주의이지만 앵그르 영향을 받아서 선을  중시하였다. 자신의 자화상에서 앵그르를 오마주 하려고 오른손에 물감 나이프를 쥔 포즈를 그렸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고전주의의 칼날 같은 화면 구분은 아니어도 윤곽선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드가는 초기에는 앵그르, 후반기에는 들라 크루아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계 이탈리아 은행가인 할아버지  덕분에 20대에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지만 유학에서 영향받은 바가  거의 없다. 이탈리아 유학 중에 사귄 귀스타브 모로가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모로는 주로 로마신화, 역사 소재를 그렸다. 드가는 초상화를 잘 그렸다. [벨렐리 가족의 초상]이나 [뾰로통한 얼굴]에서 등장인물 분위기가 묘하다. 화목하거나 조화롭지  못하고 불편한 관계처럼  보인다. 드가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소외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는 말과 발레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드가는 '자르기'의 대가였다. 승마나 발레 연습장면에서 대상 인물이나 사물을 온전하게 그리지  않고 과감하게 자른 채 묘사하였다. 그는 움직이는 장면을 그리기를 즐겼다. 초기에는 움직임과  동작을 쉽게 그릴 수 있는 장면을 주로 그렸다. 예를 들자면 풀을 먹거나  경기 전후 천천히 움직이는 말,  혹은 [발레교실]처럼 발레 연습 전후의 발레리나를  그렸다. 사진이 발명되고 나서야 말의 움직임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드가에게는 레옹이라는 아들이 있다. 그러나 레옹의 친아버지는 드가의 아버지였다고  알려진다. 아버지가 유명 법조인이어서 가문의 명예를 위해 드가의  아내 수잔과 아버지의 부적절한 관계를 밝히지 않고 양아들로 들였다고 한다. 아래 그림 [비누방울]과 [발코니]에 등장하는 인물이 드가의 양아들  레옹이다.


[그림] 드가  작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벨렐리 가족의 초상],  2) [뾰로통한 얼굴], 3) [경마장에서], 4) [발레교실]


  한편 마네는 드가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그는 스페인 화풍에 영향을 받아 검은색을 많이 썼고  입체감이 적은 평면적인 그림을 그렸다. [피리 부는 소년]을 보면 인물이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색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오페라 극장의 가면무도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그는 인물을 그릴 때 가장 어두운  부분과 가장 밝은 부분을 먼저 찾아내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됨을 여러 작품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드가가 시각효과, 균형과 중심, 역동성 등에 초첨을 두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한 반면  마네는 간결한 그림을 아름답다 여겼고 하나의 흐름에서 뭉뚱그려내는 구도를 선호하였다. 한편 마네는 나폴레옹 3세를 싫어하여 그를 조롱하는 [막시밀리안의 처형] 작품을 여러 버전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림] 마네  작품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1) [피리 부는 소년], 2) [오페라 극장의 가면무도회], 3)  [제비꽃 장식을 달고 있는 베르트 모르조], 4) [막시밀리안의 처형]


  마네는  베르트 모리조와 연인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를 사랑하여 그린 초상화가 [제비꽃 장식을 달고 있는 베르트  모리조]이다. 그녀 역시 마네를 사랑했으나 유부남인 마네와 이루질 수  없어 결국 마네 동생과 결혼하여 그의 곁에 머물렀다고 한다. 마네와 드가는 절친한 친구이자  경쟁관계였다. 사실 드가는 마네에게서 모티브를 많이 받은  편이다. 마네가 채택한 그림 소재를 드가가 나중에 채용하여 그림을  그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네는 드가를 한 수 아래로 여겼다고  한다. 둘 사이의 우정을 가른 사건은 다름 아닌 드가가 그린  마네 부부 초상화 때문이다. 드가가 그려준 초상화의 한 부분을 마네가 덧칠하여 화면을  잘라냈는데 마네 부인을 너무 사실적(?)으로 그린 탓에 분을 못 참아 저지른 행동이었다는 비화가  있다. 마네의 만행으로 둘 사이가  소원해지긴 했어도 예술에 대한 구도마저 외면할 수는 없었다. 마네 아들이 곤궁해지자 아버지 작품을 잘라내어 하나씩 팔았다. 드가는 그의 작품이  잘리고 찢긴 채 돌아다니는 것을 외면하지 못하여 하나씩 사들여 그림을 맞추어 복원하려고 했다. 아래의 [막시밀리안의 처형]은 드가가 사들인 작품들로 복원된  그림이다.


[그림]  마네와 드가  작품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1) 마네 [비누방울], 2)  드가 [마네부부], 3) 마네 [발코니], 4) 마네 [막시밀리안의 처형]


  우리가 두 눈으로 보는 전체  화면에서 초점을 한 곳에 둘 때 일부 장면에 집중하듯이, 화가에게 캔버스는 그가 초점을 맞춘 일부 장면의 작은  세계이다. 캔버스 안의 그림은 배경장면을 작가가 해석한 세계일  뿐이다. 여전히 캔버스 밖에는 훨씬 더 큰 공간이  존재한다. 캔버스에서 인물과 사물이 잘리는 화법은 화가가 화폭밖에  더 넓고 큰 세계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자른다는 것은 무언가를 가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화폭에서 잘려나간 장면은 대상을 가리고 드러내는  이슈이다. 전술한 대로 드가는 자르기의  명수였다. 화가마다 자르기 기법이 천양지차이다. 마네가 직관에 따라서 마음대로 잘랐다면 드가는 치밀한  계획하에 자르기를 하였다. 그는 그려내고자 하는 장면이 역동적으로 비칠 수 있도록  주로 잘린 대상을 캔버스 한 편에 몰아서 배치하였다. [경마], [경마장의 사륜마차], [에투알]에서 드가의 자르기 진면목을 맛볼 수  있다. 잘린 말들과  [에투알]에서 왼쪽 상단에 잘린 검은색 양복을 입은 신사를 보라! 한편, 여담으로 19세기 파리에서는 대부분의 발레리나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돈 많은 남자들이 보통 발레리나를 지원하였는데 대개 발레리나 주위에 그려진 양복 입은 신사들을 스폰서로 보면  된다.


[그림] 드가  작품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1) [경마장의 사륜마차],  2) [에투알], 3) [경마], 4) [페르랑드 서커스의 라라양]


  작품을 감상하는 데 시선도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드가의 [페르랑드 서커스의 라라양]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본다. 반대로 [에투알]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이다. 아래 그림에서  카유보트는 주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즉  발코니에서 거리를 바라보는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작품 안 등장인물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엇갈려 바라보는  장면도 재미있다. 르누아르의 [우산]에서 우산 쓴 여인을 바라보는 남성과 남성이 시선을  외면하듯 어린아이 쪽을 보는 우산 쓴 여인,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하지 않고 망원경으로 다른 곳을 쳐다보는  남자의 모습이 재미있다. 메리 커셋의 [오페라 극장에서]는 더 극적이다. 상복을 입은 여인이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쪽은 시선의  각도로 보아 무대가 아닌 다른 관람객일 거라 여겨진다. 저 멀리서 그런 그녀를 망원경으로 한 남성이 엿보고  있다. 르누아르는 초기에  모네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중기부터는 드가에 관심을 가져 질서를 추구하는 화풍으로 바뀌었다. 말년에 들어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현란하고  이상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는데 화가들이 노년에 시력이 급격히 약해진 결과라고 한다.  


[그림] 카유보트, 르누아르, 메리 커셋  작품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1) 카유보트 [발코니의  남자], 2) 르누아르 [우산 든 여인]. 3) 르누아르 [오페라 극장], 4) 메리 커셋 [오페라  극장에서]


  대상을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작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남자 화가가 그린 남성은 화면의 주인처럼 묘사되고 여자  모델의 경우는 훔쳐보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여성 화가가 그린 여성은 섹시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드가와 쉬잔 발라동이 그린 목욕하는 여인이  그러하다. 르누아르의 [부지발  무도회]에 그려진 여인이 바로 쉬잔 발라동이다. 아름다웠던 그녀는 파리 모든 화가들이 흠모한 여인이기도 했다. 한편 인상주의 화가들은  조르주 쇠라를 자신들의 동료로 인정하지 않았다. 드가가 인상주의 화가로 인정을 한 이후에야 그의 작품이  전시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림] 드가, 쉬잔 발라동,  르누아르, 조르주 쇠라 작품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1) 드가 [아침 목욕], 2)  쉬잔 발라동 [목욕하는 여인], 3) 르누아르 [부지발 무도회], 4) 조르주 쇠라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드가의 후기 작품은 붉고  강렬했다. 그의 후기 작품에서 마티스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드가와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를 강연한 이연식 작가는 드가를  알아야만 19세기 미술이 보인다고 강조하며 3번의 강의를 마무리하였다. 


[그림] 드가  [빗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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