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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Dec 04. 2019

[서평, 리뷰] 에이트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기

  현재 기술 수준으로 불확실한 미래 사회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구글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천재적 엔지니어링 이사인 레리 커즈와일은 지난 30년간 예측했던 147개의 미래 기술 중에서 무려 86%를 적중한 바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78%가량은 연도까지 맞추었다는 사실이다. 2020년 이후의 미래를 미래학자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2099년 타임라인까지의 미래 기술을 잠시 살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0NIUVzg7CRk

 [2020년~2099년 인류 타임라인  동영상]

  

  상당수의 미래학자들은 로봇, AI, 바이오테크놀로지가 고도로 발전하여 인류가 점차 유토피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노동의 질곡에서 헤어나 인류가 자아실현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낸다고 전망한다. 일하지 않고 기본소득만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우주여행이 일반화되며 마인드 업로드(뇌 복사)와 양자컴퓨팅이 가능해져 인간 지능보다 10억 배 우수한 인공지능이 출현하고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 위의 동영상은 인간과 AI, 안드로이드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 유토피아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반면 이 지성 작가는 미래사회가 디스토피아일 거라고 단정한다. 인류의 0.001%에 해당하는 인간 지성 플랫폼을 소유한 천재들과 0.002%의 인간 지성 플랫폼의 유명 스타들이 기업을 경영하는 법인격의 AI를 통제하고, AI가 나머지 99.997%의 프레카리아트-직업이  불안정한 저소득층-를 지배하는 사회가 출현한다는 비관적 견해에 동조한다. 저자는 인류가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인재가 될지, 아니면 인공지능에 지배를 받는 무기력한 인간이 될지 선택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천명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에이트]에서 독자들에게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고 거꾸로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나를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AI 발전 속도는 실로 경이롭다.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이겼던 알파고는 '알파고 리' 버전이다.  알파고 리는 데이터를 학습한 다음에 추론을 하였다. 2세대 알파고는 '알파고 마스터'이다. 마스터 버전은 학습과 추론을 동시에 한다. 세계 최강 커제 9단에 3연승, 프로기사에 60연승을 하였다. 3세대 알파고는 '알파고 제로'이다. 바둑 규칙만 배운 후 인간의 도움과 학습 없이 스스로 기력을  키웠다. 72시간 만에 '알파고 리'에 100연승 하였고 40일 후 '알파고 마스터'에 89승 11패를 거두었다. 알파고는 1940년대 인공지능 개념이 태동한 이후 80년이 채 되지 않아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던 바둑의 신이 되었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알파고 출현한 다음에야 뒤늦게 AI에 대한 관심을 가진데 반해 서양과 중국, 일본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AI와 미래 사회에 대한 준비를 해왔다고 일갈한다. 출발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대응책마저 허술하여 AI 선도국가들에게 종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AI 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혁신하는 와중에 정치권과 공무원들이 천하태평, 무관심하다고 개탄한다.  한국이 'AI의 갈라파고스'가 되어가는 현실에 애달픈 저자가 자진해서 미래예측과 AI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였다. 그 결과 인공지능이 미래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본문 곳곳에 토로한다. 흔히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로봇기술이 보편화될수록 단순노동의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저자는 다르게 말한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의사, 약사, 법률가, 회계사, 세무사, 공무원 같은 직업이 더 빠르게 인공 지능에 대체된다고 주장한다.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필요한 시기와 상황에 에러 없이 즉각적으로 끄집어내는 능력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을 따를 수 없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IBM의 인공지능 의사 '왓슨'의 암 진단 정확성이 인간 의사보다 훨씬  정확하거나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가 뉴욕 최고 변호사들이 며칠 동안 처리할 법률 업무를 단 몇 초만에 끝내는 사례를 보면 충분히 공감이 된다. 결국 고소득 전문직종의 90%가 AI에 대체되고 불과 10% 남짓의 우수한 인력들만이 AI를 통제하는 위치에서 자리를 지킬 것이라  예측한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일자리 수는 어느 정도일까? 학자들마다 견해 차이가 있지만 통상 2025년이 되면 전문직 대체율이 10~30%에 달하고 35년 즈음에는 30~50%, 45년 경에는 80~90%가 대체되리라 진단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2030년 공무원 중 민원 담당 50%, 경찰, 소방직 25%, 전문 직무직 25%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45년에는 각각 70%,  50%, 50%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내다봤다. 오늘날 민간 제조업 채용 건수가 줄고 있어 교육, 보건직과 자영업을 제외할 때 유일하게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무원 일자리가 이처럼 없어진다면 향후 한국 경제전망이 얼마나 어두울지 불 보듯 자명하다.


  이런 배경 하에 저자는 각자도생의 처방전을 내놓는다. 인공지능에 대체되어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한  유일한 해법은 바로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키우는 것에 있다고 일설 한다. 지식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인공지능의 지식과 학습량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같은 전문지식도 일정 수준 갖춰야겠지만 인공지능이 유일하게 인간 흉내를 내지 못할 능력이 인간 감정과 창의성이란 점에서 이 능력을 집중적으로 발달시켜야 한다는 주장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첨단 기업을 이끄는 오너들이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으로 인공지능을 지배하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에이트]는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8가지 방법을 뜻한다. 저자의  8가지 방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 융합적으로 사고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도와주어 자기 확신으로부터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문화체험과 봉사활동을 경험하여 인본주의의 윤리의식을 함양할 것을 주문한다. 현재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글로벌 IT 기업의 천재 오너들이 이런 교육방법을 자기 자녀들에게 적용한다고 일러준다. 교육하면 혹하는 한국의 학부모들이 꽤 솔깃할 일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읽는 내내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는 한국이 인공지능 연구에 뒤쳐져 선진국들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며 답답해한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해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한 입시교육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이제는 천재적 소양을 갖추라고 들이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으로부터 일자리가 없어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지배되지 않고 지배하기 위해서 각자도생의 방법으로 자녀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쌓게 하여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라고 강요한다면 과연 아이들이 저자의 바람대로 인간성을 갖춘 인재가 될 수 있을지 무척 회의적이다. 학생부 종합전형 사례와 유사하게 획일적인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길들여진 인재로 자라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그는 수없이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위를 딛고 올라 인공지능마저 뛰어넘을 만큼 충분히 경쟁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인간성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각자도생의 경쟁구도가 전제된 인재육성 방법이다. 


  물론 저자가 미래사회의 부정적 전망에서 이왕이면 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인공지능으로부터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조언하였을 것이라 믿는다. 또한 인공지능에 얽힌 무수한 일화와 페이지마다 빼곡히 소개되는 다양한 케이스에서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에 저자가 기울인 땀과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자의 노고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이래서 베스트 작가이고 필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보게 된 계기가 하나 더 있다. 그는 아베 수상이 대동아공영을 꿈꾼 외할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소망을 꿈꾸고 있음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일본이 군국주의를 꿈꾸고 있고 그들이 인공지능을 지배하게 되면 한국을 종속시킬 것이라고 단정하면서도 일본과 협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그가 지향하는 인문학이 과연 어떤 성격일까 매우 궁금하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제공하는 경험과 데이터를 학습하여 추론의 근거를 삼는다. 또한 인간이 코딩한 프레임 워크를 기반으로 처리한 데이터와 경험을 해석한다. 인간이 설정한 프레임 워크를 통해 인공지능의 속성을 좌우하고 있다. 언젠가 인공지능은 인류의 지성을 반드시 뛰어넘을 날이 올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류가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 외에 휴머니즘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수단으로 휴머니즘을 언급하지만 나는 휴머니즘이야말로 인공지능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줄 유일한 수단이자 최후의 근거라  믿는다. 인류에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로서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모든 연구과정의 밑바탕에 휴머니즘이 내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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