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아내가 10 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리프레시 겸 3개월 여정으로 영국 플리머스로 떠났습니다. 두 달은 어학연수, 한 달은 영국, 프랑스, 오스트라이, 스위스, 이탈리아를 둘러보는 일정이었습니다. 현지에서 홈스테이 할 때 주인 할머니가 키우던 페르시아 고양이에 마음이 갔는지 귀국한 다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간혹 얘기했었어요.
저는 고양이 얘기가 나오면 언제나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딱히 고양이나 반려 동물에 반감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단지 오디오를 즐기고 어디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신경을 쓸 일이 많아 불편할 거라는 이유였죠. 특히 애지중지하는 스피커가 반려 동물 발톱에 긁힐 상상을 하면 제게 상처가 난 양으로 몸서리를 칠 정도였어요. "고양이를 키울 바에는 차라리 소프트뱅크의 페퍼(로봇)를 들이자"라고 역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5 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우리 집에 반려 동물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작년, 평소 왕래가 잦고 친하게 지내는 동서네가 용인 쪽에 전원주택을 마련했습니다. 자연스레 주말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용인에서 쉬다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골 전원주택 마을에 길냥이들이 꽤 있습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처제가 어느 날부터 길냥이들에게 끼니를 주기 시작하여 정성을 다해 거두기 시작했어요. 어른 냥이어도 누군가와 싸워 다쳐서 오면 마음 아파하며 부랴부랴 약을 사서 사료에 섞여 먹이곤 합니다. 마음을 연 몇몇 아이들이 이내 거실 창문을 열어두면 들어와 놀다 갈 정도가 되었어요.
아내가 용인을 다니면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나 봅니다. 올 초에 마련한 가죽 공방을 위한 작업실 인근에도 유기묘들이 몇 마리 있는데 아내 작업실 근처에 자주 오니 마음이 더 쓰인 것 같습니다. 특히 작업실 문을 살짝 열어 놓을 때 먹이를 찾는 것이겠지만 애써 들어오려는 아기 고양이에 마음을 주기 시작했어요.
지난 4월 말 아내가 그간 숨겼던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1월 말쯤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부터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눈이 마주치는 어미 고양이가 있었대요. 원래 작업실의 뒤편 외진 곳에서 새끼 고양이 4 마리를 키우던 길냥이 어미래요. 작업실을 보러 아내와 같이 왔던 날에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저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미 고양이가 아내와 시선이 마주 칠 때마다 칭얼대며 울면서 담벼락을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겁니다. 며칠 이런 모습이 반복되자 아내가 담벼락을 가서 유심히 살폈더니 안타깝게도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싸늘하게 있더라는 겁니다. 너무 놀랐지만 지인에게 물어본 후 아이의 명복을 빌어주며 잘 보내줬다고 해요. 이런 얘기 끝에 아내에게 시선을 맞추는 아기 고양이가 작업실에 들어오면 거두어 집에서 키우고 싶다고 피력합니다. 몇 달을 끙끙 앓다가 힘들게 밝히는 아내에게 더 이상 고양이 입양을 반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묘연은 정말 따로 있나 봅니다. 고양이를 키우자는 공감대가 서자 아내가 이런저런 준비에 나섰습니다. 처제와 지인들에게 어린 길냥이를 거둘 의사를 밝히니 처제가 이대 근처 길냥이 구호소인 지구캣을 알려줬어요. 인스타에 얼마 전에 구조된 어린 길냥이 두 마리 사진을 보고 상담차 지구캣을 방문했습니다. 아이들 이름은 '천재'와 '키위'. 아내가 만났을 때 생후 2개월이 막 지난 새끼 고양이들입니다. '천재'는 주택가 지붕 위에서, '키위'는 고가도로 위에서 극적으로 구조되었답니다. 새침한 '천재'와 발랄한 '키위'가 한눈에 들어왔고 특히 '키위'는 바로 아내에게 안길 정도로 아내를 집사로 선택했다고 해요. 큰 고민 없이 '천재'와 '키위'를 데려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알레르기 검사와 꼭 필요한 숨숨집, 이동장, 사료, 화장실 등을 급하게 마련하여 5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첫날은 새로운 환경을 적응시키려고 방 하나만 개방해줬어요. 슬금슬금 눈치 보면서 조심스레 방 경치를 익혀나갔어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첫날은 아내가 방 문 밖에서 잤습니다.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올 때 조금이라도 놀라지 않게 하려고요. 확실히 아이들이 적응이 빠른 가 봅니다. 둘째 날에 거실까지 나와 제 영역으로 삼아 뛰어 놀기 시작합니다. 4일 차 월요일 밤에 안방 문을 오픈했어요. 아이들이 졸릴 시간이 되자 쫄래쫄래 침대 위에 올라오더니 꺼리김없이 같이 자는 겁니다. 새근새근 골골대며 자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죠.
아이들 이름을 짓느라 고민을 좀 했습니다. 처음에는 신의 가호로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에서 '신이'와 '까호'로 정해줬어요. 발음이 좀 애매하다고 이내 걱정 없이 살란 뜻에서 하쿠나 마타타를 차용하여 '하쿠'와 '타타'로 결정했습니다. 큰 아이 '천재'가 '하쿠', 둘째 '키위'가 '타타'입니다. 처음에 말 한마디도 하지 않던 '하쿠'가 저희를 식구이자 집사로 인정했는지 틈틈이 종알종알 칭얼댑니다. 그 모습이 너무 이뻐요. '타타'는 씩씩한 여장부이고요. '하쿠'와 '타타'가 언제나 행복하고 건강하게 저희 옆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서 저희가 행복을 느끼며 많은 위안을 받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