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 미 이프 유 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이 11.5억 원을 돌파했습니다(KB 리브온 부동산 월간 통계 7 월 기준). 작년 9 월 사상 처음 10억 원을 돌파한 이래로 놀라운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1 년 기준으로 무려 22 % 올랐습니다. 전국 시세는 더 가파릅니다. 전국 아파트 가격이 5.2억 원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25 %가 상승했습니다. 가히 전국이 부동산 열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급등하는 주택 가격에 임대료가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서울 아파트 전세 평균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27 % 오른 6.3억 원, 전국 기준으로도 25 % 상승한 3.2억 원을 찍었습니다. 매매 가격에 비해 전세 가격이 좀 더 올랐으나 대체로 비슷한 추세입니다.
이번 7 월 통계에서 아파트 매매 가격 대비 전세 보증금 비율이 55.5 %로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제가 작년에 주거 비용을 분석한 기고문에서 언급한 수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왜 누구나 할 거 없이 치솟는 임대 보증금 때문에 아비규환이라고 비명을 지를까요? 좀 더 세심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0 년 12 월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 가격 대비 전세 보증금 비율은 56.1%. 자세한 사항은 아래 글 참고]
https://brunch.co.kr/@ilichpak/23
서울 주거비용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일까? 2020.12.29
아래 [그림 1]은 2010 년 이후의 전세 보증금 상승률입니다. 2 년 주기로 전세가 갱신되는 점을 감안하여 2년 전 대비 상승폭을 그렸습니다. 금년 7 월 기준으로 2년 전에 비해 서울이 22 %, 전국이 15 % 올랐습니다. 미친 전셋값이라던 12 ~ 13 년에 비해 더 심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전세 보증금 비중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과 유사한 셈입니다. 이 정도면 이구동성으로 난리 칠 법하지 않은데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요?
[그림 1] 2 년 전 대비 월별 전세 보증금 상승률, 자료원 : KB은행 리브온 부동산 통계
지수화 되거나 평균 전세 가격에 비해 체감하는 전세 값이 폭등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첫째 절대 가격 효과입니다. 12 ~ 13 년 전세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를 당시,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 보증금 인상 폭이 대략 1억 원, 많아야 1.5 억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평균 전세 보증금 데이터 기준 금년 7월 전세 보증금은 2 년 전에 비해 1.7억 원 이상 올랐습니다. 상승률이 당시에 비해 적지만 임차인이 마련해야 할 실부담은 그 이상입니다. 둘째 통계적 착시효과입니다. 9 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임대차 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임차인이 원할 경우 보증금 5 % 이하 인상으로 2년 갱신이 의무화된 효과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동 법이 시행된 작년 8 월부터 집계된 전세 보증금 가격 데이터에는 계약 갱신 청구 효과가 포함되었습니다. 법 시행 이후 계약 갱신 청구 비율이 77%라고 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전세 계약을 체결한 임차인 중 77 % 는 5% 이내로 계약 갱신을 했고 23 % 의 임차인은 신규로 전세 계약을 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2년 전에 비해 전세 보증금이 평균 22 % 이상 올랐다는 거죠. 그렇다면 신규 전세 계약한 임차인들이 지불한 전세 보증금은 얼마일까요? 일차 방정식으로 풀면 아마 8.3억 원가량 일 것으로 추산됩니다. 2 년 전 대비 79 % 오른 수치입니다. 전국 아파트로 보면 3.57억 원, 48 %가 올랐겠군요.
[그림 2] 계약 갱신 청구 효과 반영 전 후의 전세 보증금 상승효과, 자료원 : KB은행 리브온 부동산 통계
서울에서 기존 전세 계약 갱신을 하지 못해 신규로 아파트 전세 계약 시 보증금이 8.3억 원이라면 2년 전 시세에서 3.7억 원이 더 필요합니다. 서울에 거주한 가구가 평균 1 년에 1,830만 원가량 자금을 모을 수 있는데요.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2년 새 오른 전세 보증금 차액을 마련키 위해서는 20 년을 저축해야 합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당연히 금융 기관에 모자란 금액을 더 빌리거나 아니면 일부를 월세로 전환해서 임대료를 내야 합니다. 모두 이자가 나가거나 월 임대료를 지출해야 하니 가계의 흑자 규모가 그만큼 축소되게 되는 것이고요.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계약 갱신 청구를 한 임차인들이 불통을 피해서 마음을 쓸어내리겠지만 2 년 뒤에는 전세 보증금의 폭탄을 그대로 떠안아야 합니다. 지금의 전세 가격이 급락하지 않는 이상 결코 폭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임차인의 거주 안정과 주거 비용 부담 완화라는 정책 목표로 개정한 임대차 보호법이 정작 주택 약자들에게 감당키 어려운 짐을 떠넘긴 꼴입니다.
사실상의 전세 가격이 서울 8.3억 원, 전국 3.6억 원이라면 앞서 말씀드린 매매 가격 대비 전세 보증금 비중도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실질 전세 값이 8.3억 원이라면 매매 가격 대비 전세 보증금 비중이 70%에 달합니다. 이 비중은 서울 집값이 하락하며 주거비용을 임차인에게 본격 전가시켰던 15 ~ 16 년 당시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5 년 전에 비하면 전세 보증금이 100 % 이상 오른 겁니다. '미친'을 뛰어넘는 '폭등'이겠습니다.
[그림 3] 서울 아파트의 갱신되는 실질 전세 보증금 비중, 자료원 : KB은행 리브온 부동산 통계
이제 정책 효과가 예상과 반대로 작용한 원인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지만 분석한 입장에서 보면 부동산 시장의 특성을 경시했고 소유와 임대에 대한 규제 정책의 충돌을 간과한 결과라는 판단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증권 시장은 거래량이 매우 활발합니다. 연간 회전율이 적게는 100 % 내외, 많게는 200 %를 웃돕니다. 1 년에 매매를 한 번 내지 두 번 하는 꼴입니다. 주택 시장은 증권 시장과 상당히 다릅니다. 주거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주택을 사고파는 빈도가 매우 낮습니다.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한 임차한 주택을 쉽게 옮기려 하지 않습니다. 거래량이 적은 것에는 각종 세금과 중개 수수료 비용이 높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되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택 임대 시장은 어느 정도 규모일까요? 결론적으로 전국과 서울 지역 모두 대동소이합니다. 아무래도 임대료가 비싼 서울이 관심이겠죠? 서울을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서울에 보급된 주택은 총 295만 호입니다. 이를 190만 가구가 소유 중입니다. 전체 가구에서 주택을 소유한 가구 비중이 49 % 입니다. 대략 절반 이하의 가구가 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1 주택을 소유한 가구가 137만 가구입니다. 2 채 이상 다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53만 가구로 대략 158만 호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주택 가구는 평균 3 채를 보유 중입니다.
이제 매년 매물로 나올 전월세 임대 물량을 추정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가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1 주택을 보유한 가구가 실거주하는 비율을 85 %로 잡았습니다. 교육이나 주거 환경 등을 이유로 자기 집을 전세 주고 전세로 사는 가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구는 평균 수명과 연령대별 인구 분포를 고려했습니다. 10 대를 자녀로 둔 가정을 포함하여 15 %라고 가정했습니다. 둘째 다주택 소유주들이 실거주용 1 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임대로 둔다고 보았습니다. 각종 유형의 임대 사업자들이 등록한 주택이 다주택 가구의 1/3을 차지합니다. 이들 물량의 임대 기간을 최소 5 년 이상으로 가정했습니다. 셋째 평균 전세 계약 만기를 고려했습니다. 우선 자가 주택을 전세 놓고 세 들어 사는 임대 가구가 20만 호입니다. 이 가구들은 2 년에 한 번 전세가 만기 되므로 연간 10만 호의 수요가 발생하게 됩니다. 장기 임대로 분류된 52.6만 호의 경우는 갱신 주기를 5 년으로 가정했으니 연간 대략 11만 호의 갱신 수요가 있게 됩니다. 2 년 만기의 전월세 임대 가구도 52.6만 호 정도일 텐데요. 계약 기간 2 년을 고려하니 연간 갱신 수요가 26만 호로 추산됩니다. 모두 합치면 서울에 있는 주택 295만 호 중에서 매년 전월세 시장으로 출회되는 물량은 전체 가구의 16 % 인 47만 호에 불과합니다. 전국 기준으로도 비슷합니다. 매년 전체 주택의 16 % 정도가 임대 시장에 나오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림 4] 연간 전월세 수요 추정(전국, 서울), 자료원 : 통계청 주택 소유 현황 통계
앞서 증시 회전율이 100%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증권 시장에 상장된 모든 증권이 1 년에 평균적으로 1 회전 이상을 하는 셈입니다. 위의 추정에 따르면 주택 시장의 임대 회전율이 16% 밖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2년 계약 갱신 청구권이 발효되자 이들 46만 호의 77%가 수면 아래로 잠기게 되었습니다. 임대 시장에 공급 가능한 수량이 사실상 10.8만 호로 급감한 것입니다. 물론 계약 갱신 조항이 적용된 임대 주택도 실질적으로 수요를 흡수한 공급 물량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신규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비탄력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장기 임대 물량에서 발생했습니다. 15 년 전세 가격이 재차 급등하자 박 근혜 정부와 문 재인 정부가 전세 가격 안정의 일환으로 임대 사업자에게 갖은 혜택을 주었습니다. 그 대신 임대 사업자들이 사업자 등록 기간 중에 계약을 갱신할 경우 5 % 이내로 임대료를 올리도록 규제하였습니다. 17 년부터 전세 가격이 안정된 이면에는 장기 임대 사업자 효과가 매우 큽니다. 투기 규제 일환으로 작년에 임대 사업자에 대한 혜택을 거의 철회하였으나 장기 임대 물량이 실제 시장에 출회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요합니다. 이처럼 시장에 공급 물량이 실질적으로 줄어든 사실을 간과한 채 정부가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방안으로 신축 아파트와 재건축이 예정된 아파트 보유자의 2 년 거주 의무 규제안을 추가로 부과했습니다. 임대 물량 공급에 또 한 차례 적지 않은 충격 요인이 발생한 겁니다. 전세 물량 부족으로 매물벽이 얇은 상황에서는 한 두 건 높게 체결된 가격이 주변 호가를 끌어올려 시장 가격으로 고착되는 국면입니다.
다음으로 KB 리브온 부동산 통계에서 평균화된 전세 보증금이 아닌 실제 신규 계약 시 지불해야 하는 시장 가격이 주는 경제적 부담을 논의하겠습니다. 앞서 실제 추정되는 서울의 평균 전세 가격이 8.3억 원이라고 했습니다. 매매 가격의 70 % 수준인데요. 가정을 조금 완화하여 서울 지역은 일률적으로 65 %로 잡았고 전국은 전세 가격에 따라 65 % ~ 75 %로 편차를 두어 분석했습니다. 먼저 분위별 평균 전셋값을 보겠습니다. 서울의 전세 3 분위(하위 40% ~ 60 %)의 평균 전세 보증금이 5.8억 원입니다. 그러나 계약 갱신 효과를 제거할 경우 최소 6.9억 원 이상일 걸로 추산됩니다. KB 시세에 비해 1.1억 원이 더 높습니다. 이런 차이는 전세 보증금이 높은 아파트일수록 격차가 더 심해집니다. 4 분위 아파트는 9.1억 원으로 차이가 1.9억 원으로 확대되고 5 분위 아파트는 실세 가격이 14억으로 무려 3.1억 원이 차이나는 실정입니다. 전국 아파트들도 실세 가격이 더 높지만 서울에 비해 격차가 크지 않아 덜 부담스러운 수준입니다.
[그림 5] KB은행 리브온 부동산 전세 보증금과 추정 실질 전세 보증금(전국, 서울), 2021 년 7 월 기준
실질 전세 가격이 2 년 만에 70% 이상 오르면 가계에는 얼마나 부담이 될까요? 꼼꼼하게 분석해야 할 이슈입니다. 서울의 가구당 소득 수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상위 계층인 5 분위 가구는 연간 1.34억 원의 소득을 얻습니다. 차상위인 4 분위 가구가 8천만 원을, 그다음 3 분위 가구가 5,800만 원의 연소득을 올립니다. 4 분위 가구는 연간 4,100만 원의 수입에 그치고 최하위 계층인 1 분위 가구 소득은 2,000만 원에 불과합니다. 이런 소득 수준에서 전세 보증금이 1억 원 이상 오른다면 가계의 경제적 부담이 적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인상된 전세 보증금을 마려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모아놓은 예금 등의 금융 자산을 헐어 메꾸거나 금융 기관에서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거나 이도 저도 힘들다면 모자란 보증금을 월세로 돌려 지불해야 합니다. 이 모두 이자 소득이 줄거나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현재 전월세 전환율이 3.6 % 입니다. 전세 보증금 1억 원 당 월세 30만 원으로 셈하는 것이죠. 위에서 추정한 실질 전세 시세를 월세로 치환하여 가구 소득과 비교하면 월세 비용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구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 6]에 소득 대비 임대료(PIR)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서울 주거비용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일까?'에서 2020 년 말의 전세 보증금 PIR을 계산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가구는 자기 소득에서 적게는 28 %, 많게는 33 %를 임대 비용으로 지불한다는 분석이었습니다. 30 % 의 PIR은 국제적으로 평균에 근접하는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추정한 실질 보증금으로 다시 계산해보니 결과가 충격적입니다. 최상위 가구의 PIR이 38 % 입니다. 3 분위 이하 가구들의 경우는 40 %를 상회하는 걸로 나옵니다. 7개월 만에 PIR이 10 % p 이상 올랐습니다. 소득의 40 % 가량을 주거 비용으로 충당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그림 6] 2020 년 말, 2021년 7 월 전세 PIR, 자료원 : KB은행 리브온 부동산 통계 재구성
19 년 7 월 당시의 서울 지역 전세 보증금에서 오른 차액을 연 3.5 % 의 금리로 이자를 낸다고 가정할 경우 가구당 적게는 446 만원(1 분위 소득 계층)에서 많게는 2,186만 원(5 분위 소득 계층)의 비용이 늘었습니다. 비례하여 가계 재정에는 그만큼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이자를 제외한 다른 소비 지출을 그대로 유지하면 5 분위 가구를 제외한 모든 가구가 적자로 돌아 섭니다. 소득이 가장 많은 5 분위 가구만이 원리금 상환 이후에도 연간 1,050만 원의 흑자를 기록하는 걸로 예측됩니다. 물론 상환된 원금만큼 가구의 부가 늘었나지만 당장의 현금 밸런스가 무너지게 되니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림 7] 실질 전세금 상승에 따른 원리금 부담 규모와 현금 여력, 자료원 : 통계청 통계 재구성
대출 원금 상환분을 제외하면 서울의 흑자 계층이 3 분위까지 늘어납니다. 5 분위, 4 분위, 3 분위 가구의 연간 흑자 규모는 각각 3,051만 원, 782만 원, 556만 원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늘어난 전세 보증금이 1억 원에서 3억 원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십시오. 이 정도의 가계 흑자로 내년, 내후년 전세 보증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전체 주택의 16 %에 불과한 전세 물량이 51 % 의 무주택 가구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웩 더 도그'입니다. 이러한 불행은 과연 누가 만들었으며 누구의 책임입니까? 저는 정부의 정책 실패와 관료의 무사안일 보신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근간인 건전한 이기심의 일탈이라는 삼위일체로 보고 싶습니다. 정부는 4 년 내내 오르는 집값에 당황한 나머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장기임대 사업자가 늘어난 점을 간과한 채 계약 갱신 청구권과 신축 아파트와 재건축 예정 아파트 2년 실거주 규제를 강행한 부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재부와 국교부 관료들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주택 정책 수립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능력 있는 관료들이 정부 정책이 야기할 부작용을 충분히 알 법한데도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을 얼마큼 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대통령이 해당 주무부서 장관을 임명하고 장관이 담당 부처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무시하자는 건 아닙니다. 자기의 임면권을 틀어쥔 장관에 반대 의사를 표현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보신주의에 빠져 시간만 지나기를 바라고 뻔히 틀릴 줄 알면서도 원하는 답만 보여주는 공무원이 과연 우리 사회에 필요하겠습니까?
아울러 임대를 놓는 다주택 소유자의 과도한 욕심에도 쓴소리를 해주고 싶습니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건전한 이기심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규 계약 시 앞으로 4 년간 5% 이상 올리지 못할 부분과 재산세와 보유세 증가분까지 감안하여 차입자에게 그 이상으로 전가했던 건 아닌가 합니다. 시장은 언제나 균형점으로 되돌아오려는 자정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구 소득이라는 펀더멘탈을 뛰어넘는 과도한 주거 비용은 언젠가 독이 되어 임대 시장과 국내 경제에 되돌아올 겁니다. 미국은 1970 년 이후로 10 년에 한 번 꼴로 주택 시장이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주택 시장의 불패 신화가 막바지에 이르는 국면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공급 부족이란 미명으로 주택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문제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아파트 가격을 금융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한 이를 수요 할 수 있는 소득 여력을 갖춘 잠재 구매자들이 점차 고갈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금년 1 분기말 국내 가계의 금융 부채가 2,103조 원에 달합니다. 이중 금융권에서 차입한 대출금은 1,846조 원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가 대략 2.9%입니다. 우리나라 가계가 연간 54조 원의 이자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IMF 이후 이후 우리 경제는 3 차례의 경기 불황을 겪었습니다. 모두가 가계의 이자 부담이 국민 계정의 가계 피용자 보수의 7 %를 넘어설 때 발생했습니다. 현재 이 비율이 4.7 % 입니다. 만일 현 대출 금리에서 1.6 % p만 오르면 위기 당시 때의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수준으로 상승하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수많은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이 피해를 겪는 지금, 한국은행이 연내 2차례 금리 인상을 시사했습니다. 현재 실세 금리는 한은의 금리 인상을 어느 정도 선반영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다면 은행들 역시 대출 금리를 조금씩 더 올릴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그림 8] 국민 소득 계정상의 가계 이자부담, 자료원 - 한국은행 통계
우리나라 가계가 지닌 금융 자산이 무려 4,646조 원입니다. 금융 부채가 많다고 다들 난리지만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 2,500 조 원이 넘습니다. 다만 폭등한 집값과 천정부지로 치솟은 임대비용으로 매년 원리금 상환 후 가계 수지가 적자 전환할 정도로 부담이 커진 상황입니다. 기업으로 따지면 자기 자본이 튼튼한 우량 기업인데 업황이 나빠져 적자로 돌아선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해법은 두 가지입니다. 소득을 늘리거나 부채를 구조 조정해야 합니다. 글로벌 경기가 저성장 모드로 돌아선 지 오래이고 일자리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소득을 늘리는 정책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답은 자산과 부채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주택자를 포함하여 시장에 거래를 일으킬 수 있는 충분한 매물이 공급되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더 이상 주거비용이 오른다면 나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 모두가 고통받는 불행한 시기가 올 것입니다. 파국을 피하고 파레토 최적을 이루는 정책 수립이 가능하게끔 모두가 한 걸음씩 양보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