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몽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설 Sep 07. 2021

3전 4기 북한강 자전거길 115 km 라이딩

자전거 명언과 함께 떠나는 초가을 자전거 기행기

  '비가 그친 내일, 경춘 북한강 자전거길 종주를 떠나자.'

  

  사실 지난 4 일에 친구와 남한강 라이딩을 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전주 월요일, 친구로부터 그 전 주말에 무리하게 라이딩을 하여 무릎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의하여 일정을 10 월로 미뤘. 선약취소되었지만 혼자 가볍게 한강을 달리거나 남산 혹은 암사고개 업힐 훈련을 할 요량이었다. 2 주에 걸쳐 이어진 태풍과 늦여름 장마에 쨍한 햇살이 너무 그리웠나 보다. 금요일 눈이 시리도록 화창한 출근길에 문득 춘천 - 서울 라이딩을 해야겠다는 충동이 불현듯 일었다. 이런 유혹엔 또 쉽게 빠지는 성격이다. 오전 업무 준비를 마치자마자 냉큼 코레일톡 앱을 열었다. 주저 없이 9 월 4 일 ITX 청춘열차 6 시 15 분 첫차 1호실 자전거 전용칸을 예매했다.


  '예약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쉽네.'


  너무나 수월하게 예약되어 선뜩 실감 나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다 의심스러워 'ITX 청춘열차 자전거 칸 예약'을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자전거 칸은 1 ~ 4번 좌석만 해당됨을 뒤늦게 알았다. 1 호차 좌석을 예매하고 선착순으로 자전거를 실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1 호차 맨 앞에 표시된 자전거 칸이미 매진다.  그러고 보니 아내에게 토요일 북한강 자전거길 라이딩을 하겠다는 양해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아쉬움을 삼키며 예약을 취소했다.


  그래도 다음 날 하루 종일 북한강을 달릴 희망이 가시질 않았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에게 4 일 친구와 약속이 취소된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리곤 혼자라도 북한강 종주를 하고 싶다고 넌지시 물었다. 흔쾌히 다녀오란다. 그 자리에서 청춘열차를 다시 예약했다. 다음 날 한나절 집을 비우는 부담에 하쿠, 타타와 한바탕 놀아주고 나서 라이딩 준비에 나섰다. 먼지가 쌓여 광택을 잃은 바디 프레임과 휠을 물티슈로 구석구석 닦아 냈다. 타이어 공기압도 가득 채웠다. 체인에 윤활제를 바르고 예비 타이어와 멀티 공구 셋을 담은 수납통을 챙겼다. 자전거 배낭엔 휴대용 비상 펌프와 국토종주 자전거 여권을 담았다. 자전거 여권 모바일 앱을 깔았지만 혹시나 해서였다.


  토요일 오전 4 시 반에 일어났다. 새벽에 하쿠, 타타에게 이른 아침을 준 다음 사냥 놀이를 했다. 미안한 마음이 좀 가신다. 어느새 짙은 어둠이 물러났다. 5 시 50 분이 넘었다. 여유를 부리다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졌다. 서둘러 용산역으로 출발했다. 그리 속도를 높이지 않았는데도  분도 되지 않아 역사에 도착했다. 1 호실 자전거 칸들어서니 한 자리가 비어 있다. 예약자가 아직 도착 안 했겠거니  창문과 빈자리 사이에 조심스 거치했다. 어라! 열차가 출발하는데도 자전거 전용 좌석 한 자리가 여전히 빈 채로 남았다.


'청량리 역에서 타려나?' 예약을 취소한 건지 알 수 없어 선뜻 빈자리에 자전거를 옮기기 주저되었다. 결국 춘천까지 자리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내 자전거는 빈자리 옆에 잘 적재되어 종착역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ITX 청춘열차에서 내다 본 시골 정경. 쨍한 햇살에 이번 일정이 기대된다.


  춘천역에서 신매대교 인증센터로 몸 풀 겸 천천히 달렸다. 수년 전에 이번과 똑같은 코스로 라이딩한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을 더듬으며 주위 경관을 둘러보면서 여유 있게 페달을 밟았다. 소양강 스카이워크를 지나 소양강 처녀상이 눈길을 끌었다. 이제 달리기 시작하면 쉴 때 말고는 사진 찍을 여유가 없을 거라 여겨 익숙지 않은 셀카를 찍고 예쁜 강변을 스마트 폰에 담았다.


소양강 처녀상과 소양 2교에서 바라본 스카이 워크 주변 경관


  사실 북한강 자전거 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세 차례 경험했다. 그중 한 번은 북한강 자전거 길을 종주다. 그러나 내게는  번의 라이딩이 완주를 하지 못한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북한강 자전거 코스는 양평 운길산역 두물머리 밝은 광장에서 신매대교까지를 일컫는다. 첫 시도는 반포에서 춘천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업계 후배들과 함께 다. 아쉽게도 일부가 힘들어하여 경강교에서 멈춘 후 가평역에서 서울로 회귀해야만 했다. 두 번째 북한강 라이딩 코스가 이번과 동일했다. 동반자 중 후배가 MTB로 무리하게 달린 끝에 퍼져 운길산역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비록 공식 북한강 자전거길을 종주했으나 당초 계획했던 반포까지 마치지 못했다. 서울 - 춘천 종주실패한 것이다.  세 번째는 당초 종주가 목표가 아니었다. 동네 산악회에서 대성리로 야유회를 떠났다. 회원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출발했고 나 홀로 대성리까지 라이딩을 했다. 그러나 이전 두 차례에 비해 힘들어서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번엔 꼭 서울 - 춘천 종주를 하지는 각오가 남다른 이유이다.


  무난한 출발에 기분이 상큼했다. 전날 챙긴 자전거 여권에는 이미 북한강 자전거길 인증 도장이 다 찍혀 있었다. 오늘은 모바일 앱으로 인증하기로 계획했다. 신매대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앱을 실행하여 QR코드를 촬영하는데도 인증이 되질 않는다. 수차례 시도해도 내내 인식 실패! 정부가 만드는 앱은 다 이렇지 하며 여권을 꺼내 들고 도장을 찍었다. 인증센터마다 2번씩 도장을 찍으면 되지 하는 마음에서다. 의암호 데크길가 지난번보다 고르지 못한 것 같다. 요철을 넘듯 덜컹거려 천천히 달린다. 새벽에 콘프레이크로 허기를 달래고 신매대교에서 영양바 하나 먹은 게 전부다. 의암 직전에 막국수 집이 보였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고민 없이  멈췄다. 자전거길 인근 식당치고 비빔 막국수가 제법 맛있다. 모닝커피는 대성리에서 하자는 생각에 다시 길을 나섰다.    

   

신매대교 인증센터와 의암호 전경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 아인쉬타인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쪽으로 흐른다. 자연의 법칙이자 이번 종주를 춘천에서 시작한 연유이다. 100 km 넘는 주행을 한 지 벌써 5, 6 년 전이다. 올해 8 월에서야 2 년 만에 라이딩을 다시 시작했다. 재개 후 5번을 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50 km를 넘긴 적이 없어 장거리를 뛸 몸이 채 다듬어지지 않았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하행 코스는 체감되지 않더라도 완만한 오르막이다. 아직 무리라 판단했다. 반면 상행이라면 가능하리라 여겼다. 한창때에 비해서 속도가 낮겠지만 그래도 평속 22 ~ 23 km 정도를 기대했다.


  역시 계획대로 순탄한 인생은 없는 법이다. 강촌을 지나면서 왼쪽 무릎인대가 살짝 아파온다. 심각한 통증이 아니지만 신경 쓰이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클릿 슈즈로 롤링하지 않고 운동화로 밟아댄 영향 같다. 혼자 떠나는 장거리 라이딩. 돌발 상황이 걱정되어 감히 클릿 슈즈를 신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겨우 1/4 밖에 지나지 않아 덜컥 걱정이 앞섰다. 자연스레 왼발에 힘을 덜 주고 오른 다리에 부하를 더 실는다. 새가 좌우 날개로 날 듯 자전거도 양쪽 다리에 동일한 힘을 줘야 비틀거리지 않고 나갈 수 있다. 한쪽 편에 힘을 더 주면 앞으로 나갈 순 있어도 직진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설상가상 나도 모르게 오른쪽 허벅지에 데미지가 쌓여 갔다.


  매 한 시간 달리고 잠시 숨 고르며 대성리에서 제대로 휴식을 하려던 계획을 바꿨다. 가평 색현 터널까지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다지 힘들지 않았으나 오른 허벅지에 살짝 긴장감을 느꼈다. 조금 더 무리하면 경련이 일어날지 모른다. 스프라켓 기어를 더 내리고 속도를 줄였다. 색현 터널에서 가평역까지는 내리막에 평지가 펼쳐진다. 힘들이지 않고 경강교를 지나 가평 인증센터 옆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왼 무릎이 아파 오른편 다리에 힘을 준 부작용이 우리네 정치와 비슷하다. 진보와 보수가 주거니 받거니 격렬한 생사투를 서슴지 않는다. 마치 내일이 없고 오늘만 존재하는 무한 대결이다. 양보와 타협이라는 미덕이 사라진 지 오래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혐오만 남았다. 중도층은 미래에 대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대안보다는 당장의 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실정이다. 집권 기간인 5 년이 아닌 100 년 대계를 위한 국가 정책이 매우 아쉽다. 유럽 정치 이념의 잣대로 평가하자면 한국의 진보는 중도 우파에 근접한 우파일 뿐이다. 우리네 보수는 극우에 더 가깝다. 결국 본질은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다. 정권을 오래 잡아 왔던 극우와 이제 집권 15 년을 목전에 둔 중도 우파 간의 정권 쟁탈전이다. 진보라 불리는 현 집권층은 무능하다는 세평을 넘지 못한 채 도덕성이라는 명분마저 잃고 있다. 보수는 여전히 극우에 가까운 구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진영도 시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대안을 준비하고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꼴사나운 정쟁으로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내 처지와 유사하다는 생각에 무거운 심정으로 길을 나선다. 진정 균형 잡히고 희망을 주는 정치는 불가능한 것일까?

 

강촌에서 춘천을 바라본 풍경, 경강교 인증센터




신은 인간이 힘든 인생길에서 수고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도구로 자전거를 만들었다.
- 아인쉬타인


  그래도 커피볶는 남자에서 재 충하여 컨디션이 조금 돌아왔다. 아무래도 카페인에 몸이 각성한 효과겠다. 청평 인근을 지날 무렵이다. 여권과 자전거 지도에 나오지 않은 곳인데 갑자기 빨간색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청평 생태공원 플랫폼 인증센터란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여권에 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자전거에 다시 올라 좀 더 앞으로 달려갔다. 저 앞 쉼터에서 일단의 라이더 무리가 몰려 있다. 얼핏 동료를 찍어주던 라이더가 강 건너 배경이 기막히게 잘 나왔다는 말이 들렸다. 바로 브레이크를 잡고 서둘러 사진 한 장 담았다. 전혀 예상치 않은 솔찮은 재미였다. 야연 터널 직전 경사가 완만한 길임에도 점차 다리가 무거워갔다. 샛터 삼거리 인증센터에서 다시 멈췄다. 아직 막국수와 커피가 소화될 시간이 아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햇볕이 점차 따가워졌다. 스포츠 이온 음료로 미리 염분과 미네랄을 보충했다.


  대성리 구간은 상당한 거리를 강변이 아닌 자동차 도로 옆을 지난다. 토요일 점심시간이어서 경치 좋은 곳에 입지 한 식당과 카페로 진입하는 승용차를 조심해야 한다. 거기에 평소에는 문제가 안되지만 지금 상태론 다소 부담스러운 업힐 구간이 중간중간 있다. 조금씩 힘에 부친만큼 더 용을 써야 했다. 자동차 도로에 맞닿은 길을 막 벗어나자 20여 미터 남짓의 다소 급한 오르막이 펼쳐진다. 스프라켓 기어를 끝까지 내리고 크랭크 기어를 아우터에서 이너로 변속해도 허벅지 부하가 상당했다. 바로 하차하여 다리를 주무르며 끌바로 올라갔다. 조금 걸으니 참을 만하여 재차 페달을 밟았다. 이런! 크랭크 기어가 아우터로 변속되지 않는다. 여러 차례 조작해도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쳐지는 몸에 엎친데 덮친 격이다. 서종대교를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덕 정상 부근 정자에 꽤 많은 이들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다. 잠시라도 다리를 풀고 자전거도 점검할 목적으로 고민 없이 정자로 들어갔다.


청평 생태공원 플랫폼 인증센터 인근 쉼터, 대성리 샛터 삼거리 인증센터와 GS 편의점 쉼터


   앞으로 50여 km 정도가 남았다. 자전거마저 따라주지 않아 무척 답답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고민이 일순간 사라졌다. 힘든 인생길에서 수고와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게 자전거라는 아인쉬타인의 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저 아래 펼쳐진 시원한 강물을 바라보며 남은 여정을 그려 보았다. 이제 수고스러운 대성리 구간이 마무리에 들어섰다. 두물머리까진 다운 힐과 강변을 낀 평지다. 지금 컨디션에서 남은 난코스는 팔당대교 진입 램프와 암사 고개 업힐이다. 정자에서 간신히 크랭크 기어를 아우터로 바꿀 수 있었다. 이제 집까지 크랭크 변속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업힐 구간에서 오르는 데까지 해보고 안되면 끌자고 마음먹었다. 평속 20 km를 포기하더라도 천천히 달려 나가자. 비록 무릎과 허벅지가 따라주지 않지만 여기까지 와서 밝은 광장 인증센터를 끝으로 종료하기에 아쉬움이 너무 크다.

 

화도읍 인근 자전거길 언덕 위 정자에서 바라본 북한강  




경주가 아닌 여정이다. 그 순간을 즐기자. -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이제부터 여유를 가지기로 다짐했다. 집을 나설 땐 넉넉잡아도 4 시 전에 들어오겠거니 했다. 예상과 달리 조금씩 지연될 조짐에 조금씩 조바심이 났다. 데드라인을 지키려는 강박이었다. 그럼에도 쉬는 횟수가 더 필요할 것이고 평속을 유지할 수 없을 게 자명했다. 기록보다 완주에 의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생각을 고치자 평온해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물의 광장을 지나 밝은 광장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일단 북한강 자전거길 종주를 마쳤다. 집까지 남은 거리 43 km. 천천히 달려도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두물머리 경치를 보며 스트레칭도 하고 다리를 충분히 풀어주었다.


'자, 이제 다시 달려볼까?'


 아이스크림으로 당을 보충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가게가 없었다. 능내역엔 있을 거라며 허전함을 애써 달랬다. 능내역 인증 센터가 꽤 문전성시임을 알고 있다 해도 막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되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만큼 당이 필요했다. 이제 팔당 대교만 잘 넘기면 암사 고개 전까지 무정차 라이딩하리라 다짐했다.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나를 추월하는 로드 바이크 라이더들이 점점 늘어나는 중이었다.


  팔당 유원지를 지날 무렵이었다. 쌩하니 두 명의 라이더가 사뿐히 나를 앞질러 갔다. 젊은 20 대 여성 라이더들이다. 내가 로드 바이크를 구입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나를 앞지른 여성 라이더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쓸데없는 경쟁심 탓이다. 하지만 그때처럼 승부욕이 일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천천히 시야에서 벗어나는 그녀들을 보며 오늘은 완주에 의의를 두자고 다시 한번 위안을 삼았다. 비행기 조종사이자 목회자였던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는 자전거는 경주가 아니고 여정이니 이를 즐기자고 했다. 아직 남은 라이딩이 귀갓길에 펼쳐질 여정으로 새로이 다가왔다. 속도가 나지 않는 대신에 주변 경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펠로톤으로 무리 지어 나를 추월하여 멀어져가는 로드 바이커에 무심해진다. 힘이 들어도 나만의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어느새 팔당 초계국수 앞에 도착했다. 횡단보도 앞에 녹색 불을 기다리는 라이더들이 꽤 있었다. 나를 앞질러간 여성 2 명과 일단의 무리들도 대기 중이었다. 엄청 앞서 나간 것처럼 여겼는데 그다지 격차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었다. 신호가 바뀌면 그들은 다시 나를 앞설 것이 뻔한데도 조바심이 일지 않는다.


  팔당대교 업힐을 결국 마무리하지 못했다. 2/3를 넘긴 지점에서 허벅지 경련이 시작될 조짐에 욕심을 비웠다. 끌바 하며 충분히 진정시킨 후에 다시 라이딩에 나섰다. 미사리에 들어섰다. 몇 년 사이에 자전거 길이 새로 생겼다. 생소한 지형을 꽤 지나서야 익숙한 코스가 나왔다. 미사대교 아래 그늘에 앞질러간 이들 중 일부가 쉬고 있다. 나를 상당히 멀리 떨궈냈어도 결국 다시 엇비슷해졌다. 저들은 토끼요, 나는 거북이에 다름없다. 이솝 우화와 달리 오늘은 내가 끝내 앞설 수 없겠지만 내 길을 가기로 했다. 다리는 더욱 무거워가고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암사 고개 전 고덕 수변 생태공원에서 업힐 준비 차 또 한 번 숨 고르기로 했다. 고덕대교 공사로 수변 공원 쉼터가 없어졌다. 하는 수 없이 공원 쪽으로 잠시 들어갔다. 팔당에서 나를 앞섰던 2 명의 여성 라이더들이 자전거 길로 나오는 중이었다. 뒤쳐졌나 했는데 어느 틈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벌써 3 번째다. 이게 인생인가 싶었다. 묵묵한 걸음에 장사 없음을 절감한다.


두물머리(좌), 미사리(우)




I never met anyboty who regretted who taking a long ride. I have met many who regretted not doing one. - Alastair Humphreys


  암사 고개는 절반도 못가 고배를 마셔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무리 없이 넘을 업힐이지만 매사가 같을 순 없나 보다. 허기가 제법 느껴져 천호대교에서 허겁지겁 요기를 달랬다. 시장끼로 속인 편의점 핫도그가 황제의 간식이다. 몸은 지쳐갔지만 한강을 잇는 다리를 하나둘씩 지나칠 때마다 정신이 맑아진다. 잠실 한강 공원을 지난다. 이제 13 km 남았다. 영동대교 남단에 들어섰다. 10 km만 달리면 된다. 한남대교를 막 넘었다. 6 km면 다 왔다. 부자 몸조심이다. 돌발적인 접촉 사고를 조심하자고 되뇌며 이촌 한강 지구에 도착했다. 115 km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갓 5시를 넘어서는 중이다. 8 시부터 시작한 라이딩을 5 시에 마쳤다. 당초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을 소요했다. 주행 시간은 6 시간. 평속 19.2 km. 한창때에 비해 낯 뜨겁고 보잘것없는 기록이다. 그렇지만 근 6 년 만에 100 km를 달린 것을 감안하면 낙제는 면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 라이딩으로 내 한계를 명확히 인지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득이다. 아직 장거리를 뛸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업힐 훈련도 체계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체감했다.


춘천 ~ 천호대교까지는 갤러시 워치, 그 이후는 스마트폰으로 기록했다. 2 번째 북한강 자전거길 종주


  오늘날 보기 드문 클래식 모험가인 앨러스테어 험프리스는 장거리 라이딩을 후회한 라이더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장거리 라이딩은 주행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준다. 경험하지 못한 거리를 성공했을 때의 만족감 이상으로 라이딩 체력이 레벨 업된다. 같은 거리라도 이미 경험한 코스가 미답의 그것보다 더 짧게 느껴지듯 어느 코스던 주행 거리를 늘려 놓으면 비슷한 거리를 도전할 때 더 수월하게 느껴진다. 장거리에 익숙해져 체력은 한결 나아졌을 것이고 자신감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왕 장거리를 시작했으니 올 가을에 100 km 라이딩을 최소 3번 할 예정이다. 남산 - 사직공원 - 북악 스카이웨이를 잇는 남사북 업힐도 처음 도전할 계획이다. 경험하지 않아 후회할 일을 남기고 싶지 않다.


  40 대 중반 당시 체력에 미치지 못할 나이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2 년 동안 운동을 멀리하여 더 약해졌음을 느낀다. 지나간 전성기(?)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현재 수준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 의욕이 앞서 신체가 감당하지 못할 강도는 장년에게 독이다. 기본 체력을 알아야 건강을 축내지 않고 조금씩 내 몸의 한계치를 확장시켜나갈 수 있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인터벌 훈련으로 속도를 높이듯 말이다. 마라톤을 할 때 업힐을 쉽게 하는 방법이 있다. 저 멀리에 있는 경사진 언덕 위로 시선을 두지 말아야 한다. 내딛는 발걸음 바로 앞을 바라보며 뛰는 게 정답이다. 오르막을 내달려 숨이 가쁜 상황에서 한 걸음씩 오른다는 성취감만이 업힐을 포기하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해 준다. 인생의 난제도 비슷할 것이다. 난제의 고비를 접할 때는 원대한 목표보다 목전의 상황에 집중하여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거리는 조금씩 늘려나가고 틈틈이 업힐 강도를 높이다 보면 언젠가 내 몸이 라이딩에 적합하도록 바뀌어 있을 것이다.

 

 적당한 강도로 동기 부여된 라이딩 본능. 3전 4기의 춘천 라이딩이 내게 준 이른 한가위 선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