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문을 단단히 잠그고 전방을 공략하자
12월 15일 미국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테이퍼링 가속화와 2022년 금리 인상 속도를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상보다 높은 물가 상승으로 연준의 유동성 회수 속도가 빨라질 것을 우려하던 증시는 아이러니하게도 연준의 발표 직후부터 반등하여 상승세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금리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소멸과 내년에 정책 금리를 3번 올리지만 여전히 2024년까지 2.25% 전후를 유지한다는 점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해석됩니다. 반면 어제는 테크 업종을 중심으로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연준 발표 전후로 극명하게 엇갈린 미국 증시 분위기는 시장의 선행성과 갈대와 같은 투자심리를 제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동일한 뉴스에 대해 발표 당일에는 기대 이상의 공격적인 행보에도 막상 최악을 피했다는 안도 랠리를 했다가 이튿날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 경기 둔화가 걱정돼’라며 금리와 성장주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1999 년 Oaktree 운용사가 고객들에게 보낸 레터의 한 삽화가 떠오릅니다. 조변석개하듯 변화무쌍한 시장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부질없음을 단적으로 표현하여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 1. Oaktree 고객 레터(1999.4.15), Mankoff 작화 - 메리츠증권 재인용>
불안한 물가 행보에 미국 연준마저 이를 인정하기에 이른 지금, 내년 증시에 대한 전망마저 제각각입니다. 전략이나 경제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참고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최근 전개되는 경기 흐름에 기초하여 전망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입니다. 물가 부담이 극심한 요즘, 아무래도 고물가를 기정 사실화한 결과, 경기와 실적 성장의 측면보다 금리 상승과 성장 모멘텀 약화라는 부정적인 관점에 무게를 싣는 전망이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저는 내년 증시를 좀 더 긍정적으로 예상합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유동성 장세가 이제 확실하게 경기와 실적 장세로 넘어간다고 판단합니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될 정도로 경기 회복 추세가 공고해졌기 때문입니다. 유동성 국면이 전반전이었다면 실적 장세는 후반전에 비유할 만합니다. 아직은 투자성과라는 골을 넣기 위해 매진할 때라는 의미입니다. 단,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간신히 리드를 잡고 있거나 무승부 상황에서 지나치게 공격 일변도는 적절한 전략이 아닙니다. 우세한 공 점유율에도 불의의 역습에 허망하게 골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 마감 시간이 다가올수록 신중한 공세를 펼쳐야 합니다.
그래서 내년 증시는 올해보다 기대수익률을 낮춰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미국 증시가 그러합니다. 미국 증시는 올해 글로벌 증시에서 압도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여전히 글로벌 증시 상승을 견인할 시장이지만 내년에도 25%가량 오른 올해만큼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 과욕에 가깝습니다. 2010년 이후 미국 주식과 채권의 기대 수익률을 감안할 경우 현재 예상되는 S&P 500 기업 실적으로는 2022년 기대 수익률을 +8~10% 정도로 잡는 것이 합리적입니다(S& P500 기준).
<그림 2. S&P500 경기조절 쉴러 일드갭>
전문가 다수가 테이퍼링 가속화, 정책금리 인상 --> 미국 금리 상승 --> 미국 달러 강세 --> 미국 증시 대비 신흥국 증시 상대 약세를 점치고 있습니다. KOSPI 역시 2021년 고점인 3,300을 저항선으로 제한적인 반등 장세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내년 KOSPI 기업 예상 실적을 기준으로 주식과 채권의 기대 수익률로 역산하면 미국보다 성과를 기대할 만합니다. 과거 경기 정점 사례로 추정할 경우 현재 예상 이익 수준에서 내년 KOSPI 전망을 3,300~3,600 수준에서 고점을 확인할 것이라 추정합니다. 따라서 2022년 KOSPI 기대수익률은 10~20%의 밴드로 기대합니다.
<그림 3. KOSPI 12개월 예상이익 기준 일드갭>
내년을 후반전이라 지칭했습니다. 미국 연준이 가정하는 정상적인 정책 금리가 2% 초반입니다. 금리 인상의 중간 단계로 접어들 2023년부터는 경기가 언제 둔화될지 혹은 금리 인상 속도가 더 빨라질지 촉각을 기울이게 될 겁니다. 또한 연준이 예상했던 금리 인상의 정점보다 경기가 먼저 꺾였던 과거 경험을 감안한다면 시장이 불확실성을 선반영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따라서 투자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들로서는 내년 중반이 넘어서면서 서서히 경기를 마감할 시간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가 지루해지거나 공방이 치열할수록 조급함이 달아오를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 시장은 수익을 얻을 기회가 주어질 때 투자자들이 훨씬 거칠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경기가 끝나기 전에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당연히 시장 기대 수익률을 상회하기 위한 전략에 혈안이 될 겁니다. 투자 유망한 스타일, 테마 등에 쏠림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2년을 관통할 테마로 ‘Pan-Productivity’(범생산성)를 추천합니다. 여기에는 로봇, 무인화, 생산/공장/물류 자동화, 머신 비전,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등을 포함됩니다. 올해는 원재료와 재화의 가격 상승이 물가를 견인했습니다. 내년에는 서비스 물가가 핵심이라 전망합니다. 재화, 내구재 소비지출이 코로나 이전 수준을 상회한 반면 일상 회복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비스 지출이 코로나 이전을 한참 하회하기 때문입니다. 서비스업이 회복되면 해당 부문의 인력 수요가 타이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20~30대 인구 비중이 현저히 낮고 중간 소득 이상의 서비스업 직종의 임금 상승률이 예년에 미치지 못한 실정입니다. 당연히 임금 상승 압력이 높아질 것이고 선진국 경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서비스업의 임금이 오를 경우 서비스 물가 또한 순차적으로 상승하기 마련입니다.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임금 상승이 화두가 된다면 경비 절감, 비용 효율화를 찾게 될 테니 결국에는 인력을 대체할 로봇, 자동화 등 생산성 제고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부상하지 않을까요?
<그림 4. 미국 실질 소비지출(좌), 소득별 임금상승률(우) - 자료원 : BCA리서치>
내년 상반기에는 가치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파웰 의장이 테이퍼링 종료 후 금리 인상까지 시차를 많이 두지 않겠다고 피력했습니다. 내년 2분기부터 발표되는 지표를 점검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장 금리가 상승 시도를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2008 년 금융 위기 이후 성장 스타일이 가치 스타일을 장기간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면에 따라서 가치 스타일이 시장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올해 2분기도 가치 스타일이 시장을 견인한 시기였습니다. 올 초에 가치 스타일의 반격을 점쳤었는데요. 지금 가치와 성장 스타일의 격차가 연초보다 더 벌어졌으니 금리 상승이란 재료를 통해 다시 가치 스타일의 안정성이 돋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올해 시장을 주도한 메타버스, NFT, 2차 전지, 수소와 같은 ESG 성장주 중에 내년에도 양호한 성과를 보여줄 기업들이 있겠지만 최소한 매출과 이익 성장을 확실하게 어필하지 못하는 개념적인 성장주들은 점차 주도주에서 밀려날 공산이 큽니다. 성장주에서 옥석 가리기, 바이오의 반격, 반도체와 소재, 산업재, 재량소비재 같은 경기 민감 업종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림 5. 글로벌 가치/성장 상대 강도 – 자료원 : BCA리서치>
마지막으로 삼성전자를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올해 개인투자자들의 속을 유달리 썩인 종목이죠. 이번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 기준, 비메모리 사업부문의 영업이익이 1조 원을 상회한다고 기대됩니다. 영업이익률이 처음으로 15%를 넘을 전망입니다. 내년 비메모리 매출을 30조 원 정도 가정한다면 4.5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쟁사인 대만의 TSMC는 매출액 80조 원, 영업이익률 40%, 시가총액 700조 원에 달하는 세계 1위의 파운드리 업체입니다. 비메모리 분야에서 이렇다 할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던 삼성전자가 내년에야 비로소 TSMC의 외형에 1/3에 다가설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비메모리 사업가치를 얼마나 줄 수 있을까요? TSMC에 비례시키면 200조 원 이상도 가능하지만 아직까지 마진율 격차가 크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할인이 불가피합니다. 그렇다 해도 최소 100~150조 원 정도의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 경우 우선주 포함한 삼성전자 시가총액 500조 원에서 비메모리 사업을 제외한 사업부문의 가치는 대략 350~400조 원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내년 예상 순이익 기준 PER 10~11배 수준입니다. 반도체 사이클이 호황으로 이어진다고 전제하면 고 PER에 사서 저 PER에 사는 경기순환주 투자방식에서 삼성전자의 매력도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오른다면 과연 KOSPI가 일반의 예상처럼 3200 근방에 국한된다는 가정이야말로 너무 보수적이지 않을까요? 내년 투자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시가총액 상위 1, 2위 주가가 상승할 때 어떤 스타일, 테마, 업종이 수혜를 입고 피해를 볼 지 상상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2021년 2월경에도 지금처럼 불확실한 거시경제와 미국 연준 정책에 대해 제각기 시장에 대한 전망을 혼란스럽게 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당시의 시장 분위기가 이어진다는 단선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투자자들의 전망이란 사실 예측이 아닌 현상에 대한 설명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내년 시장을 예측함에 있어 다음의 글이 많은 시사점을 주리라 믿습니다. 올해 3월 말에 미국 증시에 대해 전망했던 글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 시장의 큰 기조가 바뀐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여전히 경기는 회복 기조를 달리고 있고 테이퍼링을 하던, 금리 인상 속도를 더 빠르게 잡던 지금은 금리가 실제로 인상되지 않은 제로 금리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금리를 올릴 수 있는 환경에서 주식 시장이 기조적으로 후퇴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정책 금리의 인상이 중반을 넘어서기 전까지 증시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유동성을 푸는 전반전이 아니라 경기 상승 궤적을 쫓는 후반전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끼의 추억] 4. 지금 미국 증시의 스테이지는? (하) 유동성이 실적을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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