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mmer 358
맑은 멜로디와 함께 세탁기가 멈춘다. 빨래를 끝낸 세탁기는 좌우로 움직이다 이내 멈춰 선다. 그냥 널어도 될 것을 9분 탈수를 눌러 물기를 한 번 더 짜준다. 한 데 뒤엉킨 빨래를 욕심껏 가슴에 끌어안는다. 두 번 움직이면 될 것을 양말 하나까지 한 번에 옮기겠다는 의지가 몸을 힘들게 할 뿐이다. 꽉 끌어안고 가도 꼭 양말 하나는 흘린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남겨놓은 표시처럼 내가 지나간 길에는 양말 한 두 개가 남아있다.
거실 바닥에 툭 던져 놓고 앉는다. 구겨진 빨래를 하나씩 집어 탁탁 각을 잡고 접는다. 크고 넓은 것부터 양말까지 순서대로 쌓는다. 그리고 맨 위에 수건 하나를 펼치고 두 발로 꾹꾹 밟는다.
“펴져라 펴져라”
지금만큼은 통통한 내 몸이 고맙다. 내 무게만큼 더 잘 펴질 테니까.
빨래가 잘 펴지는 만큼 찜찜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구겨져있던 빨래가 조금씩 판판해지는 걸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빨래 건조대에 빨래를 하나씩 널고 남은 빨래는 모두 옷걸이에 건다. 거실 한 벽면에 세워져 있는 책장 틈마다, 책장 위 파일 보관함 동그란 구멍에, 베란다의 긴 봉과 실내 자전거에도 하나씩 옷걸이를 걸어준다. 그렇게 옷으로 거실이 가득 차면 4인 가족의 빨래가 끝이 난다.
해외에 나와 집을 구하고 혼자살게 되면서 빨래건조대는 사지 않았다. 20유로 안쪽으로 살 수 있지만 나에겐 사치였다. 지금껏 집에 빨래를 널던 스킬로 문제없이 빨래를 널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가구가 빌트인(built_in)으로 되어있는 작은 원룸엔 옷걸이를 걸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다. 이렇다 할 홈도 없으니 옷장 문을 열어 문 윗부분과 긴 책장에 살포시 옷걸이를 얹는다. 널 수 있는 곳곳에 빨래를 가득 널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업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고 여기며 살던 어느 날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이불을 어떻게 널지?"
건조대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다 한인 사이트에 누군가 올려놓은 빨래건조대를 발견하고 재빨리 중고로 구매했다. 이것저것 다른 것과 다 합쳐 5유로를 드렸으니 그야말로 공짜나 다름없었다. 부품 구멍이 보이는 걸 보면 뭐가 빠진 것 같긴 한데 이불을 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A자 형태로 아래 지지대가 날개를 받쳐주는 한국 건조대와 달리 여기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형태는 X이다. 따로 지지대가 없고 양쪽으로 날개가 펼쳐진다. X의 가운데 봉은 길고 양쪽 날개의 봉은 좁다.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유럽은 긴 수건(바디 타월)을 사용하기에 널기 적합한 구조로 만든 것 같다. 외국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수건이 다 작아서 신기해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집 안에 세탁기가 없기 때문에 건물 안에 있는 세탁실을 이용한다. 대략 3-4유로 선이라 비싸다.(대략 6천 원)
빨래를 최대한 안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행히도 코로나가 나를 도왔다. 따로 세제를 구입해서 손빨래가 가능한 것들은 그때 그때 빨아서 말린다. 한번은 수건 몇 장을 손빨래하다 죽을 뻔했다. 짜도 짜도 흐르는 물을 보며 수건의 역할을 새삼 깨달았다. 세탁기(탈수기능)가 괜히 있는게 아니다.
오래전 대학로에서 ‘빨래’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서울의 한 옥탑방, 그 마을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청년/집주인 할머니 등이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약자로 살아갈 때 겪는 에피소드를 담았기에 가끔 빨래를 널다가 생각나곤 한다.
뮤지컬 넘버 중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구깃구깃해지고 때론 얼룩지는 내 삶이 빨래처럼 한 번에 새하얗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축축 늘어진 내 몸을 바람에 맡긴 채 햇살에 바싹 마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꿈에 대해 고민하고 오늘을 사는 것이 전부인 내가 빨래를 널때면 하는 생각들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얼룩을 더하며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번 빨면 새것이 될 수 없는 옷처럼 인생도 마찬가지, 새롭게 태어난다는 건 이 세상에서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날 새하얗게 만들 표백제는 없지만 가족과 좋은 친구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얼룩지고 찢어진 내 삶을 조금씩 치유해나갈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형형색색의 옷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순백색일 필요는 없다.
외출해서 입는 옷보다 집에서 입는 낡은 옷이 더 좋다. 해외에 나오면서도 운동복과 실내복(집에서 막 입는 옷)을 더 많이 챙겨 나왔다. 몇 년을 입어 닳고 실밥이 터졌지만 손이 더 많이 가는 옷들이다. 집에서 머무는 동안 입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편해진다. 한국 집, 내 방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가끔은 타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화려한 색을 칠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맞지 않는 색, 맞지 않는 옷을 입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가장 나 된 ‘고유’한 모습으로 삶을 채우고 싶다.
내게 제일 잘 맞는 색상으로 조금씩 채워가는 것, 나에게 꼭 맞는 옷처럼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
오늘도 빨래를 했다. 1시간 동안 물 속에서 이리저리 뒤엉키고 허우적거렸을 빨랫감들이 탈수를 통해 탈탈 털려 나왔다. 여러 감정들과 고민 속에 허우적거렸던 하루를 돌아보며 빨래를 갰다. 내 감정도 빨래와 함께 탈탈 털어냈다. 내일 잘 마른빨래와 함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