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mmer 358
반듯하게 각진 사각형의 방 안에서 이리저리 구르는 먼지가 숨을 곳이라곤 없다.
청소기는 없다. 단촐한 방에 무선청소기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청소용 부직포와 밀대가 전부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을 한번 쓱 민다. 귀찮을 때면 하루쯤 건너뛴다. 그래도 슬리퍼가 있어 매일 뽀송뽀송한 기분이 든다. 청소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어느새 슬리퍼에 익숙해져 맨발로 다니는 게 어색할 정도가 되었다.
인덕션 두 개와 싱크대 하나가 전부인 부엌(이라 하기도 민망한 소꿉놀이 공간) 은 경우가 다르다. 사각형 방 귀퉁이 중 한 곳에 불과한 부엌엔 A4용지 반만 한 미니도마를 펼칠 공간이 없다. 인덕션을 좋은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불을 켜지 전까지 그곳이 도마 자리다. 작은 공간에서 야채를 손질하고 썰다 보면 이리저리 바닥에 흔적이 남는다. 양파를 벗기다 떨어진 얇은 양파껍질, 마늘의 꼭지, 씻다 튕겨나간 쌀알까지 어느새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일회용 부직포로 이리저리 부스러기를 모아도 깨끗해지지 않는다. 찜찜한 기분이 들어 한국에서 택배를 받을 때 미니 빗자루를 같이 받았다. 조그마한 사이즈, 책상을 정리하는 용도가 아닐까 싶은 회색의 작은 빗자루는 바닥 부스러기 청소에 제격이었다.
며칠 전엔 소스가 담긴 병을 깼다. ‘한번 사고를 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사건이 터진다. 미련하단 얘기다.
청소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한국이었다면 깨진 유리의 큰 조각을 치우고 청소기로 훅- 빨아들였으면 됐을 작은 유리파편을 찾아 바닥을 기어 다녀야 했다. 빗자루까지 없었다면 아마도 난 오래도록 까치발을 들고 다녀야 했을지도 모른다. 신경도 예민해졌겠지.
큰 유리조각을 줍고 쏟아진 빨간 살사 소스 사이에 숨은 유리파편을 휴지로 훔쳐냈다. 물티슈로 바닥을 살짝 닦아내고 빗자루로 남은 조각들을 쓸어냈다.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작은 유리조각들이 눈에 보였지만 밟혀도 피는 안 나겠다 싶은 파편이라 크게 걱정하진 않기로 했다. 혼자 살면서 크게 호들갑 떨지 않는 법도 배워가고 있다. 병이 깨졌다고 "엄마!"를 부르지 못하니 나를 미련함을 탓하며 그저 쓸고 닦아낸다. 이 미련함이 생각하는 시간을 벌어주기도 한다.
빨아들이는 편리함이 아닌 여러 번의 비질을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쓸어내는 행위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앞뒤로 오가는 비질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부스러기를 보며 내 마음도 비질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하루의 감정이 한 번에 정리되지 않는 밤이면 일기를 쓰고 타자를 치며 이리저리 마음을 쓸어낸다.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때면 상처가 덧나는 듯 아프지만 흩어진 감정의 조각들을 쓸어내지 않으면 여러 날동안 마음에 생채기가 날게 분명하다.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모아 줍듯 마음의 조각들을 모아 정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있었으면 좋았을 물건들이 없어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조금 불편하지만 불만의 요소가 되진 않는다.
필수품이라 여겼던 물건들로부터 멀어지고 나니 얼마나 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지 알게 됐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이 나쁘지 않다.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된다.
청소포가 하나씩 줄어 바닥을 보일 때면 ‘한 달이 끝나가는구나’ 깨닫는다.
이렇게 새롭게 시간을 읽는 법을 배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