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성지가 되어 버린 익숙함의 공간

부산 달리기 성지, 광안리

by 조아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는 말이 있다. 흔히 말하는 '텃새'의 힘을 알려 주며,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 속에서 신비로운 힘을 발휘한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적응의 동물인 인간에게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 손때 묻은 도구는 이 신비로운 힘의 근원이 되어, 어리숙해 보일지라도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는 주로 집 근처의 하천 주변과 공원에서 달리기를 한다. 매일 달리는 공간이다 보니 익숙하고 어느 지점에 가면 도로가 파여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것쯤은 눈 감고도 알 정도이다. 한 번은 지반이 조금 융기되어 올라온 곳이 있었는데 조심해야지 생각하며 지나가다 어떤 러너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익숙함의 힘을 느꼈다.


이런 익숙함의 힘은 어두운 밤에 더욱 힘을 발휘한다. 하천 주변으로 조명이 설치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밤에는 한 치 앞이 잘 안 보이기 더욱 천천히 달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매일 달리기를 했던 길이기에 조금 어둡기는 해도 달리는데 큰 문제는 없다. 조심해서 달리기만 하면 오히려 사람이 많은 낮보다 밤이 더 조용하고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렇게 익숙함의 힘은 위대하다.




달리기 세계에 들어온 후 '달리기 성지'로 유명한 곳을 일부러 찾아가 달리지는 않았지만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시민 공원과 광안리에서 달리기를 즐겼다. 특히 광안리는 내가 20여 년 넘게 살았던 남천동 인근이기에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군 입대 전, 체력을 키우기 위해 한동안 광안리 해수욕장을 달렸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을 싫어해 물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나에게 광안리 해수욕장은 그림의 떡이다. 지인들은 이렇게 좋은 곳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으면서 가지 않는다고 타박하기도 하지만 광안리 해수욕장은 나에게 그저 바닷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냥 가볍게 산책하고 때론 바다 내음을 맡으며 달렸던 달리기 코스일 뿐이다.


사람 많은 곳도 싫어하는 성격이라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여름 성수기에는 더더욱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간혹 서울에서 손님이 오셔 안내해 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내가 원해서 광안리 해수욕장에 간 적은 없다. 당시 달리기를 좋아했다 하더라도 광안리 해수욕장에 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세월이 지났고 세상은 변했다. 달리기를 극도로 싫어했던 내가 매일 달리기를 즐기며 작은 성공의 맛에 취해 동기 부여를 느끼며 성장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토록 가고 싶지 않았던 광안리 해수욕장을 달리며, 부산의 랜드마크인 광안대교를 보면서 광안대교가 없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날이 좋을 때는 멀리 대마도까지 보였었는데, 지금은 다리에 가려 쉽게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광안대교가 생긴 후 교통의 흐름이 좋아서 물류 효율성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많은 관광객이 방문해서 부산의 매력을 느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기부 앤 레이스>와 같은 마라톤 대회의 코스가 되어 수많은 러너들에게 광안대교 상판 위를 달리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또한 부산불꽃축제에는 광안대교 위로 날아오르는 불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다.



요즘은 광안대교를 보고 달릴 수 있는 부산의 달리기 성지가 되어 러너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주 토요일, <무한도전 RUN>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 무대를 설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기 명소로 사랑받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내가 주로 달리는 곳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20년을 살아온 익숙함의 힘으로 부산의 달리기 성지를 느껴본다.


#달리기

#성지

#명소

#부산

#광안리

#광안대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