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고 앉아 있네

드디어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

by 조아

글쓰기가 점점 일상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무렵, 글쓰기 모임에서 한 작가님이 소설 쓰기 모임을 제안하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동경하던 나에게 ‘소설 쓰기’라는 말은 언젠가 반드시 해내야 할 과업처럼 들렸다. 소설의 ‘소’ 자도 모르는 주제에,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모임에 참석했다.


온라인 모임이라 물리적인 부담은 없었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놀라울 만큼 정체되어 있었다. 2년이 넘도록 나는 주인공과 배경, 시대와 구조만을 곱씹었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계획서 정도는 있어야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보다 계획서를 쓰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결과는 뻔했다. 나의 소설 쓰기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고민은 깊어졌지만, 단 한 줄의 문장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과연 언제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생각만 하는 상태’에 머물렀다.



주말 동안 다시 찾아온 추위를 핑계 삼아 달리기 훈련을 쉬고 집에 머물렀다. 그 시간에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미니멀리스트로 살겠다는 다짐 역시 소설 쓰기와 비슷한 시기에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던 ‘소설을 쓰겠다는 약속’이 문득 떠올랐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장을 대충 정리하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2년 전 기록해 두었던 메모를 다시 꺼내 읽으며, 그때의 마음을 더듬었다. 내가 쓰고자 했던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자, 흐릿한 기억 속에서 하나의 풍경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둔덕기성에 올라 바라본 거제의 푸른 바다였다. 지금은 거가대교가 놓였지만, 그 옛날에는 육지와 섬을 오가는 배만이 오갔을 것이다.


개경을 떠나 육지와 분리된 섬에서 살아야 했던 왕의 마음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둔덕기성을 걸으며, 이곳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려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 머물렀던 공간이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12세기로 돌아가 둔덕기성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를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소설의 한 장면이 완성될지도 모른다. 막연한 상상이 소설이 되고,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소설은 소설의 영역에 있을 때 가장 온전하고 소설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뭐라도 써야 소설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겨우 1화를 완성했을 뿐인데도, 마치 소설 한 편을 다 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 미루지 않기 위해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koreamystery


〈거제 둔덕기성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글을 채워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소설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소설을 읽기만 했지, 단 한 번도 써 본 적 없던 내가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고 있다. 말 그대로, 소설 쓰고 앉아 있다.


이 소설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뤄 온 이 순간을 이제는 지속하고 반복하겠다는 마음이다.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이 작은 노력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한 권의 소설이 완성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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