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 Jun 26. 2023

부산행 야간열차

역방향이 주는 편안함

꿈에 그리던 인사이트 나이트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이날의 부산행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합정역에서 서울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늦은 시간이라 택시를 탈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금요일 밤 택시 잡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울 수도 있어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무슨 배짱으로 금요일 밤에 택시를 잡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서울에 살지 않은지 10년이 넘다 보니 감각이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무감각해졌다. 특히 합정역은 처음 와본 곳인데 이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인사이트 나이트를 통해 인사이트와 만남의 축복을 누려 엄청난 흥분 상태임은 분명하다. 힙한 동네인 합정을 뒤로하고 거의 이용하지 않았던 서울 지하철 2호선 위쪽 부분의 노선을 타 보는데 서울에 살 때는 주로 강남 쪽에 근무해서 강남역에서 삼성역을 주로 이용했기에 상대적으로 시청방향 쪽 역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딱 한 번 야간교육 후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들어 2호선 순환을 한 아픈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시청역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이었으면 엄청 혼잡했을 것이지만 오후 10시가 넘은 시청역은 한산함을 넘어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기에 서둘어 1호선 서울역 방면으로 환승하기 위해 움직였다. 지하철 도착 소리가 나면 본능적으로 뛰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장마 전 꿉꿉한 날씨는 땀에 흠뻑 젖게 만들어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었다. 결혼 전 서울에 근무할 때는 한 달에 5번 이상은 타서 멤버십 등급이 높았던 KTX는 2015년 이후 오랜만에 타는 예전의 추억이 많이 있는 공간이었다. 옆자리 탑승객이 어깨를 빌리는 바람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던 경험과 처음으로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자대로 가기 위해 홀로 탑승했던 KTX는 주로 근무지가 있는 서울과 본가가 있는 부산을 이어주는 오랜 기간 동안 나의 최애 이동수단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부산역보다는 김해공항이 더 근접해 있고, 1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것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비행기 타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심지어 비행기는 시간대에 따라 KTX보다 훨씬 저렴했으며 국내선을 자주 이용해서 쌓인 스탬프와 마일리지를 통해 해외여행 시 요금 할인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KTX를 타며 쌓였던 추억은 점점 잊혀 갔다.


 기차를 타면 항상 사이다와 삶은 달걀이 생각날 정도로 어릴 적 외가인 서울을 가기 위해 새마을호, 무궁화 열차를 타고 다녔던 기억과 대전역에서 잠시 정차할 때 먹었던 우동을 먹었던  기억은 지금은 누릴 수 없지만 기차는 오랜 시간 만남을 연결해 주는 필수적인 수단이었다. 대학생 때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비둘기호를 타고 부산에서 동해안으로 올라가면서 광대한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태평양 너머의 세계를 동경하기도 했다. 이제는 다시 누릴 수 없는 추억을 떠올리며 기차의 철걱거리는 소리도 소음이 아닌 추억의 세계로 인도하는 주문처럼 들렸고 장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배고픔과 무료함을 달래주전 간식을 판매하는 카트도 떠올랐지만 이제는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미리 예매한 티켓을 취소하고 마지막 시간을 선택하는 바람에 방향을 확인 못해서 역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이것 또한 처음 KTX를 탔을 때 주로 하던 실수였기에 언제 또 이런 것을 누릴 수 있을까 하며 감사함으로 불편함을 누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차의 소음과 진동은 오래되고 닫혀버린 추억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 같은 것이었다. 일본 여행 때 탔던 JR과는 다른 KTX만의 특유한 진동은 섬이란 공간에 갇혀 있지 않고 한국의 영토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으로 갈 수 있는 철도 위에서 한반도의 후예가 꿈꾸는 대륙을 향한 열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2002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 갔을 때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일부 구간을 탑승했던 적이 있다. 세 정거장 가는데 1박 2일이 소요된 것 기차는 비행기보다 더 오랜 이동 시간이 필요하지만 땅 위를 달리는 편안함으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이동 수단이다. 부산행 야간열차를 타고 있는 나는 만약 통일이 되고 철도가 연결되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는 상상을 해보며,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런 열차가 있다면 꼭 타보고 싶다. 하얀 증기를 뿜으며 거리에 대한 제한을 줄여주어 사람과 물건을 옮겨주었던 기차는 이제 초음속 기차를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나에게 있어서 비행기에 밀려 비효율적인 운송수단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기차에서 먹었던 퍽퍽한 삶은 계란을 달콤하게 느끼게 만들어 준 사이다 한 모금과 첫 엠티의 추억이 생생히 남아 있는 추억의 공간임은 부정할 수 없다. 세 시간가량 달리고 달려 자정이 넘어 도착한 어둑해진 부산역을 나와 내 추억이 넘처나는 본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사이트 나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