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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Oct 29. 2023

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역시적 자양분이 되었던 시간

 일제강점 35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모든 민족에서 치욕과 암흑의 시간이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으로 참전했던 미국, 호주 등 서양 국가의 포로도 인체실험 대상이나 포로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잔인한 면모를 쉽게 볼 수 있다.


 전쟁이 주는 참혹함은 시설을 파괴하거나 적군을 죽이는 것보다 인간이 이토록 잔인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일본은 우리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심문하는 동안 그 잔인함을 보여줬고, 고문을 견디지 못해 죽었던 독립투사들도 많았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문과 학대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목숨을 걸고 대한의 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우고 그들의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통해 외교권, 강제 군대 해산을 당하며 대한제국은 겉모습만 있는 나라였고 실은 일본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고종황제를 칼로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겠다고 위협했던 권중헌이란 대신이 버젓이 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왕권은 커녕 일본의 허수아비였던 조선 왕실이었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 중 순종실록은 정서로 인정하지 않는 역사학계의 분위기도 조선 왕실이 아닌 일본의 입장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대한의 1800년 대 후반부터 광복을 맞이한 1945년까지의 약 150년의 시간은 수많은 사건, 사고와 함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불러온 시간이었다.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국권침탈에서부터 강제합병, 독립군의 항쟁,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등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께서 가정을 버리고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고, 일본의 감시가 없는 곳에서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독립을 위해서만 모든 것을 바쳤다.


 이러한 희생 때문에 우리가 직접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 평가받지는 못하는 핵폭탄 투하에 따른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의해 광복의 순간을 맞이했다. 상해 임시정부의 대표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을 추진하지 못했기에 광복 이후 민족주의자와 민주주의자와의 대립, 좌익과 우익의 충돌 등과 같은 혼란이 있었지만 우리 민족은 잘 극복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혼란의 시간 동안 가장 아쉬운 점은 일본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과 독립운동가를 지독할 정도로 괴롭혔던 친일파와 같이 반민족 행위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처단하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광복 이후 국가 재건에 필요한 자원이라는 거창한 포장으로 그들의 만행을 심판하지 못한 것은 엄청난 실수이자 역사적 오류이다.


 그리고 가정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재산을 모두 팔아 독립운동에 힘썼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가난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비통한 현실과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독립운동을 하셨지만 추서조차 받지 못하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 쓸쓸히 묻혀 계신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포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나라도 없고 그 나라를 지키는 군대도 없는 시절, 무력을 이용한 저항을 하기 위해 조직된 군사 독립단체들 중에서 정예 군대를 가진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공산당의 힘을 빌렸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독립운동의 가치마저 무시당하고 있는 사회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일부 편협한 시선이 그들의 노력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특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육군사관학교 내 충무관 앞 홍범도 장군님의 흉상을 이전한다는 소식은 정말 비통하고 참담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국방부 대변인이 말하는 자유시 참변에 대한 정확한 사실과 역사적 배경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홍범도 장군님이 러시아 공산당에 가입해서 독립군을 사살하는데 일조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럽고 창피할 정도이다.


 레닌의 공산당과 스탈린의 공산당의 차이, 빨치산의 유래 등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1920년 대의 독립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1848년 <공산당 선언>을 계승하여 사회주의 혁명으로 계급 없는 공산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던 레닌과 달리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 스탈린의 공산단은 이념부터 차이가 있다.


 홍범도 장군님의 빨치산 활동에 대한 주장도 러시아어의 파르티잔(Partizan)에서 유래한 ‘빨치산’이란 단어도 비정규군을 뜻한다. 특히 군대 해산으로 정규군이 없던 시절, 우리 독립군은 모두 비정규군인 빨치산이자 게릴라였고 일본의 입장으로 본다면 테러리스트였다.


 이처럼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이해한 상태에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 시선’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일본강점기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지혜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의 출발점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시작하기에 우리는 역사를 반드시 알고 이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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