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여여일

나의 첫 호캉스

여유로움에 파무쳐 보낸 하루

by 조아

지난 일요일, 천년 고도인 경주로 가족 나들이 겸 호캉스를 다녀왔다. 일요일부터 1박을 하는 것이라 주말 성수기를 피하기도 했고 2년 전 회사에서 받은 상품권으로 결제하는 것이라 비용 부담이 덜 했기에 다른 여행보다 더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경주는 황성공원부터 황리단길 등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방문하는 곳이지만 가족 여행으로 숙박을 한 적은 없기에 특별한 경험이었다.


호캉스라고 해봤자 스위트룸을 빌리는 것이 아닌 보문호가 보이는 레이크 뷰 방 두 개를 빌려 나와 아이, 아내와 장모님이 묵었고 호텔의 부대시설과 체험 프로그램, 라한 마켓을 즐기면서 정말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고 호텔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의미의 호캉스이다. 아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수영장을 가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각자의 취향에 맞게 호캉스를 즐겼다.

나는 경주책방과 피트니스센터에서 시간을 보냈고, 장모님과 아내, 아이는 라한 마켓, 체험 프로그램을 즐겼다. 특히 호텔 뒤 뜰에서 열린 라한 마켓은 온갖 종류의 팝업스토어가 열려서 마치 현대식 전통 시장이란 느낌을 주었다. 물론 아이의 쇼핑으로 내 지갑이 열리긴 했지만, 이것 또한 아빠가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주책방에서 차를 마시며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내가 읽고 있던 책과 연결된 또 다른 책을 만나는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 커피나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읽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공간의 매력에 빠졌다.



조금 의아했던 것은 숙소는 잠잘 때만 있었던 아내가 하루 종일 호텔 안에서만 있다는 사실인데, 아내한테도 이런 날이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얼마 전 <세이노의 가르침>이란 책을 읽으면서 해외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각자 자신이 원하는 나라로 여행 갔다 모여 귀국하는 이야기를 접했는데, 이렇게 따로 또 같이 하는 여행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도 비슷한 여행을 하고 있어서 신기했고, 경주책방에서 읽은 책을 보문호가 보이는 방, 넓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니 마치 작품 활동을 위해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호텔에 칩거하며 글쓰기에 몰입하는 작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특히 여행을 할 때면 숙소에 대한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 나였지만 이번 여행의 숙소는 아이와 단둘이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넓은 방에서 창밖으로 잔잔한 호수를 보면서 마음을 달랠 수도 있고 여유롭게 반신욕을 할 수 있는 넓은 욕조가 있어서 정말 좋았다.


아이는 그동안 엄마 아빠의 잔소리 때문에 마음껏 보지 못했던 유튜브를 아무런 제약 없이 침대와 혼연일치가 되어 딩굴딩굴 거리며 보았고, 장모님께서도 침대에서 편안하게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인 <세계테마기행>을 가득한 미소와 함께 보셨다. 물론 집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내가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고 식사 준비를 하지 않더라도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유희를 즐기는 일탈도 어쩌다 한 번은 좋은 경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이면 가족 나들이로 여기저기 다녔지만 이렇게 호텔에서 여유롭게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 했던 것들을 하며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물론 각자의 취향을 만족시켜야 하고 각자 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웬만한 호텔은 그 니즈를 다 만족시킬 수 있기에 이런 호캉스가 유행하는 것 같다.


호캉스를 즐기며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보냈기에 처음 경험하는 것의 특별함과 따로 또 같이 하는 활동의 이색적인 체험으로 가족들과 함께 보낸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매번 이렇게 호캉스를 즐길 수는 없겠지만 일 년에 한 번쯤은 이렇게 가족들이 호텔 안에서 여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고 아내한테 말했다.


아무런 대답 없이 웃기만 하는 아내의 답을 이미 눈치챘기에 내년을 위한 준비를 하는 기간이 주는 기쁨과 보람을 즐기면서 내년의 오늘을 상상한다. 어떤 호텔에 묵으며 어떤 즐거움을 누리는 유희를 즐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