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여행도 비주류인 나의 취향
지난 3월 21일에 귀국했으니 홋카이도를 다녀온 지 9일이 지났다. 아직 겨울이 머물고 있는 홋카이도를 다녀와서 그런지 한국도 봄의 정령보다는 동장군의 심술이 남아 있어 한 동안 겨울옷을 입고 다닐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이미 4일 동안 북방의 추위에 적응한 내 몸은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마주한 추위쯤은 가볍게 털고 넘어갈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해외여행 최초로 로밍을 하지 않고 다녀왔다. 늘 회사 직원이나 관계자들에게 오는 전화에 신경증(Neurose)이 걸릴 만큼 부재중 통화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에 집착했던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로밍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고 한국에서 걸려온 몇 번의 전화에도 대수롭지 않게 받지 않았다.
보통 홋카이도 여행의 목적은 대부분 눈을 보기 위함인데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삿포로 눈 축제 기간 동안은 숙박비는 물론 비행깃값도 폭등하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처음으로 3월 중순인 18일에 도착한 홋카이도였어도 이곳저곳에 쌓여 있는 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눈발이 휘날리는 날씨 속에 눈길 운전을 하며 콩닥콩닥 거리는 심장을 느끼기 충분했으니 굳이 성수기에 방문하지 않아도 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홋카이도의 심장, 삿포로시에 가지 않았다. 이전의 여행에서는 신치토세 공항에 내려 JR을 타고 삿포로시에 내려 역 인근 숙소에서 시내 관광을 하고 저녁이 되면 징기즈칸에서 북해도식 양고기를 먹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리는 것이 낯설기도 했지만,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으로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홋카이도 여행의 목적 중 하나인 징기즈칸 양고기를 먹는 것도 비좁은 공간에서 몸을 움츠리고 불편하게 먹었던 기억이 전부인데, 이번 여행에서 즐겼던 아사히카와의 징기즈칸 양고기는 넓은 4인석 테이블에서 선배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안주 삼아 배불리 먹었고, 삿포로시에서 먹었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에 먹었다. 물론 가게를 오픈하자마자 때맞춰 간 것도 있지만 성수기를 지난 평일에 방문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성수기의 여행지는 그곳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방문한 수많은 여행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휴식을 취하고 즐기기 위해 온 여행에서 이런 상황은 여행의 목적을 정반대로 만들어 여행의 매력을 감퇴시키곤 한다. 사람이 많은 공간을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 이번 여행처럼 공간적 매력을 느낀 여행은 처음이었다. 비수기 여행지에서 느끼는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이런 매력인 줄은 정녕 몰랐었다.
그동안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람을 보기 위한 여행을 한 것 같아 씁쓸함이 맴돌았다.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주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만 스스로 비주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개인의 취향과 감정이 존중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성수기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주류가 아닌 나에게 비주류여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며 나의 비주류 취향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또한 홋카이도 여행 중 대부분을 렌터카를 이용해서 움직였는데 그동안 몰라서 그 비싼 톨게이트 비용을 지불했던 무지를 땅을 치며 후회했다. ‘HEP(Hokkaido Expressway Pass)’로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금액만 지불하는 저렴한 요금을 통해 약 1,100km의 거리를 운전했다. 작년 여행 때 톨게이트 비용만 19,000엔 정도 지불했던 것과 비교하면 4일 6,300엔의 비용으로 다녔으니 엄청난 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었다.
아사히카와 징기즈칸에서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던 저녁 식사 비용도 만 엔이 조금 넘는데 통행료로 19,000엔을 소비했으니 징기즈칸에서 두 번의 식사를 할 정도의 금액이라서 아는 것이 힘이며 남는 장사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번 방문했기 때문에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호기롭게 여행만 온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 정보를 확인하고 도움이 되는 것을 추려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처음 겪는 경험과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체험을 했다.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런 낯선 시도가 해보지도 않고 안 될 것이라 미리 추측하는 맹목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런 경험 그 자체만으로 날 것 그대로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다음 여행을 기대하며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나의 안목이 더욱 깊고 넓어지기를 소망한다.
이번 여행 중 가장 큰 선물은 홋카이도 여우를 직접 본 것이다. 이전 여행 중 호텔 로비에 있었던 여우 사진만 보다가 실물은 본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던 홋카이도의 여우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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