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사람은 지혜롭다
몇 번의 홋카이도 여행 중 처음으로 3월에 갔고 가장 검색을 많이 했던 이번 일정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분부할 것 같은 출국 준비 전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제저녁부터 눈여겨 놓았던 곳에 가서 편안하게 새벽 루틴을 시작하였다. 여행 와서 이게 뭔 유난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하루라도 안 하면 하루 종인 뇌리를 떠나지 않는 찝찝함 때문이라도 꼭 해야만 하는 과업이 되었기에 반드시 해야 한다.
방이 넓기는 하지만 혹여 불빛이 새어 나와 선배님의 숙면을 방해할까 봐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니 자판기를 이용하려고 방문한 투숙객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버린다.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투숙객의 사정을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참 책을 재미있게 읽던 찰나라서 다시 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넓은 휴게실 공간을 홀로 독차지하며 새벽 루틴을 수행하고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방으로 돌아와 가방을 정리하고 마지막 남은 여행 일정을 수행할 계획을 세웠다. 늘 해외로 나오면 현지에서 국제 우편을 통해 집으로 편지를 보내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시내에 머물렀던 시간이 다른 때보다 적어서 아직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도 하코다테 시내를 돌아보아도 문이 잠겨 있는 우체국이 2군데나 있어서 일본도 문을 닫는 우체국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글맵으로 검색을 했다면 운영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이동하며 ‘JP’라는 간판이 보이면 들어가던 습관 때문에 미리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다음 여행부터는 미리 숙소나 방문지 주변 우체국 위치를 찾아 놓고 운영 여부까지 확인해야 함을 느꼈다.
신치토세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아침 온천을 하고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했기에 화장실 세면대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즉석밥을 담가 놓았다. 이 숙소는 전자레인지가 없기에 이렇게 하고 온천욕을 30분 정도 다녀오면 전자레인지에 돌린 것보다 맛있고 뜨거운 즉석밥을 먹을 수 있다.
이렇게 갓 지은 밥처럼 맛있는 즉석밥을 먹을 수 있는 비결은 모든 방 안에 있는 화장실까지 온천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 온천탕이 불편한 투숙객이라면 방에 있는 욕조에서 편하게 온천을 즐겨도 된다. 욕조 가득히 풍겨오는 유황 냄새가 마치 지옥 계곡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아침 7시 전 온천욕은 넓은 대중 온천탕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노천탕에서 온천을 즐기며 상반신에서 아직 남아 있는 겨울의 추위와 하반신을 달궈주는 뜨거운 온천수의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노보리베츠의 아침은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 있어 실오라기 하나도 거치지 않은 온천 여행객에는 온몸의 닭살이 올라오게 하는 추위를 가져왔다.
당분간 이런 온천을 할 수 없다는 아쉬움으로 아침 온천을 끝내고 서둘러 아침을 먹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세면대 온천수 안에서 알맞게 데워진 즉석밥과 한국의 컵라면을 먹으며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한국의 맛을 느끼며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체크아웃을 하며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를 나와 렌터카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정말 한 적해서 마치 고속도로를 우리 혼자 전세 낸 듯 홀로 달려 한 시간 후에 무사히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하여 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좌석에 앉으니 그동안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던 긴장감에서 해방되어 잠시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체국에 들러 편지를 부쳤다.
별 탈 없이 축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을 기다리며 가족들의 선물을 고르기 위해 면세점을 들렸다. 일본 여행 필수품인 과일 젤리와 나의 홋카이도 최애 음료를 하나 골라서 가방에 담았다. 홋카이도 여행 중 처음으로 삿포로시를 가지 않았던 이번 여행 동안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거의 대부분의 일정을 차지할 정도로 익숙함 속에 낯섦을 느꼈던 여행이었다.
내년 2월에서 3월 사이에 다시 방문할 예정이지만 올해 6월 뜨거운 태양 아래 홋카이도의 여름을 느끼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여름에 한 번도 홋카이도를 온 적이 없기에 또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족들에게 홋카이도의 매력을 전하며 눈 덮인 겨울의 모습이 아닌 여름의 홋카이도 모습을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비에이와 후라노의 허브 밭의 향기가 바닷바람을 타고 나에게 불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며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계획한다. 여행은 계획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 가족의 여름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이 주는 지혜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을 통해 나는 여행 전 나보다 한 뼘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여행하는 사람은 지혜롭다”라는 말처럼 낯섦을 통해 배운 여행의 지혜를 통해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 한 뼘 더 성장한 모습으로 매일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다음 여행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아가는 지구별 여행자의 삶을 살아갈 때 여행의 지혜가 내 인생 속에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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