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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y 14. 2024

여행의 장면

잊지 못할 순간이 추억이 되는 과정

 지난 3월 중순이 넘은 시기, 눈의 나라 홋카이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귀국길에 여행의 묘미에 대해 생각한 것이 있다. 바로 여행은 떠남이 아닌 돌아옴에 있다는 것으로 지금까지 내 여행의 관점을 송두리째 바꾸는 문장이었다. 순도 100%의 집돌이에서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 마니아로 변화하는 데는 아내의 영향이 가장 컸지만 결정적으로 아내와 나는 여행 성향이 완전히 반대이다.


 아내와 처음으로 함께 한 여행은 신혼여행으로 그때는 결혼 후 처음으로 함께 하는 여행이었기에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함께 하는 여행이 많아지면서 아내의 여행 성향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생겼다. 특히 숙소가 정해지지 않은 채 이동해야 하는 불안감은 여행을 즐거운 순간이 아닌 걱정과 불안의 순간으로 만들어 여행의 묘미를 느끼지 못했고, 하루빨리 귀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내의 여행 성향은 현지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숙소를 결정하기에 다소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낯선 곳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의 성향 차이를 만들었다. 단지 나와의 여행 성향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기에, 아내도 나에게 자유여행의 선택을 주었고 나도 아내에게 자유여행의 선택을 주었다. 특히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 아내는 장모님, 아이와 함께 호주 여행을 다녀오면서 잊지 못할 여행의 장면을 만들었다.


 다낭 이후 코로나19로 멈췄던 시간을 뒤로하고 홋카이도 가족여행을 통해 아이에게 추억할 만한 여행의 순간을 만들어줘서 너무 기쁘고 만족스럽다. 어제 교외체험학습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다시 홋카이도를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돈을 벌어야 하는 새로운 목적이 생겼음을 느꼈다. “여행하는 사람은 현명하다”라는 말처럼 가족여행 이후 대화의 소제나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여행의 긍정적인 효과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번 홋카이도 여행 중 잊지 못할 여행의 장면은 ‘청의 호수’를 바라본 것이다. 비록 비가 와서 안개가 피어올라 맑은 날 더 푸른빛이 넘치는 청의 호수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겨울에만 홋카이도를 여행하느라 본연의 푸른빛을 본 것은 처음이기에 잊지 못할 여행의 장면이 되었다. 아이도 체험활동을 하면서 여행의 장면은 오일 파스텔을 이용하여 그린 작품을 통해 여행의 순간을 남겼다.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비 오는 날이라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이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청의 호수에서 푸른빛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자작나무 숲을 걸었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고 맑은 날 다시 청의 호수에 가서 또 다른 매력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물론 아내는 다시 홋카이도 여행을 반대하겠지만, 아직 우리 가족이 마주한 홋카이도의 매력은 1/10도 안 된다. 아직 내가 경험한 여행의 순간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기에 계절별로 홋카이도를 여행하고 싶다.


 물론 나도 눈이 내린 홋카이도가 아닌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홋카이도를 처음 여행하는 것이라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하지만 홋카이도의 진정한 매력이자 잊을 수 없는 여행의 순간은 온 세상이 순백의 하얀빛으로 가득 찬 풍경이다. 군 복무 시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극험했던 시절은 사라지고, 매년 이 눈을 보기 위해 존경하는 선배님을 대동해 눈의 나라 홋카이도를 여행한다.


 한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있지만 한 여행지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여행 경비를 절감하는 것 이상의 장점이 있다. 여행지에 대한 높은 이해와 함께 매번 방문할 때마다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변화하고 있는 그곳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이곳이 삶의 터전인 현지인이 아닌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변화의 순간은 과거 나를 황홀한 순간으로 이끌었던 여행의 장면이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다시 이곳으로 나를 인도하는 이끌림이 되었다.


 적어도 30번은 와 봐야 진정한 홋카이도의 매력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 매년 겨울이 되면 당연히 이곳에 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내의 말처럼 세상은 넓고 여행할 곳은 많다는 문장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홋카이도는 내가 일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장소이기에 매년 이곳을 여행하면서 일 년 중 겨울이 6개월인 홋카이도에서 진짜 살 수 있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아직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못했지만, 다음에는 홋카이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


 여행의 장면은 마치 멈춰진 풍경이 내 머릿속에서 흘러 지나가는 것처럼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어 그곳을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입가에 흐르는 미소와 함께 내 안을 행복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다음 여행의 장면을 만끽하기 위해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또 다른 여행의 장면을 상상하며 일상에 충실할 것이다.



여행의 장면 /  고수리, 김신지, 봉현, 서한나, 서해인 / 유유희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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