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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y 19. 2024

사람을 안다는 것

존재의 근원을 알려는 울림의 질문

 예전 교육 부서에 근무할 때 매년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정말 어리석게 사람을 잘 안다는 착각을 했었다. 짧은 교육 기간 동안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착각의 결과는 참혹할 정도로 인생의 가슴 아픈 시련을 주었다. 시련의 시간 동안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으며 사람을 믿지 않았고, 특히 여성의 말은 아무리 솔직한 말이라 할지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격언을 마음속에 새기며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려고 했고, 지금도 너무 좋은 조건이나 시세보다 싼 가격이라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 생겼다. 또한 인생 최악의 실수를 다시금 범하지 않으려고 절대 사람을 잘 안다는 생각과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났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며, 사람 일 알 수 없다는 말을 더 신봉하게 되었다. 또한 말이 씨가 된다는 것과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의 힘을 믿으며, 말에는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말을 아끼며 부정적인 말로 인해 나는 물론, 내 주변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안 된다는 말보다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라는 사고의 전환은 나를 보다 긍정적이고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씨앗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씨앗이 나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촉매이자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나를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존재로 만든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변하려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런 변하려는 의지와 존재의 힘이 만나면 내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샘솟듯 나올 것이다.


 사람은 안다는 것은,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오는 것으로 단순히 겉모습만 봐서는 절대 모를 일이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을 알려고 한다면 심도 있는 질문을 해야 하고, 존재에 대한 경외심과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 지난날 내가 사람을 잘 안다고 착각했을 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으며 심도 있는 질문이 아닌 의미 없는 질문으로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하지 않았다.


 ‘이심전심’이란 말처럼 형식적인 질문과 말투는 사람의 마음을 감흥 시키지 못했고 나는 그저 수박 겉 핡기 식으로 사람을 보았는데 사람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누를 범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사람을 잘 알기 위해 지금과 다른 노력을 할 텐데 그랬다면 연간 천 명의 사람 중 백 명은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후회한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실수를 만회할 수는 없지만 후회는 잘못을 번복하지 않게 해 준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한 사람이 타인을 대하는 방식은 약자에게 하는 행동만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나를 결정한다. 또한 동물이나 식물을 대하는 태도만 보아도 사물을 넘어 생명이 있는 한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로 삶의 자세는 그 사람을 아는데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 중에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가지려고 한다면 내 안의 존재 의미는 퇴색한다. 만약 주변에서 나를 성실하다고 평가한다면 나는 더욱더 성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혹여 불성실한 모습을 보일까 봐 노심초사하며 불안해할 수도 있다. 이는 다를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대로 스스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한 사람의 자아는 무너지기 쉽다. 개인의 자아는 다른 사람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알기 위해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며, 의미 있는 반응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물론 관계 속에서 고통을 느낄 수도 있지만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그 고통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고통은 괴롭고 힘들지만 고통 없이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 고통스럽지만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내 안에 해소되지 못한 고통도,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통해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처럼 이름을 불렀을 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정성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 고통에 반응하고 공감할 때, 이 반응과 공감의 동일한 주파수는 존재의 울림이 되어 서로에게 전달된다.


“해소되지 않은 고통은 타인에게 전염된다 “


사람을 안다는 것 / 데이비드 브룩스 / 웅진지식하우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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