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5월 독서 결산은 깜짝 오키나와 여행으로 시작한 6월, 바쁜 일정 가운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5월 결산을 안 했다는 것을 깨달은 6월 말, 이미 늦었기에 6월 결산과 함께 하면 될 것이라 또 미루고 미뤘다. 미룬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지만 만약 6월 결산마저 미뤘다면 나는 분명 두 번째 프로젝트를 내려놓았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6월 말이 되었을 때 7월 1일이 되면 꼭 5월 독서 결산과 6월 독서 결산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나를 보는 순간 늦어도 5일이 되기 전까지는 꼭 해야겠다는 마지노선을 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산을 해야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며 새벽 두 시가 넘어 겨우 잠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새벽에 일어나려고 하니 목에 담 증상이 생겼다. 옆으로 목을 돌리기 힘들 정도여서 급하게 하루 쉴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오늘 출근하지 않으면 다음 주 서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는 업무 처리를 위해 겨우 집을 나섰다.
사실 결산의 내용은 어느 정도 써놓았지만 나의 실패를 공개하는 사실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매월 독서 결산을 하면서 단 한 번도 20권 이하로 읽은 적이 없었지만, 나의 5월 독서 결산은 정말 처참했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재독 하며 매일 읽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곳곳에 비어있는 흔적은 나의 두 번째 프로젝트 목표 달성에 있어서 위기이자 적신호였다. 이런 나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 싫어서 미루고 미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유함을 얻고 싶었다.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만약 6월의 결산마저도 미뤘다면 나는 3년의 1,000권의 책 읽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5월의 결산을 포스팅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작성한 6월 결산을 정리하니 상반기 결산까지 순조롭게 정리할 수 있었다. 하루 3개의 글쓰기가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해서 무리란 생각이 들어도 상반기 독서 결산을 끝으로 3개의 글쓰기를 마무리했다.
조금 피곤하지만 마음속을 가득 채운 이 후련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미루고 미뤘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자유롭고, 새로운 생각들이 마구 떠오른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라는 말이 이런 의미일까 생각하면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쓰다만 글들을 찾아보았다.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나의 미완성인 채로 저장된 글을 보면서 올해 브런치 스토리 1,000개의 글쓰기라는 잊고 있던 목표가 떠올랐다.
문득 등록된 글을 세어보니 699개이다. 아직 301개나 남은 상황에서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아도 연말까지 이틀에 세 개의 글을 써야 겨우 달성할 수 있다. 아직 180여 일이 남았기에 포기하기는 이르지만 다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글쓰기 정체성은 양의 글쓰기이다. 질을 논할 때가 아닌 양으로 승부해야만 하는 시기라서, 눈치 보지 않고 양의 글쓰기를 지속할 것이다. 지금 나는 글쓰기에 진심이며, 글쓰기를 위해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언젠가 만나게 될 ‘질의 글쓰기’를 준비하는 요즘 생각도 많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민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정체성은 양의 글쓰기라는 사실이다. 일정한 양을 달성해야만 하는 나이기에 나는 양의 글쓰기를 해야만 하고 할 것이다. 솔직히 양의 글쓰기를 해야 마음이 편하고, 한 개의 글쓰기만 한 날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불편할 때도 있다. 최근 하지 않았던 에세이 연습을 매일 하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연말까지 브런치 스토리 1,000개의 글을 위해 매일의 노력을 할 것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누구에게 자랑하기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해, 나의 글쓰기가 양의 글쓰기에서 질의 글쓰기로 자연스럽게 전환될 수 있도록 매일의 글쓰기를 할 것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 어느 때보다도 글쓰기에 진심이며 글쓰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혹여 기계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저 매일 반복되는 글쓰기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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