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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n 26. 2024

성즉고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

 2015년 한창 심리학 공부에 빠져 있을 당시, 인생 영화라고 부를 법한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2014년 개봉한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영화라는 하나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천체물리학, 양자역학을 직접 공부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매료되어 있었는데, 애니메이션 영화 <업>의 감독이기도 한 피드 닥터 감독이 만든 <인사이드 아웃>이란 영화를 보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도 중요하고 다양한 감정이란 개념에 깊이 빠졌다.


 사실 나는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감정이 내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고,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어떤 감정이 조정간을 잡고 있냐에 따라 나의 핵심 감정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전까지 엄청난 다혈질의 행동을 보이며 화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분노의 화신이었던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부끄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시 나의 감정 컨트롤 본부는 분노가 주로 앉아 있었고 화를 낸다고 해서 해결할 일은 없는데 무조건 화부터 내고 시작하는 나의 행동으로 인해 나를 어려워하고 불편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았다. 왜 그때는 몰랐고,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생각하며 지난날을 반성하고 평화롭고 합리적인 감정 컨트롤 본부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봤던 영화가 심리학 공부의 방향성과 인생의 태도를 수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영화가 가진 영향력이자, 명화를 봐야 하는 이유다.



 영화관에서 세 번이나 볼 정도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인사이드 아웃>로 인해 화를 내지 않고 행동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했고, 신혼 초기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아내와 종종 충돌했던 부분도 점차 줄일 수 있었다. 또한 너무나 감명 깊었기에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도 많은 영향을 준 잊을 수 없는 영화였기에 9년 만의 개봉을 그 누구보다 기다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9년의 기다림을 영화에 매료되어 해소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로 청소년이 된 라일리, 정든 고향, 미네소타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는 힘든 과정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 원주민이 되어 친구를 사귀고,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모습으로 인사이드 아웃 두 번째 이야기는 시작한다. 인간이 성장을 하면 겉으로 보기에 키도 크고 몸도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내부 장기도 성장과 함께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가장 커지는 내부 장기는 바로 '뇌'인데 1편에서 주된 감정인 기쁨(Joy), 슬픔(Sadness), 버럭(Anger), 까칠(Disgust), 소심(Fear)뿐만 아니라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한다.


 불안(Anxiety), 부럽(Envy), 따분(Ennui), 당황(Embarrassment), 추억(Nostalgia)이라는 새로운 감정의 등장으로 감정 컨트롤 본부는 때아닌 공사를 하게 된다. 즉 청소년의 뇌가 리모델링을 하는 것인데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중2병의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건물을 철거할 때 사용되는 레킹볼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것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청소년의 뇌를 그 무엇보다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느꼈다. 이제 곧 마주하게 될 아이의 청소년기 변화를 영화로 먼저 경험하고 알게 되어 한편으로는 감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함께 보며 느꼈기에 사춘기를 보다 현명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불안(Anxiety이 핵심 감정으로 등장한다. 신체의 변화와 함께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주는 불안은 이제 막 아이의 티를 벗어 버린 라일리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자 성장의 순간이다.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의 모습으로 나를 돋보이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돋보여야만 다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만 허무맹랑한 믿음은 친구나 가족들에게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을 하며 상처 주고, 홀로 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준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시간을 보낸다.


 석가모니가 생즉고(生卽苦),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설파하며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성즉고(成卽苦),  '성장(成長)은 고통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성장기에 느끼는 성장통처럼 성장은 기본의 체제를  모두 부서 버리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에 반드시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곤충이나 파충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탈피'의 순간도 성장통의 최고점인 순간이며 올바른 탈피를 하지 못하면 그 상태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성장통의 중요성을 다시금 알게 한다.


 고통 없는 인생이 없는 것처럼 고통 없는 성장은 있을 수 없다.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내야지만 성장의 기쁨을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라일리는 성장의 고통으로 괴로워하지만 결국 현명하게 행동하며 전작의 라일리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관에 끝까지 남아 엔딩 크레딧을 모두 본 후 제일 마지막에 공개되는 비밀의 실체를 보며 어린 시절 나만 알고 있던 비밀, 마음 한편 깊은 곳에 숨겨 놓은 비밀을 떠올리며 청소년에서 성인의 시기를 보내는 라일리를 볼 수 있는 <인사이드 아웃 3>의 제작을 기대한다. 차기작을 제작할지 안 할지 결정된 것은 없지만 만약 개봉한다면 1편부터 3편을 모두 보는 것만으로 영유아기부터 성인까지의 성장과 발달 기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영화관을 나오며 잊고 싶고 잊으려 했던 나쁜 감정과 기억조차도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수치심을 주었던 사건, 어이없는 실수로 행사를 망쳤던 기억 등 너무나 잊으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행동이 부질없었다는 것과 잊으려고 한다고 해서 잊을 수 없다는 사실, 내가 부정했던 모든 것도 나의 감정이자 과거를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꼈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란 감정이 불안, 부럽,  따분, 당황, 추억이라는 새로운 감정과 연결되면서 나의 감정은 더욱 넓어지고 풍부해진다는 사실이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는 감정코칭 시간에 배운 것에 대한 복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일리보다 까칠하고 가시 돋친 말을 했던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면서 앞으로 다가올 아이의 청소년기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모든 감정을 수용하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며 감정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감정 컨트롤 본부의 규칙일 될 것이다.


 앞으로 아이의 뇌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뒤에서 말없이 바라보고 인내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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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아웃2

#뇌의리모델링

#몹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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